실리콘밸리서 전세기 보낸다…작곡과 출신이 만든 '메타버스'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2.03.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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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UP스토리]'메타버스 뮤직' 선도하는 이성욱 버시스(VERSES) 대표

이성욱 버시스 대표/사진=이기범 이성욱 버시스 대표/사진=이기범


'I'll send you a chartered flight(전세기 보내 줄게)'

'지난 1월 CES(세계 최대 가전·IT전시회) 나갔던 성과가 있었나?'라고 묻자 이성욱 버시스 대표는 이렇게 쓰여진 채팅 메시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러곤 "대박! 대박!"을 외쳤다. 버시스는 메타버스 뮤직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넥스트 빅씽'(the Next Big Thing)을 찾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그들은 왜 버시스를 주목했을까.

악기 다룰 줄 모르는 작곡과 출신..."듣기만 하는 음악경험 넘고 싶었다"
경희대 음악대학 작곡과 출신인 이성욱 대표는 뒤늦게 음악에 입문했다. 고3 입시생이던 그는 돌연 쇼팽과 베토벤에 미쳐 작곡과로 진로를 튼다. 이전에 피아노를 한번도 쳐본 적 없는 그다. 양손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주선율을 연주하는 대학 동기생들은 마냥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작곡과인데 악기를 다룰 줄 모른다는 모순은 너무 부자연스러웠고 무모함으로 다가왔다.



그는 건반 대신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컴퓨터 음악을 연주하는 특유의 연출은 교수님을 비롯해 만인의 시선을 이끌었다. 열등감이 우월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삼성은 일찍이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이성욱 대표는 1999년 공채로 입사, 삼성물산에서 인터넷 사업 전략 기획 및 IT 분야 투자심사역을 맡았다. 3년 후 그는 스트리밍 음악서비스 '도시락' 등 모바일 미디어 서비스 개발을 주도하며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

혁혁한 성과를 내던 그가 또 돌연 진로를 튼다. "모바일TV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음악은 LP·카세트·CD·MP3 등으로 진화하지만 모두 재생만 하는 수동적 경험이잖아요. 하지만 영화는 비디오게임으로 발전하고 사용자 참여 기능이 확대되면서 더 많은 이용자를 만들었거든요. 듣기만 하는 음악경험을 넘어설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었어요." 이성욱은 2014년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인터렉션디자인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으며, 움직임에 따라 음악이 바뀌는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를 개발한다.





들어는 봤나? '메타버스 뮤직'…美유명 기획사·현대차 임원 등 CES 부스 북새통
그 기술은 버시스의 메타버스 세계로 그대로 옮겨진다. 버시스는 가상세계 속 캐릭터가 앉거나 일어나는 움직임, 뛰는 속도나 방향, 위치 등에 따라 배경 음악의 리듬·박자가 함께 바뀌는 형태의 게임 같은 서비스를 CES에 출품해 '이노베이션 어워드'를 수상했다.

실리콘밸리서 전세기 보낸다…작곡과 출신이 만든 '메타버스'
전시부스 명패엔 '메타버스 뮤직'이라고 크게 써 붙였다. 유명 팝아티스트 리한나·제이지 소속사 락네이션 등 해외 굵직한 매니지먼트사들의 상담이 줄을 이었다. "전시 기간 동안 다른 부스를 15분 정도 돌아본 게 다 일 정도로 정신 없었죠."

이곳에서 버시스는 글로벌 EDM 뮤지션 히치하이커(Hitchhiker)와 협업해 만든 '히치하이커의 메타버스 음악'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였다.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히치하이커가 음악을 통해 낯선 세계를 탈출하는 시나리오를 배경으로 사용자는 캐릭터가 돼 메타버스 공간을 탐험한다.


여기서는 공간 곳곳에 놓인 아이템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재구성할 수 있다. 우주를 연상시키는 3차원 공간을 가로지르는 동안 변주되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 뿐 아니라 스크린 터치로 히치하이커의 목소리를 작동시켜 비트와 랩을 얹은 나만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머신러닝을 통해 음원 데이터를 학습하고 음악의 각 요소를 분해·재조립하는 방식이다. 특히 사운드를 BGM이나 효과음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 콘텐츠로 내세운 점은 일반적인 메타버스 플랫폼과의 차별점이다. "메타버스라는 공간에 음악을 대입, 움직임이 곧 음악이 되고 이용자가 아티스트가 되는 게 바로 메타버스 뮤직입니다."

CES에서 '메타 모빌리티'를 선언한 현대차 임직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주로 자율주행차 내부에 메타버스를 도입할 건데, 음악을 어떻게 쓸지 고민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솔루션을 도입하면 사방이 인포메이션(Information) LED로 둘러싸인 차 내에서 방향을 전환할 때 곡이 바뀐다든지, 속도는 리듬과 박자에 변화를 줘서 얼마든지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B2C 메타버스 음악 플랫폼 구축 시동… "글로벌 표준 만들 것"
버시스는 최근 조PD가 설립한 초코엔터테인먼트와 가상의 가수 제작, 메타버스 콘서트 등의 기획을 협의 중이다. "아티스트별로 제작한 가상의 음악 공간들이 하나둘 모이면 자연스럽게 'B2C 메타버스 음악 플랫폼'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곳에 팬들을 초대해 신곡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음악과 문화를 파는 공간이 될 겁니다."

펀딩에도 속도가 붙었다. "이번 CES에 메타버스 뮤직 분야는 아이디어가 거의 없던 탓에 저희가 이목을 많이 끌었죠. 우리와 얘기하던 실리콘밸리 투자자가 "CES 끝나고 바로 와, 전세기 필요하면 보내줄테니"라고 농담처럼 말을 던졌는데, 한국에 오니 똑같은 메시지가 다시 와 있었어요." 버시스는 30~50억원 프리 시리즈A를 이달 조기 마무리하고, 300~5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라운드를 곧바로 준비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메타버스 뮤직의 전세계 표준을 만들어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MP3, MPEG 파일도 글로벌 표준이 있듯. 저희도 시장 선점을 위해 해외 거대 오디오 관련 업체와 메타버스 뮤직의 표준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듣기만 하는 수동적 음악경험에서 보고 만지고 느끼고 노는 능동적 음악 시대를 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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