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묘(黑猫)' 오바마, 미국의 선택

뉴욕=김준형 특파원 2008.11.0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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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보다 경제… 과제 산적·실탄 부족 딜레마

'흑묘(黑猫)' 오바마, 미국의 선택


"위대한 국가(Great country)"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 많은 미국인들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다.
역사는 버락 오바마의 이름 앞에 '미 역사상 첫 흑인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될 것이다. 'WASP(백인 앵글로색슨 청교도)'로 상징되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 국민이 회교도의 이름 '후세인'을 미들네임으로 가진 흑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혁명'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상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인이 택한 것은 '흑인'이 아니라 '변화'이다. 변화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흑인이건 백인이건,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식 실용주의가 미국 대선의 키워드가 된 셈이다.



선거직후 실시된 출구조사 결과 출구조사에서 62%의 응답자가 '경제'가 투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답한데서 보듯, '변화'의 최대 초점은 역시 경제였다.

◇ 신자유주의 파산 잔재 인수인계



'부의 재분배('Wealth Redistribution')라는 위험한 사상을 지닌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후보가 당선된 것은, 길게는 로널드 레이건 이후 30년을 지속해온 '보수 시대'의 종언을, 짧게는 부시 정권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의 파산을 의미한다

우선 파이를 키워 그 효과가 골고루 퍼지도록 한다는 '스필오버(spill over)'효과의 명분은 실종되고, 월가로 상징되는 탐욕만 커진 결과, 일반 노동자들과 월가 CEO의 임금차이는 400배에 육박하게 됐다.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정책에도 일자리가 창출되기는 커녕 올해 들어서만 76만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실업률은 6.1%에 달했고 2010년이면 8%대가 될 전망이다. 7일 발표될 비농업부문 고용 역시 20만개 감소, 2003년 이후 최악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3분기 전분기대비 -0.3%(연율기준) 역성장한 국내총생산(GDP)는 4분기 3∼4.5%까지 뒷걸음질 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라크전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지출하고, 세금은 지속적으로 깎아온 결과 2009회계연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1.5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음 회계연도에는 GDP의 10.2%에 달하는 2조달러의 국채를 발행, 돈을 빌려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례없는 장기 초저금리와 이를 기반으로 한 '비이성적 풍요'가 낳은 주택버블은 금융위기로 폭발, 전세계를 흔들고 있다.

◇ 금융시장 회복·글로벌 위기 극복 과제

금융시장을 재편하고,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진정시켜야 하는게 오바마 당선자의 첫째 과제이다.
사상 유례없는 유동성 공급으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은 서서히 완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불안요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 발발 이후 미 정부는 일관성 없는 정책과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로 시장혼선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월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재무장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과 함께 직접 일선에 나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도드 민주당 상원 금융위원장도 "당선자는 재무장관과 경제팀을 수일내로 꾸려야 한다"며 즉각적인 역할을 기대했다.
연방보험공사(FDIC)와 재무부가 논의해온 모기지 구제 방안 처리에 대한 입장이 오바마 당선자의 첫번째 정책 과제가 될 전망이다.

금융시장의 거품과 신용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시장 감독을 강화하는 문제도 시급한 과제이다.
오바마 후보는 월가의 과도한 보수를 제한하는 등 원칙적인 규제강화 방안 외에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미 정부가 리먼 브러더스는 죽이고, 베어스턴스나 AIG는 구제한데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오는15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서방 및 신흥 20개국(G20)회의는 세계 금융위기 해소를 위한 오바마의 리더십과 금융시장 정책관이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취임 직후 대규모 경기부양 전망..문제는 '실탄'

부시 정부는 연초 이미 1680억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실시했지만, 있는 빚 갚기에도 급급한 미국인들은 소비를 늘리지 않았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 주도로 추가로 논의되고 있는 1500억달러 규모의 2차 부양책은 사회간접자본과 지방정부 원조, 실업급여 인상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매케인의 참모로 활동한 마틴 펠트스타인조차도 3000억달러의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이다.
부양책이 집행돼 실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반면 경제 침체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오바마 당선자에게는 부담이다.

챨스 슈머 뉴욕주 상원의원은 오바마가 당선될 경우 레임덕기간에 일단 1차 부양책을 내놓은 다음, 취임하자 마자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실탄'

경기회복을 앞당기기 위해 대규모 부양책 등 조급한 정책을 쓸 경우 물가상승, 달러가치 하락, 세금인상 압력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것은 민간부문의 자금조달을 제약, 경제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될 오바마 당선자가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를 빈 손으로 헤쳐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온 세계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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