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오바마와 '화냥년'

머니투데이 박형기 통합뉴스룸 1부장 2008.11.0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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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뷰]오바마와 '화냥년'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흑인 오바마의 당선을 보면서 미국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동남아 이주 노동자와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당대에 바로 한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입니다.

오바마는 미국인 어머니와 케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인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 미국사회의 '마이너리티'입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다문화 가정의 아이입니다. 그런 그가 금융위기라는 호재(?)를 만나 결국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는 순수 흑인, 즉 니그로는 아니지요. 어머니가 백인이고 어머니가 난소암으로 사망한 뒤에는 백인인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겉모습은 흑인이지만 속은 백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의 외할머니는 딸이 낳아온 흑인 손자를 아무 말 없이 거두었고, 그를 훌륭한 미국인으로 키웠습니다. 오바마는 선거 유세 도중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실 오바마에게 있어서 외할머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오바마는 10살 때부터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인생의 가치관이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할머니 밑에서 자란 것이지요. 오바마 할머니는 여성 최초로 하와이 지방은행의 부행장을 지냈을 정도로 인텔리였고, 따라서 오바마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을 겁니다.

그 할머니가 조금만 더 살아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에 등극하는 것을 보고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부 정치공학자들은 오바마 할머니가 사망해 오히려 동정표가 오바마에게 쏠리는 '그랜마 이펙트(grandma effect)'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정말 천박한 분석입니다. 저는 자신이 키운 흑인 손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봤더라면 그 할머니가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바마 할머니는 죽기 직전 부재자 투표를 통해 손자에게 한 표를 행사하고 영면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아무리 대공황에 준하는 경제적 위기를 맞은 미국이지만 사회적 마이너리티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다양성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요즘 다문화 가정이 많습니다. 저는 친한 신부님의 소개로 다문화 가정 쉼터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신부님은 10년 동안 독일에서 유학을 했고, 거기에서 다문화 가정의 문제점을 인식했습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문화 공동체를 일구고 있습니다. 그는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부부싸움으로 갈 데가 없을 때 쉴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를 따라 다문화 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할 기회가 생기면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들은 정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일단 이 애들은 말이 늦습니다. 한국말과 어머니 출신지 말이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보통 4~5세가 되서야 우리말을 조금씩 합니다. 더욱 문제는 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많은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말을 듣지 않으면 마구 팹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돈으로 사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가정 폭력으로 다문화 가정 쉼터를 찾는 이주여성이 아주 많습니다. 아마도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 십중팔구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외국인 이주 여성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불행하지만 고국으로 귀국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고향에서는 그녀를 '화냥년'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조선으로 다시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들이 '화냥년' 취급을 받았던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정신적 충격을 많이 받기 때문에 대부분 실어증, 과다행동장애, 주의력결핍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문화 가정 쉼터도 어린이들의 심리치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동남아 이주 노동자와 한국 여성, 또는 한국 남자와 이주 여성 간에 태어난 아이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고,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의 주요 계층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요.

오바마도 훌륭하지만 오바마를 당선시킨 미국 사람들은 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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