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모세, 그리고 광야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3.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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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박근혜와 모세, 그리고 광야


# 성경의 앞부분 주인공은 '모세'다. 그는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해방의 길을 찾아 나선 지도자다. 쫓아오는 애굽 군사들을 뒤로 하고 홍해의 기적을 만든 이도 그다.

백성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핍박의 땅에서 벗어나게 해 준, 자신들을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열광과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광야 생활은 힘들었다. 눈앞에 있을 것 같던 새로운 땅 '가나안'은 가도 가도 나오지 않았다.

백성들은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다. 핍박받던 애굽 땅으로 돌아가자는 이들도 생겼다. 그렇게 모세와 그의 백성이 광야에서 보낸 세월만 40년이다. 정작 가나안 땅에 다다랐을 때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 모세는 그 땅을 밟지 못했다.



# 한나라당의 주인공은 '박근혜'다. 그는 '차떼기' '부패 정당' 이란 질타 속 힘겹게 지내던 한나라당을 홀로 이끈 지도자다. 탄핵 역풍 속 치러진 2004년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을 뛰어넘는 '기적'을 만든 이도 그다.

2006년 5.31 지방선거 압승도 박근혜의 작품이다. 그 선거 이후 현재의 야권은 회복 불능 상태가 됐다. 한나라당은 그에게 열광했다. 절망에서 벗어나게 해 준, 새로운 힘을 준 지도자에게 머리를 숙였다.

한나라당이 꿈꿨던 정권교체라는 가나안 땅도 눈앞에 보였다. 그런데 박근혜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했다. 모세 대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밟았듯이.


# 모세와 박근혜가 겹쳐진다. 둘은 최고의 지도자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영광의 땅에 서질 못했다. 그들의 역사적 역할이 거기까지였다는 해석도, 새 시대는 새 인물의 몫이란 분석도 모두 가능하다.

그런데 둘은 또 다르다. 모세는 광야에 섰지만 박근혜는 광야가 두렵다. 차디찬 천막당사 시절을 견뎠다지만 한나라당 밖 생활과는 질이 다르다. 2002년 대선전 탈당하며 벌판에 나섰다가 곧 돌아왔던 그다.

이런 박근혜가 갈림길에 서 있다. 결국은 광야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 문제다. '친박(친박근혜)계'로 불리는 그의 백성들은 지도자를 바라보고 있다. 이미 광야로 떠난 이들도 있다.

# 박근혜는 고민이다. 황량한 광야를 알기에 고민이 깊다. 비바람 못지않게 그의 백성들로부터 욕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기에 더 답답하다.

문제는 어렵고 시간은 없다. 온갖 추측이 나돈다. 다만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서는 모세는 못 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백성들만 보내고 살아 돌아오길 눈물로 기도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떠나지 않은 품 안의 자식들도 챙겨야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반론도 있다. 수족이 잘린 마당에 인질처럼 앉아 있을 수 있겠냐는 논리다. 흥미롭게도 꼭 1년전 이맘때 시베리아 벌판을 향해 몸을 던졌던 인물이 있다. 박근혜는 손학규가 1년전에 섰던 그 곳에 서 있는 셈이다. 손학규는 어떤 조언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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