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스타에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배우 말이다. '여신급 미모'라는 여배우 이민정하고 결혼도 하는. 이병헌은 이미 최고의 인생이다. 굳이 힘내라고 응원할 게 뭐 있겠나.
반면, 영화의 주인공인 영화감독 준비생 동명이인 이병헌(홍완표 분)의 삶은 '찌질함' 그 자체다.
마찬가지로 찌질한 세 친구(데뷔 못한 PD 범수와 촬영기사 승보, 무명배우 영현)와 함께 맨날 모여 소주만 퍼 마시며 서로 허세나 부린다. 술병은 많은데 달랑 하나 있는 오뎅 안주에 괜히 짠해지기까지 한다. 힘내라고 응원해줄 만한 3류 인생들이다.
# 주인공 이름은 이 영화를 만든 실제 감독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진을 보니 당연히 한류스타 만큼은 못되지만, 주인공을 맡은 배우 홍완표 씨보다는 오히려 좀 더 잘생겼다. 그래도 배우인데, 홍완표 씨 죄송해요. 이 영화가 장편데뷔작인 감독은 영화 내용 가운데 절반은 자기 이야기라고 했다.
영화는 '페이크 다큐'(겉으론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창작된 허구를 연출한 영화) 형식을 빌린다. 방송국에서 감독 지망생인 주인공 병헌 씨의 영화 준비 과정을 밀착 취재하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병헌 씨는 그야말로 게으름의 표본이다. 술 퍼마시고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는 데까지 몇 시간이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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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인 방송국 PD입장에서 병헌 씨는 '이해 불가'인 인물이다. 청년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그런데 병헌 씨가 단 2주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그것도 실제 감독에게 '거칠지만 괜찮다'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맨날 술만 퍼마시고 딴 짓만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썼냐"는 아직 20대 방송국 PD의 질문에 병헌 씨의 이렇게 허세를 부린다. "먹고 싸고 잘 때도 난 영화만 생각해." 노트북 앞에 있는 시간이 다가 아니란 거다. 창조경제는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란 말인가.
병헌씨 인생이 불쌍하다는 PD에게 그는 오히려 "아직 여자랑 자보지도 못한 니가 더 불쌍하다"고 큰 소리도 친다.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 얻는 것만이 행복한 인생은 아니란 거다. 이렇게 어이없는 병헌 씨지만 결코 밉지 않다. 그는 과연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까.
# 이 영화, 특히 수십만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일베는 '청년실업' 등 힘든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극우적 성향을 보이면서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공격성을 보인다는 지적을 받는 젊은 층 위주의 온라인 커뮤니티다.
병든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한 이들에게 기득권층의 어설픈 힐링이 쉽게 먹힐 리가 없다. 하지만, 씩씩하게 기죽지 않고 꿈꾸는 동년배들을 낄낄거리며 지켜보다 보면 뭔가 새로운 힘을 얻지 않을까 싶다.
감독의 실생활을 모델로 한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부조리한 사회에 좌절하지도 침울해하지도 않는다. 괜한 신경질도 부리지 않으며 웃음과 여유도 잃지 않는다. 꿈을 향해 힘든 지금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니라,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더 나가고 있다고 여기면서.
절대 기죽지 말자. 청춘이라면, 특히 남자라면 곧 죽어도 큰소리 쳐야 한다. 잃을 게 없는데, 앞길이 구만리인데 뭐가 두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