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면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13.03.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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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멘토다] 21. '안나 카레니나'+'호프 스프링즈'

안내. 여성 독자 분들은 이 글을 보지 마시라. 순전히 남자들 입장에서 매우 편파적으로 여자들 흉보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뭔 소리 하나 궁금해서 굳이 읽으시겠다면야 할 수 없다. 열 받아서 '악플' 달아도 아무 소용없다. 댓글 안 볼 거니까.

# 동료 몇 명과 함께 한 술자리였다. 한 사람이 전날 부부싸움을 대판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렇게 투덜거렸다.



"정말 피곤해요. 나도 나름대로 잘 해준 게 많은데 그건 당연한 듯이 굴면서, 말 한 마디 섭섭했던 건 기억도 안 나는 몇 년 전 일까지 꺼내서 들먹이네요. 마누라 때문에 정말 돌아버리겠어요."

그의 토로는 이어졌다. "물론 살림하며 아이 키우며 고생하는 건 나도 미안하고 고마워요. 하지만 나도 나름 열심히 사는데 왜 자기만 그리 생색을 내는지, 또 만날 남들과 비교해대면서 날 '죄인' 취급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말하다 보니 점점 열이 받는 것 같았다. "바라는 건 완전 무슨 드라마에요, 드라마. 드라마 다 없애버려야 해요. 물론 나도 재벌 아들이나 능력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기도 김태희나 송혜교가 아니잖아요."

남자들만 있었던 자리라 큰 공감을 얻었다. 당연히 분위기는 '옳소, 옳소'였다.

# 예전 한 CF 카피 중에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바라는 게 여자 마음'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야말로 여자들 마음을 꿰뚫은 걸작(?)이다. 남자들이 보기에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이것저것 참 바라는 게 많기도 하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보호해 줄 능력 있는 남성을 원한다고 한다. 하여 대부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사랑에 매달리고, 바라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현대의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며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진 본능이 한 순간에 모조리 없어질 수는 없다.

마누라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면


그런 면에서 톨스토이의 동명 고전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안나 카레니나'(감독 조 라이트. 21일 개봉)의 주인공은 좀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을 통해 얻은 부와 안정, 심지어 아들까지 모두 불륜을 위해 내팽겨 쳤으니 말이다.

# 이 영화는 '눈이 즐거운' 작품이다. 19세기 화려했던 러시아 귀족 사회의 드레스가 멋진 색감의 영상 속에서 정말 멋지게 나온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받았다.

또 연극적인 무대 장치와 이를 통한 장면 전환이 신선하고, 여기에 뮤지컬적인 요소까지 담았다.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된 고전소설을 다시 영화로 만드는 일은 아무래도 간단치가 않다. 화려한 시각적 요소는 이런 고민에서 나온 산물인 듯하다.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원작소설 '안나 카레리나'는 분량이 완역본 기준으로 2000페이지에 달한다. 여기에는 당시 러시아 사회의 모습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담겨 있다. 이런 면을 모두 제외하면 안나 카레니나의 줄거리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19세기판 '사랑과 전쟁'이다.

어느 팔자 좋은 아줌마가 능력은 있지만 모범적인 남편에게 싫증이 나서 어린 남자와 바람이 났고, 아들까지 팽개치고 애정행각을 벌이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젊은 애인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죽는다는 얘기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엄청난 스포일러같다)

# 영화에서 안나는 고관대작과 사랑 없는 정략결혼을 했다. 그녀의 불륜을 인간적으로는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 카레닌이나 다른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안나는 정말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모범적인 남편, 귀여운 아들, 화려한 저택과 사교계 생활, 누릴 것을 다 누리면서도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꽃미남과의 낭만적 사랑에까지 욕심을 냈으니. 왜 그 전에 점잖기만 한 남편을 바꿔볼 생각은 안 한 걸까. 자신의 삶 속에 있는, 자신의 인생을 함께하는 남자에게서 사랑을 일깨워 볼 마음까지는 왜 안 먹었을까.

결혼을 한 순간 자신이 이룬 가정의 절반은 자기의 책임인데도 안나는 욕심에만 눈이 멀어 전혀 책임지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상처받을 거라는 생각도 못하고 "크면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말 할 정도다.

인생에 공짜는 없다. 자신이 견디고 책임지는 범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주어진다. 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것이 삶의 이치다. 이런 걸 모른 채 결혼을 무슨 '공짜 인생 티켓'정도로 생각하는 철없는 여자들이 요즘엔 너무나 많다. 아무리 제 총각시절 버릇 못 버리는 철없는 남자들이라도 '여우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새끼들 먹여 살려야' 한다는 서푼 짜리 사명감이라도 가지는 데 말이다.

그래서 난 요즘 노총각이나 결혼 적령기 후배들에게 지나가는 말이라도 '결혼할 때가 됐다' 같은 소리는 잘 안 한다. 여자만 그런 게 아니다. 남자도 아무 여자나, 특히 반반한 얼굴만 보고 결혼해선 절대 안 된다. 인생 망친다.

마누라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면
# 그런 차원에서 보면 영화 '호프 스프링즈'(감독 데이빗 프랭클. 오는 28일 개봉)에 나오는 케이(메릴 스트립 분)는 현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가정 테두리 안에서, 남편을 상대로 여자로서 사랑받는 느낌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물론 케이도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귀찮고 피곤한' 마누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 30년차인데도 신혼 같은 사랑을 꿈꾸다니, 펑퍼짐하고 쭈글쭈글한 예비 할머니인데도 예쁘게 봐달라니. 사실 이게 말이 되나. 남편 아놀드(토미 리 존스 분)가 "당신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 나 역시도 당신에게 맞추고 살았다"고 역정을 낼 만도 하다.

그래도 케이는 무뚝뚝한 남편을 바꿔보기 위해 '심리상담 캠프'를 신청하고, 아놀드 역시 투덜거리면서도 아내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한다. 비록 오랜 세월 속에 남녀로서 사랑은 많이 식었지만, 케이도 아놀드도 성실하게 30년간 서로 노력하며 살아온 세월이 있다. 그 세월이 쌓아 놓은 애정은 비록 화려하진 않아도 남녀 간 감정 이상의 무게를 가진다.

역시 사랑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두 사람은 여러 난관에도 자신들의 봄날을 회복한다. 아무리 오래된 부부 간에도 사랑의 불씨는 되살릴 수 있다. 사랑의 봄바람은 노력하는 이들에게만 분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 아놀드와 동시대에 살았다면 이렇게 충고할 것 같다. "아내가 성가시고 귀찮다고요? 바람피우고 집 나가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이보쇼, 있을 때 잘해줘요."

잊을 뻔 했다. 호프 스프링즈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런 영화다. '8000원짜리 영화표로 참가하는 400만원짜리 부부심리상담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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