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아내에게, 비밀은 엄마에게"

머니투데이 박창욱 선임기자 2013.02.2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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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멘토다]18.해원..자신의 비밀은 안 털어놓는게 낫다

#. '실력파' 영화감독들이 최근 잇달아 신작을 내놓으며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김지운·박찬욱 감독, 그리고 최근 열렸던 63회 베를린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홍상수 감독이 주인공들이다.

먼저 김 감독이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함께 찍은 액션물 '라스트 스탠드'(이하 라스트)를 지난 21일 선보였다. 오는 28일에는 박 감독이 니콜 키드먼 등이 출연하는 스릴러물 '스토커'를, 홍 감독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하 해원)을 각각 개봉한다.



세 사람 모두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하는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 우선 '스토커'는 강력 추천이다. 이야기와 화면 구성이 빨려들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무난한 액션물이라는 이점도 있겠지만 '라스트'도 친구나 애인과 함께 즐기기엔 그리 나쁘지 않다.

다만 해원은 좀 그렇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는 괜찮다. 베를린영화제에서 괜히 그냥 초청한 게 아니다. 하지만, 찌찔한 유부남의 불륜 이야기는 이제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지겹다. 도대체 몇 번째인가. 홍상수 정도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종류의 이야기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사랑은 아내에게, 비밀은 엄마에게"


#. 스토커는 18세 생일날 아빠를 잃은 소녀에게 존재를 몰랐던 삼촌이 찾아오고, 그 소녀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영화 중간에 이미 공포감을 주는 원인이 무엇인지 드러내지만, 박찬욱 만의 밀도 있는 연출과 개성 넘치는 화면 구성으로 관객들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도록 만든다.

주연 미아 바시코브스카, 매튜 구드, 니콜 키드먼의 연기 뿐 아니라 미술과 음악에서도 전작에서 보여줬던 박찬욱 만의 개성이 물씬 뭍어나온다.


인기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연 웬트워스 밀러가 시나리오를 썼다는 점도 이야기꺼리다. 아, '석호필' 말이다. 잘 생기고 몸 좋은 친구가 글까지 잘 쓴다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

"사랑은 아내에게, 비밀은 엄마에게"
라스트는 할리우드가 장점을 가진 액션물이라는 전형적인 장르의 특성에 상징적인 배우 슈왈제게너가 나온다는 점 때문에 김지운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재주를 많이 발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래도 계단을 두고 벌어지는 총격전이나 옥수수 밭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전 같은 장면은 정말 멋지다. 김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다음 작품을 이미 연출하기로 했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완전히 자기만의 색깔대로 영화를 만든 박 감독과 달리 김 감독은 할리우드 주류 장르와 시스템에 잘 적응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보면 박, 김, 홍 이 세 감독을 김 감독의 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제목을 패러디해 표현해보면 이렇게 되겠다. '확실한 놈, 잘 적응한 놈, 늘 똑같은 놈.'

"사랑은 아내에게, 비밀은 엄마에게"
#. 좋은 감독들이 한꺼번에 영화를 내놓다보니 영화 자체 이야기가 길었다. 이제 코너 제목에 맞게 해원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액션이나 스릴러의 등장인물 가지곤 별 할 이야기가 없으니.

순수한 영화과 대학생 해원(정은채 분)은 이선균이 연기한 감독이자 강사인 성준과 사랑하는 사이다.

성준은 유부남인데 남들에게 둘 사이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소심남'이다. 그러면서도 둘이 잠시 헤어진 사이 해원이 동급생을 사귄 사실을 알자 "잤냐"고 해원에게 추궁할 정도로 '찌질'하다.

해원은 유부남과 사랑이 힘들어 친한 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도 하고, 꿈속에선 동급생에게 성준과 잤다는 비밀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엔 "너만 알고 있어, 비밀이야~"라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하지만 세상엔 비밀이 없다. 그런 식으로 들은 비밀을 지켜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많은데, 비밀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 자신이 믿는 사람과 그 비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해원과 친한 언니 연주(예지원 분)는 자신의 애인인 유부남 중식(유준상 분)에게 해원이 유부남과 사귄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도 "절대 아는 척 말라"고 한다.

그래서 웬만해선 내 비밀을 남에게 말하지도, 남의 비밀을 듣지도 않는 것이 좋다. 말 못할 비밀로 괴로울 때는 남에게 털어놓기보단 차라리 일기를 쓰는 게 훨씬 낫다.

스페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누구에겐가 너의 비밀을 말하는 것은 너의 자유를 맡기는 것이다." 이런 아일랜드 속담도 있다. "사랑은 아내에게, 비밀은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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