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를 보면 절대 안 되는 이유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13.05.1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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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멘토다]28. '시저는 죽어야 한다'

# 못난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오기 어렵다. 스승이 '바담 풍'하는데도 제자가 알아서 '바람 풍' 하진 않는다. TV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그 사회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우리 사회와 시대는 영 엉망이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현실은 힘들고 미래는 암울하다. 부정과 비리에 선악의 개념마저 흔들리고 있다. 정의? 그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한 외국 명문대 교수가 쓴 어느 책에선가 본 것도 같은데.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막장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건 당연하다. 막장 드라마에선 출생의 비밀, 불치병, 불륜, 패륜, 복수, 신데렐라 스토리 등이 매우 허술하게 얽히고설킨다. 뻔한 소재로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막장의 강도'만 날로 세진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질 정도다.

이 대목에서 '잘난 척, 고상한 척' 하지 말라는 비아냥이 들리는 것도 같다. 팍팍한 현실이 막장 드라마와 뭐가 다르냐고. 현실의 나쁜 놈들 대신에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나쁜 '년놈'들 욕이라도 하면서 스트레스 풀자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하긴 막장 드라마 속 인간들이나 뉴스에 나오는 인간들이나 '그 나물의 그 밥'이니.



'막장 드라마'를 보면 절대 안 되는 이유


#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감독 타비아니 형제)는 지난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감독은 이탈리아 영화계가 배출한 세계적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다.

영화는 막장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우리나라 현실과는 정 반대인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연극으로 올리는 과정을 담았는데, 나오는 배우들이 실제 교도소에 갇힌 범죄자들이다. 그것도 살인 폭력 마약 등 흉악범이다. 막장 인생을 살았던 범죄자들이 교도소에서 연극이라는 예술행위를 하는 모습을 연출을 통해 영화로 풀어냈다.

재소자들은 시저의 암살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 난무하는 아첨과 험담을 담은 대사을 연습하며 거기에 감정이입을 해 실제로 서로 대립하기까지 한다. 극 중 인물에다 지나온 범죄자로서 자신의 삶을 비추다 보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예술 작품 속에서 타인의 삶을 지켜보며 자신이 얼마나 험한 삶을 살아왔나를 비로소 느끼고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자신의 감방으로 돌아가며 내뱉은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의미를 한 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 이 영화가 소재로 삼은 연극은 원래 제사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의식은 다소 권위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있는 의식은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의식의 힘은 한 순간도 가만있지 못하는 산만한 6살짜리 늦둥이 아들에게도 통한다. 퇴근 때 사간 쿠키로 '엄마 말씀 잘 들은 착한 어린이상' 수여식을 할 때, 아들은 그날 하루 얼마나 엄마 말씀을 잘 들었는지 확인하는 2,3분여 과정 동안에 '차렷' 부동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내 삶에 다양한 이야기가 많을수록 행복한 인생"이라고 했다. 다양한 이야기는 물론 내가 직접 겪은 것이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다른 사람의 간접경험을 담은 이야기라도 많이 알고 있으면 보다 나은 삶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막장드라마는 술이나 마약 같은 것이다. 한 때 자극과 기분에 현실을 피하고 잊게 만든다. 반면 예술과 문학은 자신의 삶과 처한 현실을 바라보게 해주는 스토리가 있는 의식이다. 그 의식을 통한 삶의 대한 직시가 우리 인생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 막장 드라마 한 편 더 보는 대신, 그 시간에 소설 한 권이라도 더 읽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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