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조직폭력배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는 설정은 홍콩영화의 수작 '무간도'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전혀 다르다.
이를 통해 관객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연출 솜씨가 훌륭하다. 무간도와는 다른 측면에서 '갱스터 느와르' 장르의 특징을 잘 담아냈다. 같은 느와르 장르인 김지운 감독의 2005년작 '달콤한 인생'과 비교해도 영상미는 다소 못하지만, 이야기의 구성은 훨씬 더 재밌다.
이자성이 깡패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은 그를 조직에 침투시킨 경찰청 간부 강 과장(최민식 분)의 탓이 가장 크다. 강 과장은 이자성을 폭력조직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또 이자성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면서도 '큰일을 위해선 희생이 따른다'는 냉혹한 태도를 보인다.
물론 강 과장은 이자성에게 해외 근무라는 '당근'도 제시하지만,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정체를 탄로 나게 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이자성을 믿지 않고 주위에 이중 삼중으로 감시를 붙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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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강 과장이 이자성을 믿지 않고 함부로 대하니, 이자성도 강 과장을 믿을 수가 없다. 좋은 동료는 이해관계나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뜻을 같이 해야 하고, 그 이전에 무엇보다 믿음을 나눠야 한다.
영화에서처럼 믿을 사람 하나 없고, 자기를 보호해 줄 생각도 없는 조직을 위해 충성할 이는 실제 현실에서도 없다. 그 조직이 아무리 대단하고 위대한 일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조직은 힘이 아니라 신뢰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 영화에선 폭력조직의 실질적 2인자인 정청(황정민 분)의 지시에 따라 무심한 표정으로 살인을 서슴지 않는 연변 거지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변 거지들은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국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고, 더구나 잃을 것도 없다. 그러니 돈 몇 푼만 쥐어 주면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다.
생각이 없고,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고,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 그래서 한 나라의 정부라면 사회에 삶의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죽고 죽이는 '정글'과 같은 세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과거 30여 년간 세계를 휩쓸었던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이윤의 도구로 여겼다. 이로 인해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이 만들어졌다. 그 끝의 부작용에는 거품 붕괴에 따른 불황만 있는 게 아니다.
극단까지 내몰린 이들의 분노와 이에 따른 범죄가 더 심각하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일은 체제 수호라는 보수적 정치관점에서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