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덕지 교육 현주소는] ① "함께 입학한 17명 중 야구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단 2명"

머니투데이 MT교육 정도원 기자 2013.05.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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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심판학교에서 심판 양성 교육을 받고 있는 유제헌 심판위원(왼쪽). 가운데는 유덕형 현 KBO 심판위원. /사진=야구심판학교 카페야구심판학교에서 심판 양성 교육을 받고 있는 유제헌 심판위원(왼쪽). 가운데는 유덕형 현 KBO 심판위원. /사진=야구심판학교 카페


체육 특기생은 어려서부터 엘리트 체육 교육을 받으며 교실에 들어오더라도 잠만 자는 모습. 반면 '일반' 학생은 시간표상의 체육 수업도 '국영수'로 대체하며 점차 체육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모습. 특기생과 비특기생을 분절시켜 운영하는 그간의 체육 교육의 현실이다. 과연 이러한 교육은 어떠한 결과를 내고 있었나.

유제헌 대한야구협회(KBA) 심판위원(26)은 스스로 "운이 좋다"고 말한다. 야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위원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자양중학교-장충고등학교 야구부를 나온 '야구 특기생'이다. 2003년 그와 함께 장충고등학교에 입학한 야구부 동기는 17명. 26세면 야구 선수로서는 한창 나이인데 그 중 몇 명이나 지금 현역 선수로 활약하고 있을까.



유제헌 심판위원의 장충고 선수 시절. /사진=야구심판학교 카페유제헌 심판위원의 장충고 선수 시절. /사진=야구심판학교 카페
"지금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까지 포함해서 2명"이라고 유 위원은 담담히 말했다. 그럼 나머지 1명은 프로 선수일까. "모교(장충고)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17명이 고등학교 신입생으로 야구부에 함께 들어갔지만 그들이 26세가 된 지금, 선수로 뛰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와 KBA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두 명만이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도 있고, 대학에 특기생으로 진학한 뒤 야구를 접고 뒤늦게 공부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유 위원 또한 KBA 심판위원이라는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프로에 지명되지 않자 대학에 진학한 그는 야구를 그만 두면서 대학도 중퇴했다. 군대부터 다녀온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생각이었다.



"군대 다녀와서 이 일 저 일 했는데 야구만 해왔던 내겐 알바(아르바이트)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유 위원은 회상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용인에 있는 스포츠클럽에서 일하게 됐다. 방과 후에 아이들을 체육관에 모아 운동시키고 야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는 그게 "너무 좋았다"며 "적성에도 맞고, '역시 야구구나. 내게는 정말 야구가 맞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스포츠클럽에서는 나이 서른이 다 되가면 "이제 그만 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걸 보며 "나도 나이가 조금만 들면 저렇게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렵 마침 명지전문대학과 한국야구위원회(KBO)·대한야구협회(KBA)·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KBF)가 함께 '야구심판학교'를 설립했다. 공개 모집과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프로·아마·사회인·리틀·학생 등 야구심판의 수요가 있는 곳에 자질 있는 심판위원을 육성, 공급하기 위해 창설된 심판 전문 교육 기관이다. 유 위원은 2기 야구심판학교에 지원, 입학했다.


"'역시 야구구나' 싶던 때에 들어가서 신났다. 정말 열심히 해서 대한야구협회, 한국야구위원회 심판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수료할 때 유 위원은 KBA 후보생 발령이 나지 않았다. 그는 "수료식 하루 전날 통보를 받았는데 눈앞이 깜깜하더라"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려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도 했다. '역시 대학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했나' 하는 생각에서부터 '다시 선수 생활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갖가지 생각으로 흔들렸던 시기였다.

방황이 있었지만 유 위원은 결국 마음을 다잡고 4기 심판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두 번 실패는 없었다. 4기 수료 뒤 KBA 심판위원 후보생이 된 그는 악착같이 전지훈련에 임했다. 심판학교 교수진인 김광철·황석중 전 KBO 심판위원장이 직접 동행해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며 하나 하나 세심하게 짚어주는 교육 과정을 통해 그는 이제 야구 선수가 아닌, 야구 심판으로서 크게 성장했다.

야구심판학교에서 심판 양성 교육을 받고 있는 유제헌 심판위원. /사진제공=야구심판학교 카페야구심판학교에서 심판 양성 교육을 받고 있는 유제헌 심판위원. /사진제공=야구심판학교 카페
유 위원이 거듭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때맞춰 야구심판학교가 창설되어 체계적이고 세심한 교육을 받으며 적성에 맞는 야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 그는 "(야구하던) 선배나 친구와 안부 전화를 하면 '너 요새 뭐하냐'는 말이 나온다"며 "그 때 'KBA에서 야구심판한다'고 하면 그렇게들 부러워할 수가 없다"고 스스로도 뿌듯하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비록 프로 선수가 되진 못했지만 유 위원은 야구 특기생 중에서 '잘 풀린' 사례다. 그는 "나중에 내 아들이 '야구가 좋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해서 시킨다고 하면, 아버지 입장에서 학업과 운동을 병행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수업과 운동을 병행을 해서,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배워놨으면 좋았을텐데"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운동부 학생들에게 학업을 병행시킨다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는 주말리그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당연히 찬성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의 답은 '평가 유보'였다.

유 위원은 "나도 주말리그 경기를 심판 보러 나가지만 뭐라고 평가하기가 어렵다"며 "주말에 경기하는 것은 보지만 평일에 수업을 받고 있는지를 모르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주말리그 하게 되면서) 정말 야구부 학생들이 평일에는 수업을 받고 있나"고 되레 되물었다.

선진국처럼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자는 취지대로 평일에 수업을 잘 받고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으면 좋다. 그런데 "모든 시간을 다 쏟아 운동만 해도 프로 되기가 힘든데, 운동해 본 경험에서 과연 그렇게 (평일에 수업을 받으며 학업을 병행하게) 되고 있을까 싶다"는 것이 유 위원의 말이다.

2기 심판학교에 입학할 때 "심판이 되서 앞만 보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유제헌 KBA 심판위원. 다소간의 돌아감은 있었지만 원하던대로 되어 심판 업무에만 집중하고 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는 스스로 말한대로 '운이 좋고' '행복한 심판'이다.

하지만 안부 전화를 하며 유 위원을 부러워하는 나머지 '야구 특기생'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유 위원의 행운에는 일종의 '재교육 기관'인 야구심판학교가 큰 몫을 했다. 그렇다고 모든 '야구 특기생'을 야구심판으로 양성해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연 우리 체육 교육은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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