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덕지 교육 현주소는] ② '취미반' 리틀야구단, 그들이 배우는 것

머니투데이 MT교육 정도원 기자 2013.05.1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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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 리틀야구단 선수들. /사진=정도원 기자동작구 리틀야구단 선수들. /사진=정도원 기자


많은 야구 선수들이 리틀야구로 시작해 중학교 야구부, 고등학교 야구부를 거치는 길을 걷는다. 지난해 초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프로야구 경기조작 사건의 선수 브로커 김모 씨도 서울의 한 리틀야구 출신으로 '엘리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리틀야구는 엘리트 선수의 첫 걸음이다. 하지만 요즘은 취미로 야구를 즐기는 학생들로 구성된 이른바 '취미반' '주말반' 리틀야구단도 많아졌다. 과연 이들은 '취미' 리틀야구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울까.



제9회 도미노피자기 전국 리틀야구대회가 열린 4일 경기 구리시 주니어 야구장. 동작구 리틀야구단 소속 임성민 군(13)이 "오늘 날씨 끝내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라며 덕아웃으로 들어선다. 다른 아이들도 중간고사를 마친 뒤의 대회 1회전 경기에 잔뜩 들떠 있는 모습이다. 리틀야구계에서도 권위 있는 토너먼트 대회의 1회전을 맞이한다는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1회전 상대는 경산시 리틀야구단. 경기가 시작되자 이준 동작구 리틀야구단 감독은 주루와 작전 지시를 하기 위해 3루 코치 박스로 나갔다. 덕아웃에는 아이들만 옹기종기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며 함께 응원한다.



◆1회초, 협동심

1회초 동작구가 일찌감치 무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4번 타자이자 포수인 김태영 군(13)은 삼진으로 물러난다. 덕아웃에 앉아 있던 팀원들이 렉가드, 포수장비를 꺼내 김 군의 장비 착용을 돕는다. 포수는 미리 장비를 착용하고 있어야 공수교대가 원활하고 경기 진행이 빨라진다. 이를 위해 함께 돕는 것, 어떻게 보면 단체 스포츠인 구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협동심이다.

◆1회말, 승부욕


1회말 경산시의 반격은 매서웠다. 그러나 3루수가 땅볼을 잘 처리하고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2루수가 뜬공 처리로 잡았다. 김태영 군이 "오랜만에 제대로 한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온다. 김 군은 제3아웃을 잡은 2루수 김준원 군(13)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우리가 노아웃 만루에서 점수를 왜 못 냈을까" "잘 잡았다" "꼭 이기자"고 격려를 주고 받는다. 파이팅이 넘친다.

◆2회말, 판단력 그리고 창의성

동작구의 2회초 공격이 이렇다할 기회 없이 무산된 사이 경산시의 공격은 거세다. 안승배 리틀야구연맹 심판위원은 경기 후 "경산시가 콜드게임으로 이길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취미반'으로 구성된 동작구와 '선수반' 인원이 있는 경산시는 전력차가 있는 것이다. 3루에 주자를 두고 투수 박제민 군(13)의 공이 연거푸 바운드 볼이 되자 김태영 군은 블로킹을 하기 위해 연신 몸을 날린다.

무실점으로 막아낸 뒤 덕아웃으로 돌아온 박 군과 김 군은 감독의 지시도 없었는데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주자가 3루인데 공이 계속 낮게 들어와서 놀랐다" "그러면 주자가 3루에 있을 때는 볼 배합을 이렇게 가져가자"는 대화다. 순간적인 판단력과 대응을 요구하는 스포츠. 아이들이 스스로 더욱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코 주입식으로는 익힐 수 없다.

2회말 수비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뒤 포수 김태영 군(왼쪽)과 투수 박제민 군이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볼배합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 /사진=정도원 기자2회말 수비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뒤 포수 김태영 군(왼쪽)과 투수 박제민 군이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볼배합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 /사진=정도원 기자
◆3회초, 판정과 결과에 승복하는 정신

3회초 다시 동작구에 기회가 왔다. 박해빈 군(13)이 볼넷을 얻어 걸어 나간 뒤 2루와 3루를 연거푸 훔쳐 1사 주자 3루가 됐다. 3루 코치 박스에 나가 있는 이 감독의 "제민아, 제민아. 주자 3루야. 짧게, 짧게 갖다 맞히기만 한다는 느낌으로"라고 지시하는 목소리가 다급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3루를 바라보며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박제민 군. 그러나 루킹 삼진. 제3스트라이크가 선언되는 순간 아쉬움에 고개를 뒤로 꺾었지만 곧 씩씩하게 덕아웃으로 뛰어들어 온다.

◆3회말, 학생다움 그리고 사회성

3회말 2사. 경산시의 2루 주자가 3루 도루를 시도한다. 김태영 군이 투구를 받으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타석의 우타자가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송구 모션에서 멈칫하며 3루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이 감독은 "태영아, 타자가 가로막으면 던져야 아웃이 되지"라며 탄식한다. 즉 던져서 타자를 맞혔어야 수비방해로 아웃이 된다는 뜻이다. 옳은 말이지만 어쩐지 그런 플레이는 이 팀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중전 적시타가 터지면서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팽팽하던 0의 균형은 깨졌다. 3회말 수비를 마치고 포수 헬멧을 벗는 김태영 군의 표정은 원통함에 마치 울 것만 같은 얼굴이다. 이를 팀원들이 둘러싸고 "블로킹 정말 잘했어" "괜찮아" "웃어, 웃어"라며 격려한다.

◆4회초, 적극성

0-1로 끌려가는 가운데 맞이한 4회초. 선두타자 이현채 군(12)이 볼넷을 얻어 나갔다. 무사 1루에서 임성민 군은 초구를 냅다 때렸다. 타구는 빨랫줄처럼 투구를 마친 투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엉겁결에 잡은 투수는 1루에 송구해 미처 귀루하지 못한 이 군까지 아웃시킨다. 투수 직선타 병살. 그러나 선취점을 막 빼앗긴 상황에서 맞이한 찬스에 초구를 공략한 적극성은 높이 평가할 만 했다.

◆5회초, 예의범절

끌려가는 경기 흐름인데 서로 박수 치고 "잘 던졌어" "잘 잡았어" "잘했어" 격려할 뿐 비속어를 들을 수 없다. 요즘 초등학생 둘만 모여도 비속어 없이는 대화가 안 된다는 말이 무색하다. 처음 보는 어른에게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꾸벅 인사하고 "이것 좀 드세요"라며 음료수를 권하는 것이 한없이 밝고 예의 바른 모습이다.

◆6회초, 목표 의식 그리고 성취감

두 점을 더 실점해 0-3으로 뒤진 가운데 마지막 공격인 6회초가 되자 다들 슬슬 개인 성적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유석현 군(13)이 유지호 군(12)에게 "넌 맞혔냐"며 넌지시 묻는다. 유지호 군은 "삼진만 당했다"며 아쉬워한다. 단체 구기이며 팀 스포츠지만 한편으로는 기록이 철저히 개인에게 귀속되는 게 야구다. 이러한 아쉬움은 주말에 더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 경기에서는 꼭 타구를 만들어내고, 또 안타를 치겠다는 목표로 이어지리라. 연습하는 과정에서 목표를 이뤄내는 성취감.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야말로 어느 학원 강의를 통해서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깨달음이다.

◆경기가 끝나고, 정리정돈

경기가 끝나자 이 감독과 아이들은 뒷경기를 할 팀들을 위해 덕아웃을 비워준다. 야구는 장비가 많은 스포츠다. 각자 자신의 개인 장비는 물론 팀 장비인 배트와 공, 그리고 여러 개의 헬멧과 포수 장비를 나눠 들고 야구장 뒷편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야구단 장비를 정리정돈했다. 포수 가방 안에 렉가드, 포수 보호대, 포수 헬멧이 차곡차곡 쌓인다. 어지러이 방치해 두거나 대충 정리하면 다음 경기에 다시 쓸 때 자신들이 힘들다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동작구 리틀야구단 선수들이 장비를 정리정돈하고 있다. /사진=정도원 기자경기가 끝난 뒤 동작구 리틀야구단 선수들이 장비를 정리정돈하고 있다. /사진=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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