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어윤대, 라응찬에 배워라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10.06.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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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 전 회장에 대한 파생상품 손실 관련 문책에서 시작된 'KB금융 사태'가 1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어윤대 신임 회장 선임으로 막을 내렸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걸핏하면 한국의 금융기업 가운데는 왜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398,000원 ▼5,500 -1.36%) 같은 세계적 기업이 없느냐고 묻지만 그에 대한 답이 바로 'KB사태'에 들어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한 한국의 은행들 중에서는 결코 세계적 기업이 나올 수 없다.
 
'KB사태'에는 당사자인 황영기 전 회장이나 강정원 행장만이 아니라 정치권 실력자와 고위 금융당국자 등 무수한 사람이 등장하지만 승자는 없다. 금융당국도 큰 내상을 입었다. 여권에는 적지 않은 선거 감표 요인으로 작용했고, 앞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늘 뇌관은 인사다.

어떤 이는 'KB사태'의 승자를 어윤대 신임 회장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틀렸다. 어윤대 회장도 피해자다. 어윤대 회장은 금융통화위원에 국제금융센터소장, 성공한 대학총장에 국가브랜드위원장까지 했으니 총리를 해도 부족할 게 없다.
 
그런 그가 KB금융 회장에 선임되자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시장은 '어윤대 효과'가 아니라 '어윤대 디스카운트'로 반응했으니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나. 평소 정상적인 상황에서 KB금융 회장으로 취임했다면 시장도 그를 크게 환영했을 텐데 말이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즐비한 'KB사태'를 뛰어넘으려면 어윤대 회장이 금융기업 CEO로서 성공하는 수밖에 없다. 그 길이 대통령 친구한테 단단히 진 빚을 갚는 길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성공한 금융기업 CEO가 될까. 어윤대 신임 회장은 선임 직후 대형 M&A와 메가뱅크를 얘기했고, KB금융을 스탠다드차타드(SC)금융그룹에 견줄 만한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그런데 이건 낡고 틀린 생각이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계기로 대형화와 M&A는 진부한 말이 된 지 오래다. 그 전에 내실화와 자산건전화가 우선이다. 특히 국민은행의 현 경영상황을 감안하면 그렇다. 게다가 주식교환 방식을 통한 우리금융이나 산은지주 인수에 찬성할 관료도 별로 없다.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크고 공적자금 회수라는 측면에서도 실효성이 없다. 게다가 지금은 정권 초기가 아니다.
 
은행과 금융기업 경영자로서는 초보인 어윤대 회장은 M&A와 메가뱅크를 말하기 전에 신한금융그룹과 라응찬 회장을 배워야 한다.
 
한국에서 성공한 금융기업 경영자 모델로는 김승유 회장과 박현주 회장이 있고, 관료 출신으로서 특이한 코리안리의 박종원 사장도 있다. 그러나 최고 성공모델은 라응찬 회장이다.
 
4연임까지 하는 라 회장에 대해 혹자는 과욕을 말하지만 한국적 경영현실을 감안하면 고비마다 최적의 선택을 해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의 4연임도 그렇다.
 
권력과 관계에서도 때로는 밀착하고, 때로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국내 최고 금융그룹을 일궈냈다. 특히 그가 언제 떠나더라도 뒤를 이어줄 든든한 후계그룹까지 만들어뒀다.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 등 휘하에 장수가 즐비하다.
 
어윤대 회장은 대학 동문은 아니지만 라응찬 회장을 더 자주 만나고, 은행 경영의 멘토로 삼기를 바란다. 이젠 권력이 바뀌어도, 대통령 친구는 떠나도 자리를 지키고, 3연임 4연임하는 그런 KB금융 회장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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