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개편 총리(실) 폐지부터 하라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2008.01.0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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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대독 사과 책임 총리의 불명예 해소, 규제완화 위해 불가피

“○○씨를 총리로 임명한 것은 총리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첫 총리로 서울시장을 지낸 ○○ 씨를 지명했을 때, 지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A씨가 한 말이다. “총리는 헌법상으로 내각 수반으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국정을 챙겨야 하는 중요한 자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렇다할 실권(實權)도 없이 얼굴 마담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씨는 바로 그런 역할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5년 전 일을 회상해 낸 것은 ○○씨를 폄하하자는 뜻이 절대 아니다. ○○씨는 2003년2월에 총리에 취임한 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됨으로써 2개월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고 2004년 5월에 퇴임할 정도로 나름대로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도 당시 일화를 떠올린 것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정부조직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한다며 정부조직개편 방안을 짜고 있는 터라서, 총리실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총리(실)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도입됐다.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고, 내각의 독립성을 높여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총리(실)의 취지는 실제로 한번도 살려진 적이 없는 실정이다.



총리는 그동안 ‘대독(代讀) 총리’ ‘사과(謝過) 총리’ ‘책임(責任) 총리’로 불리었다. 3·1절이나 제헌절 같은 국경일에 대통령을 대신해서 축사를 읽거나, 뜻하지 않은 자연 및 인공 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을 대신해 국민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하며,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 대통령을 대신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총리라는 비아냥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김종필 총리나 노무현 대통령 때의 이해찬 총리처럼, 대선 때 역할이 컸던 사람이 총리가 됐을 때는 예외적으로 ‘실세총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총리 외에는 모두 ‘허세총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실용정부’를 내세우며 ‘작지만 할일을 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한 이상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바로 총리(실) 개편 내지 폐지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총리는 존재의의가 그다지 많지 않은 ‘맹장’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맹장’은 탈이 나기 전까지는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지만, 총리(실)은 탈이 나기 전에도 엄청난 비용을 발생시킨다.

눈에 보이는 비용은 엄청난 인건비다. 총리실 정원은 2007년 말 현재 252명(다른 부처에서 파견된 252명 포함 시 517명)이나 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던 1997년 말에 158명이던 것이 5년 동안 무려 94명(59.6%)나 늘었다. 이른바 ‘실세총리’였던 이해찬 총리 취임 직후인 2003 년 6월27일 수석조정관제도가 도입되면서 차관급 자리가 2개(기획차장과 정책차장)가 신설됐고, 그와 관련된 공무원도 증가한 것이다. 총리 제도가 폐지돼 총리실이 없어질 경우 517명에 해당되는 인건비만 수백억 원이 절약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도 매우 크다. 정부 정책이 내각에서 입안돼 대통령(비서실)의 재가를 받기 전에 총리실을 거치게 됨으로써 불필요한 낭비를 유발할 가능성이 커진다.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21세기에 정책 효율성이 높아지려면 의사결정 단계를 줄여야 하는데, 오히려 총리실이 강화되면서 결재단계가 길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시계바퀴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효율적인 작은 정부를 구현하려면 총리(실)를 과감하게 통폐합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총리(실)를 없애느냐’는 생각이 들어 머뭇거린다면, 대통령 비서실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그래야 총리실과 대통령 비서실이 옥상옥이 되어 정부 정책의 효율성을 갉아먹는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747공약’은 기업의 투자가 확대돼야 가능하고, 기업 투자는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이뤄질 수 있으며, 규제완화는 규제로 밥 먹고 사는 정부를 작게 하고 공무원을 줄여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인이 내건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실현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부조직 개편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총리(실) 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를 기대한다. 사족이지만 “총리(실)를 폐지하려면 헌법을 바꿔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말은 절차적인 문제일 뿐이며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사소한 장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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