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성장률 하락의 비극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2007.11.0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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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성장률 하락의 비극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지난해 5만1800달러였다. 1980년에는 6246달러로 영국의 65% 수준에 머물렀지만 1999년에 영국을 따돌렸다. 26년 만에 8.3배나 성장했다.

한국의 1인당 GNI는 지난해 1만8372달러로 1986년(2643달러)보다 7.0배 늘었다. 21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6.6%에 이른 덕분이다. 아일랜드의 경제도 같은 기간 연평균 5.9% 증가해 1인당 GNI는7951달러에서 5만1800달러로 6.5배 성장했다.



21년 동안의 경제성장률과 1인당 GNI 증가폭에서는 한국이 아일랜드를 약간 앞질렀다. 1990년대 이후 구조조정에 가장 성공한 대표적인 ‘턴 어라운드 국가’로 평가받는 아일랜드와 비슷한 성장을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1인당 GNI의 격차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1986년의 격차는 5308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격차는 3만3428달러로 확대됐다. 21년 동안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아일랜드보다 앞섰는데도 1인당 GNI 격차는 오히려 확대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최근 10년 동안의 성장률 둔화 때문이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11년 동안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8.6%로 아일랜드(4.7%)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높았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동안 한국 경제는 연평균 4.4% 성장하는데 그쳤다. 반면 아일랜드는 7.2% 성장했다. 이 결과 1996년에 8243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GNI 격차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과 아일랜드의 1인당 GNI 격차 확대는 성장률 하락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이는 한국의 광역지방단체의 1인당 소득인 지역내총생산(GRDP) 격차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2005년에 1인당 GRDP가 가장 높은 곳은 울산으로 3683만원이었다. 충남은 2455만원으로 2위였다. 반면 대구는 1057만원에 불과했고 13년 동안 골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산도 1278만원으로 제주도(1756만원)를 밑돌았다.
이렇게 지역별로 GRDP의 격차가 뚜렷한 것은 바로 지역별 성장잠재력 차이 때문이다.

성장잠재력의 차이는 국제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울산에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및 수많은 납품업체들이 있다. 충남에도 탕정(삼성SDI) 아산만(현대자동차) 당진(현대제철) 등 우수기업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 기업이 임금 높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니 GRDP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반면 한때 성장산업이던 신발(부산)과 섬유(대구) 등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해당 지역은 소득증가율이 떨어지고 있다. 수출자유지역으로 성장을 구가했던 마산 경제는 기울고 있는 반면 기계 산업의 메카인 창원은 활력이 넘친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에선 여전히 ‘반기업 정서’가 매우 강하다. ‘부도덕한 기업(주)에 반대하는 것은 정의이며 친기업은 불의’로 통하고 있다. 산업화 40년 동안 누적해서 본다면 아직 개선돼야 할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만 놓고 보면 경영투명성은 매우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성장하지 않는 도시와 국가는 비참하다. 성장을 만들어 내는 기업(가)은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기업(가)는 우리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우리의 살림살이를 펴지게 하는 고마운 존재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자연법칙은 기업의 퇴출로 성장을 멈춘 도시와 국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의 섭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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