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승만 정권 시절 그 유명한 '사사오입'(四捨五入·0~4까지는 버리고 5~9까지는 반올림하는 셈법으로, 정족수 미달의 헌법개정안을 이 논리로 불법 통과시켰다) 유행어를 베이비붐 세대로부터 듣고 잊지 않고 있던 나는 박정희 정권 시절 탄생한 교육계 그 유명한 '사당오락'(四當五落·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유행어)이라는 웃지 못할 조어에 학창 시절을 맡겨야 했다.
돌이켜보면 40대 후반까지 새벽 3시 이전에 잠이 든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단 각종 만남을 핑계로 밤 12시 전후까지 모임을 이어가면서 그 시간 전에 자면 마치 하루 시간을 뺏긴 것 같고 일찍 잠드는 것은 도태의 증거로 여기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하루의 마침표는 새벽에 찍어야 진정한 사회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믿음에 무의식적으로 기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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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난대학 연구팀도 지난해 영국 바이오뱅크 데이터를 통해 11년간 36만8000명을 추적한 끝에 낮잠 자는 빈도가 올라갈수록 고혈압 위험이 40%까지 증가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같은 결과들은 모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는 규칙적 생체리듬을 교란하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전기가 없던 시절, 밤에 활동하기 어려워 잠으로 그 시간을 보내며 최적의 몸 상태로 인간이 진화했는데 이를 역행하는 순간, 건강도 나빠질 수 있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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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늦게 자는 습관도 낮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야근하고 늦게 자야 하는 사람도 매한가지다. 일례로 야근하는 여성은 유방암 발병률이 2배 증가하고, 야근하는 남성은 전립선암이 무려 3.5배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국제암연구소가 야간에 잠을 안 자고 일하는 교대 근무를 발암물질로 분류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내가 30대 후반에 노안이 오고 전립선 비대증은 40대 초반, 녹내장의 기미가 40대 중반에 서둘러 온 것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면과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늦게 자고 적게 자는 수면은 분명 신체에 적신호를 켠다.
수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결국 낮에 자지 말고 밤에 자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대원칙이다. 낮잠을 잔다면 30분 미만, 밤엔 늦어도 밤 12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수면의 중요한 또 다른 원칙은 '언제'와 '얼마나'이다. 최적의 잠자리 시간은 언제이고, 또 얼마나 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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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나의 새벽 수면이 실패작인 건 분명하다. 밤 12시 넘어 잠들어 다음 날 일어나는 패턴과 밤 10시대 잠든 뒤 다음 날 맞이하는 상태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선 10여 년 전 나는 코골이와 무호흡증으로 수백만 원의 비용을 들여 양압기를 착용한 적이 있다. 어린이들은 턱관절이 자라는 중이어서 코골이도 무호흡증도 없지만, 점점 성장이 멈추면 턱관절이 숨구멍을 막는 호흡 장애가 생긴다. 외국에선 가끔 관절을 깎아 위치를 조절하는 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이게 너무 큰 '공사'여서 대부분 양압기를 이용한다.
작동 원리는 무호흡이 시작될 때 억지로 숨구멍을 틔워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는 식이다. 최종적으로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양압기를 이용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다음날 종일 하품 한 번 하지 않고 정신은 말짱하며 모든 일에 의욕이 넘친다. 나는 몇 달 쓴 뒤 효과가 떨어지고 사용에 불편감이 적지 않아 양압기 없는 수면 생활을 통해 일상에 다시 적응해보기로 했다.
밤 12시를 넘겨 8, 9시간을 자는 것과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5, 6시간을 자는 것을 비교해도 개인적 체험으로는 후자가 훨씬 낫다. 밤 12시 이후의 잠은 아무리 많이 자도 일단 피곤하고 몸이 무겁고 피부가 거칠하다. 밤 10시 수면은 거짓말 좀 보태면 피부가 재생되는 듯하고 눈도 초롱초롱해진다. 양압기 착용만큼은 아니지만, 면역력도 높아져 상처도 빨리 낫는다. 코골이와 무호흡증이 있어도 밤 10시대 수면이 밤 12시 이후보다 질이 더 좋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대를 격일로 비교만 해봐도 이 사실은 금세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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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얼마나' 자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에디슨은 하루 3시간만 자는 '숏 슬리퍼'(short sleeper)이고 아인슈타인은 매일 10시간 못 자면 연구하지 못 하는 '롱 슬리퍼'(long sleeper)였다. 개인마다 적응하는 수면시간이 다르다 보니,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와 본인의 생체리듬에 맞게 자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인간은 보편적으로 일정한 수면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가렛 대처는 하루 3, 4시간밖에 자지 않아 '성공한 리더의 습관'으로 곧잘 회자했으나 말년에 치매에 뇌졸중으로 투병하다 사망했다. 수면 부족은 심장은 물론, 치매와 뇌졸중에 직격탄인 셈이다.
과거에는 적정 수면시간이 다르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최근 경향은 지역과 인종을 불문하고 건강의 적정 수면시간을 정해놓고 있다. 7시간 30분이 그것. 수면시간이 이보다 훨씬 적거나 많아도 문제다. 서울대 의과대학 연구결과를 보면 5시간 이내 수면은 7시간 30분에 비해 사망률이 21% 올라가고, 10시간 이상 자면 사망률은 36%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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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계속된 비슷한 결과와 경험, 얘기를 통해 일정한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 그런 함숫값이 나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고 적용된다면 더욱 믿을 수밖에 없다. 이제 밤 10시대에 자는 일은 내 일과에서 중요한 습관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10시가 12시 같고, 12시에 가까워지면 불안이 엄습한다. 이렇게 빨리 잠자리 시간에 적응할 줄은 나 자신도 몰랐다.
못 믿는 건 단 하나. 왜 하필 밤 10시 TV엔 재미있는 드라마와 예능은 다 몰려있느냐는 것이다. 그걸 피해도 잠들기 전 잠시 들른 넷플릭스 공화국에서 던져준 유혹의 콘텐츠를 외면할 자신은 또 있겠느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