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사장 달리기는 일반 달리기보다 느리고 힘들지만, 발에 드는 강성이 높아 발 마사지 효과가 제법 크다. /후포(울진)=김고금평 기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체형 분석을 시작으로 사람 손이 눌러주듯 편안하면서 단단한 롤링이 몸 구석구석 닿을 때마다 진한 쾌감이 솟구쳤다. 그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 700만원대 최고가 마사지기 앞에 섰다. 안마의자의 원조라는 일본 직수입 제품인데, 목과 허리 등 척추에 최적화된 제품이라는 설명을 듣고 누웠더니, 아니나 다를까 구부러진 척추 마디마디가 한의사의 추나요법을 받는 것처럼 곧추세워지는 듯했다.
사람만큼 섬세한 안마를 구현하는 세런되고 멋진 안마의자들. 일반적으로 발보다 척추에 특화돼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평소 하루 3km씩 꾸준히 달리던 습관이 있었기에 바닷가에서도 그 연장선의 일환으로 달렸는데, 이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우선 신발을 신지 않았고 모래도 푹신푹신 움푹 파인 곳 중심으로 뛰다 보니 발 한번 담그고 뺄 때 드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빼야 할 발이 모래 무게 때문에 힘을 더 주게 되고, 발목의 각도도 더 꺾이는 듯해 발목 운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안마로 빗대자면, 손으로 발등 부분을 아래로 강하게 눌렀다가, 다시 발바닥을 잡고 위로 꺾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뭉친 근육을 한꺼번에 풀어주는 식이었다.
발 마사지는 통념상 발바닥이나 종아리 중심으로 해야 피로가 빨리 회복되는 걸로 알았는데, 이 색다른 발목 운동은 모든 발 마사지에 대한 그리움과 욕구를 단박에 사라지게 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겨울 바다에서도 백사장 달리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뿐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나이 때문인지 느낌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마사지에 대한 욕구는 점점 척추 중심의 상체보다 발 중심의 하체로 바뀌고 있었다. 그 발을 전문 마사지사나 마사지 기기, 맨발 산행이나 달리기 등에 맡기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백사장 달리기 하나로 해결된 듯한 느낌을 맛본 것이 이번 휴가의 최대 수확이었다. 마침 휴가 기간에 비가 엄청 내렸다. 바닷가 수영에 익숙한 사람은 잘 알지만 사실 수영은 비 올 때, 파도가 셀 때 가장 재미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달리기도 콘크리트나 폴리우레탄 트랙이 아닌 백사장처럼 의외의 지면에서 달리는 것이 피로회복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혹여 백사장 달리기가 부상의 위험이 크다고 우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탄하지 않아 삐끗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면의 종류와 부상은 특별한 연관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 나온 학계의 일반적인 결론이다.
2016년 다니엘 R 보나노 연구진은 충격 흡수 인솔을 통해 쿠션이 부상에 대한 예방 효과가 얼마나 큰지 메타분석으로 진행한 결과 쿠션이 어떤 부상에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뛸 때 중요한 힘은 지면 반력(Ground Reaction Force), 즉 발을 디딜 때 받는 체중에 대한 충격이다. 발을 세게 지면에 닿을 때 그 충격이 커서 쿠션을 넣으면 그 충격이 줄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논문의 결과는 그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달리기 힘들다면, 해변을 따라 걷는 것도 차선의 방법이다. 아름다운 바다를 옆에 두고 힘든 보폭을 옮기는 재미도 남다르다. /사진=유튜브 캡처
본인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가만히 되돌아보면 지면에 맞춰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다만 어느 고정된 지면에서의 달리기는 근육의 쓰임을 고정화하기에 다양한 지면을 통해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 더 낫다고 전문가들은 권고한다.
백사장 달리기를 마치고 하루가 지나니, 슬슬 발에 '마사지 허기'가 올라왔다. 매일 바닷가에서 달릴 수는 없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바닷가를 만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인천 지역을 공략해야겠군"부터 "아예 1박2일 코스로 전국 바닷가를 수소문해볼까"까지 머릿속엔 온통 백사장으로 가득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홍제천 3km 달리기가 숙제처럼 놓여있었다. "아 맞다. 당뇨, 그리고 고지혈증." 지금은 땀을 흘려 성인병을 쫓아낼 때지, 시원한 마사지를 그리워할 낭만을 꿈꿀 때가 아니었다. 현실 자각은 낭만보다 늘 두세 걸음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