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아재의 건강일기] ②"차라리 이혼을 하지, 어떻게 금연을"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2022.04.3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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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육체는 하루하루 배신의 늪을 만든다. 좋아지기는커녕 어디까지 안 좋아지나 벼르는 것 같다. 중년, 그리고 아재. 용어만으로 서글픈데, 몸까지 힘들다. 만성 피로와 무기력, 나쁜 콜레스테롤에 당뇨, 불면증까지 육체의 배신들이 순번대로 찾아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건강은 되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와 함께한 지난 2년간의 건강 일기를 매주 토요일마다 연재한다.

/사진=유튜브 캡처/사진=유튜브 캡처


끽연가였다. 많게는 하루 담배 2갑을 피웠다. 식후연초 불로장생이라는 시쳇말처럼, 식사의 목적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였다고 할 만큼 담배를 아끼고 사랑했다. 개인적인 이점을 덧대자면 글을 쓰다 막힐 때나 상황의 전환이 필요할 때,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힘들 때 담배만큼 의지하기 좋은 도구가 없었다.

누군가 "이제 끊을 때도 되지 않았나"라고 물으면, 그때마다 습관처럼 던진 대답은 "차라리 이혼을 하면 했지, 어떻게 금연을"이었다. '상식의 오류'라는 책에서 담배가 백해무익하나 딱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치매 예방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흡연 작가들이 치매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치매 예방 및 치료에 관한 한 그나마 그럴듯한 설명이나 설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두뇌를 계속 쓰는 것과 걷기다. 걸으면서 머리를 쓰면(이를테면 9단이 넘어가는 구구단을 의도적으로 하기/끝말잇기 등) 치매에 최적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도 있다.



치매까지 들먹이며 옆길로 샜지만, 담배 얘기를 꺼낸 것은 이 시리즈 1편에서 다룬, 이해가 가지 않은 콜레스테롤의 수치 증가와 연관 짓기 위해서다. 차분히 기억을 더듬어 복기했다. 콜레스테롤, 특히 나쁜 콜레스테롤의 증가는 보통 △유전 △비만 △지나친 지방 섭취 △과도한 음주 △당뇨 △운동부족 5가지 원인으로 설명된다.

/사진=유튜브 캡처/사진=유튜브 캡처
이 중에 내가 걸쳐있는 항목은 단 한 개도 없다. 부모가 혈관에 관련된 병을 앓은 적이 없고, 체중은 2020년 초 60kg대 초반(키 179cm)인 데다, 지방 섭취는 되레 모자란 게 문제였고 음주는 소원 중 하나일 정도로 간절히 원했던 식습관이었으며 당뇨는 그 뜻조차 관심 없을 만큼 '타인의 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등산, 수영, 자전거, 테니스를 즐기는 내게 운동 부족도 거리가 먼 요인이었다.



남은 건 담배, 담배가 영향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도 않는다. 콜레스테롤은 식습관과 관계가 더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따지고 따져도 나올 인자가 없다면 담배, '너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30년 피우면서 매일 힘든 육체를 보고 있자니, 이참에 끊는 것도 일거양득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금연하다 실패한 사례가 주변에 너무 많아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이 덜컥 났다. 혼자서 하려 하지 말고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도 많았다. 그 말을 믿고 집 근처 보건소에 들렀다. 중도 포기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보건소 관계자는 패치나 약을 권장했다. 확실히 끊기 위해 '챔픽스'라는 약을 복용하려다가 환청 같은 신경계 부작용을 듣고 바로 포기했다. 패치나 금연 껌 같은 보조 치료제도 염두에 뒀으나, 의존성 버릇이 가져올 약한 의지에 이내 거리를 뒀다. 금연의 연속성을 지키는 가장 좋은 비법은 무엇일까.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 허태원씨가 모델로 출연한 금연광고 포스터.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 허태원씨가 모델로 출연한 금연광고 포스터.
의외로 간단하다. 결과적으로 '금연 2년'을 지킨 현재에서 돌이켜보면, "내가 만약 담배를 피운다면"이라는 가정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금연을 시작해도 금세 포기하는 것은 지울 수 없는 '기억'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뒤 한 모금 들이킬 때 목구멍을 꽉 채우는 질식의 쾌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술을 동반한 흡연은 취기를 달래는 각성제이고 힘든 운동과 노동을 끝내고 마주하는 담배는 수고와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이런 기억만큼 "내가 지금 피운다면" 의사 말대로 수억 개 폐포가 하루에 수만 개씩 줄어들어 결국 어느 날 계단을 오를 때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숨을 못 쉬게 되고, 노화로 조금씩 약해진 전립선과 관절, 만성피로가 더 악화할 새로운 경험을 '기억'해 볼 수 있다.

덧붙여서 "내가 피운다면" 이번에 안 피우고 넘어갔다면 피우기 전만큼 정신이 맑았을 텐데 라든가, 1년이나 5년 뒤 흡연으로 어떤 수술을 받고 치료 과정과 재활에 쏟는 시간을 상상할 때 드는 온갖 후회들을 기억해 낼 수 있다. 미리 기억함으로써, 과거의 기억을 떨쳐내는 셈이다. 과거의 기억은 즐거움으로 남지만, 미래의 기억은 공포에 가깝다.

금연 첫날부터 한 달간 이 가정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지켰다. 이 악물고 억지로 지킨 것도 아니다. 금연하고 2시간 지날 땐 "그래, 아까 안 피우길 잘했지", 하루가 지났을 땐 "어제 피웠으면 아침에 이렇게 일찍 못 일어났겠지." 같은 '여우의 신포도' 합리화로 즐겁게 이겨냈다. 그렇게 1년간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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