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아재의 건강일기] ①믿었던 건강의 배신 <1>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2022.04.2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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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육체는 하루하루 배신의 늪을 만든다. 좋아지기는커녕 어디까지 안 좋아지나 벼르는 것 같다. 중년, 그리고 아재. 용어만으로 서글픈데, 몸까지 힘들다. 만성 피로와 무기력, 나쁜 콜레스테롤에 당뇨, 불면증까지 육체의 배신들이 순번대로 찾아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건강은 되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와 함께한 지난 2년간의 건강 일기를 매주 토요일마다 연재한다.

2020년 건강검진에서 유전도 비만도 음주의 원인도 아닌 데도 나빠진 김고금평 기자의 콜레스테롤 수치. 2020년 건강검진에서 유전도 비만도 음주의 원인도 아닌 데도 나빠진 김고금평 기자의 콜레스테롤 수치.


비만을 단 한 번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되레 살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20세 때, 코미디언 고 김형곤이 방송에 나와 살찌는 노하우를 대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자기 직전, 라면 한 그릇을 끓여라. 그렇게 한 달만 해라." 무릎을 치고 실행에 들어갔다. 한 달까지 채우지 못했지만, 2주는 버텼던 것 같다. 하지만 몸무게는 전혀 늘지 않았다. 태생이 멸치처럼 말랐으니, 더는 기대하지 말자며 먹고 싶은 거 실컷 먹는 즐거움과 자유를 만끽 누렸다.

그렇게 단 한 번 살이 찐 적 없이 50kg 중후반대 몸무게를 30년간 유지했다.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는 키 179cm, 몸무게 52kg이 나왔는데 담당자가 3kg만 빼면 현역 대신 방위로 빠질 수 있다는 꿀팁을 알려줄 정도로 이런 비대칭적 몸무게를 신기해했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먹으면서도 튀긴 음식, 피자, 햄버거 등은 피했다. 피했다기보다 손이 가지 않았다. 살이 안 찌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 마른 남자는 대체로 여성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런 대학 시절을 인내해 내는 유일한 자기 위안은 "말랐으니 성인병에서만큼은 자유롭겠군" 정도였다.

LDL 콜레스테롤과 중성 지방 수치가 높아지면 고지혈증에 걸리기 쉽다.  /사진=유튜브 캡처LDL 콜레스테롤과 중성 지방 수치가 높아지면 고지혈증에 걸리기 쉽다. /사진=유튜브 캡처
직장에 들어간 30세부터 20년간 마른 체질과 그것의 유지는 일종의 자부심으로 읽혔다. 갑자기 체중이 증가한 선배 앞에선 "근육이 있으시니 운동만 잘 하시면 더 건강해지실 겁니다" 같은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역시 난 말라서 다행이야"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이어트에 돌입했다는 취재원을 만날 땐 풍성한 오찬 앞에서 냠냠 쩝쩝 먹어주며 "제 소원은 살찌는 겁니다"라는 염장(?) 지르는 멘트도 서슴지 않았다.

유전적 요인으로 술을 못 마시는 것도 마른 체형 유지의 배경이었다. 그렇게 영원할 줄 알았던 마른 체형은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몰아치던 2020년 중반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전과 생활 습관이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전혀 상관없는 병들이 어느 날부터 건강 기록에 하나씩 차곡차곡 쌓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상 징후는 혈관이었다. 콜레스테롤이 그 주인공. 혈압, 체중 정도만 건강의 기준 범위로만 여겼던 나에게 그런 혼란스러운 용어는 불안감을 키웠다.


2020년 총콜레스테롤 259, LDL 콜레스테롤 174. 이 수치들 옆에 기준 수치가 있었다. 쉽게 풀면 총콜레스테롤은 200, LDL은 100을 넘기면 위험하다. 그 전년에는 총콜레스테롤이 159, LDL이 88이었다. LDL은 두 배 가까이 뛴 셈이다. 특히 내장에 지방이 쌓이는 중성지방(TG) 수치는 72에서 135로 역시 두 배 정도 증가했다.

고지혈증을 유발하는 원인들. /사진=유튜브 캡처고지혈증을 유발하는 원인들. /사진=유튜브 캡처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수치를 인정하고 참회하려면 분명 나쁜 무언가를 저질렀던 기억과 경험이 온전히 배어있어야 했다. 나는 고백컨대, 그런 기억이 없다.

분명 이 수치는 치킨 1마리에 맥주 3, 4잔을 주중에 적어도 두 번 이상 함께 마시며 휴일에 피자 한 판 시켜 콜라를 원샷으로 들이킨 짜릿한 목축임을 반추해낼 수 있어야 가능한 기록이다. 피자나 햄버거는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고, 튀긴 음식은 가장 싫어하는 먹거리 중 하나이며 술은 위에 언급한 대로 "(소준 기준) 2잔 이상 마시는 게 소원"일 정도였다. 건강에 나쁜 일 한 적이 없다고 자부했는데, 왜 이런 수치와 기록들이 나온 걸까.

증거도 없고 설득도 되지 않는 이 수치에 분노와 짜증이 치밀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까. 우선 왜 이런 수치가 일어났는지 다시 곰곰이 복기해야 했다. 이런 일은 '우연히' 발생한 재수 없는 형벌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이 잘못한 무언가에 의해 탄생한 귀결일 테니까. 1년 전, 아니 지난 세월을 다시 돌이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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