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아재의 건강일기] ⑭ 죽어도 안 빠지는 내장지방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2022.10.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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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육체는 하루하루 배신의 늪을 만든다. 좋아지기는커녕 어디까지 안 좋아지나 벼르는 것 같다. 중년, 그리고 아재. 용어만으로 서글픈데, 몸까지 힘들다. 만성 피로와 무기력, 나쁜 콜레스테롤에 당뇨, 불면증까지 육체의 배신들이 순번대로 찾아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건강은 되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와 함께한 지난 2년간의 건강 일기를 매주 토요일마다 연재한다.

중년에 접어들수록 쉽게 빠지지 않는 내장지방. /사진=유튜브 캡처중년에 접어들수록 쉽게 빠지지 않는 내장지방. /사진=유튜브 캡처


하마터면 깜박 속을 뻔했다. '하루 5분 운동으로 뱃살 빠지는 법', ''이것' 먹었더니 내장지방 녹아' 같은 영상들 앞에서 모든 시름이 단박에 사라졌다. 뱃살, 특히 내장지방을 줄이는 게 너무 힘든 나에게 단비 같은 콘텐츠였다.

'lose belly fat'(뱃살 빼기) 앱을 가장 먼저 깔고 초보부터 중간 단계까지 두 달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따라했다. '점핑잭'(Jumping Jacks) '싯업 트위스트'(sit-up twist) '리버스 크런치'(reverse crunches) '마운틴 클라이머'(mountain climber) '플랭크'(plank) 등 소위 '복부'와 관련된 모든 뱃살 빼기 운동의 정석들을 동원했다.



소화는 잘되는 것 같았다. 위에서 대장으로 내려가는 속도가 2배쯤 빨라진 느낌이랄까. 점핑잭(팔벌려뛰기)으로 뛰어오르는 횟수만큼 방구가 나오는 놀라운 경험은 이 운동의 위력과 효능을 새삼 느끼게 했다.

그렇게 꾸준히 했는데도 뱃살은 빠지는 것 같지 않았다. 기상하자마자 (비록 체중계 인바디로 재는 계측이긴 하지만) 체중계에서 얻는 각종 수치 중 유독 진전이 없는 항목이 내장지방이었다. 체지방, 근육, 단백질, 기초대사량이 점점 나아졌지만, 유독 내장지방만이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한 수치인 9를 기록했다. 전날 저녁을 굶다시피 하거나 운동을 과격하게 했을 때(8)를 제외하곤 9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중년의 내장지방은 생각만큼 쉽지 않고 하는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CT를 통해 나타난 복부지방. /사진=유튜브 캡처CT를 통해 나타난 복부지방. /사진=유튜브 캡처
1년 전 당뇨 판정을 받고 시작한 식이조절과 운동습관은 수많은 건강 지표에 획기적인 개선점을 안겨줬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거의 반으로 떨어졌고, 체중은 8kg나 줄었다. 뱃살을 포함한 허리둘레도 나름 혁신의 길을 걸었다. 복부비만의 기준선인 90cm에 가깝던 허리둘레(85cm)가 74cm로 줄어 다시 허리띠를 장만해야 했다.

하지만 내장지방은 끝내 혁신의 길에 동참하지 않았다. 아니, 건강의 종착역은 마치 내장지방이라는 듯, 거기까지 오는 길은 멀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나날이 증명하고 있었다.

복부 비만을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운동이 달리기였다. 1km부터 시작해 지금은 매일 아침 5km를 달릴 정도로 몸 상태가 달라졌다. 다리 근육은 제법 단단해졌고 호흡도 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체중은 원하는 만큼 줄었기에 더 이상 바랄 게 없는데 문제는 여전히 내장지방이었다. 내장지방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내장지방은 체내 염증이 많아져 각종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서울대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연구팀이 3000여팀을 대상으로 추적검사한 결과 단순 비만인 사람보다 내장비만인 사람이 향후 대사증후군 위험이 높았다. 내장비만은 염증을 활성화해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 등 대사증후군을 높인다는 것이다.

최근 건강검진 결과에서 중성지방은 82mg/dl로 이전(154mg/dl)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고 LDL콜레스테롤도 89mg/dl로 정상범위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당뇨 역시 공복혈당 111mg/dl,(이전 151) 당화혈색소 6.3(이전 6.9)으로 당뇨인이 아닌 당뇨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그간의 노력으로 수치는 대부분 '정상 범주'에 놓였지만, '혈관 암살자'로 불리는 호모시스테인(homocysteine) 수치가 이전(6.2μmol/L)보다 2배 가까이 높은 11.5μmol/L를 기록했다. 의사 말로는 동맥경화 위험 신호로 수용될 수 있으며 이는 경동맥초음파상에서도 관찰된다고 했다. 복부 CT 소견 결과 내장지방이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삼겹, 오겹으로 쌓여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순간, 배반감이 몰려왔다. 음식에 절제, 운동에 진심이라는 일상의 문법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왜 암울한 수치가 예상 밖에서 하나둘 튀어나오는 걸까. 나이 때문인가, 조절 강도 때문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자, 차근차근 문제점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전당뇨나 당뇨 단계에 있는 사람은 소량의 음주도 큰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전당뇨나 당뇨 단계에 있는 사람은 소량의 음주도 큰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우선 먹는 것부터 계산해야 했다. 수많은 영상에선 복근 운동으로 내장지방을 관리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운동과 식이와의 상관관계에서 우위는 식습관에 있었다. 예를 들어, 복근 운동 열심히 하고 소주에 삼겹살로 한 끼를 해결하면 "내가 운동했으니, 이 정도 음식쯤이야" 같은 합리화는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다.

달리기가 체중 감량에 좋은 운동이긴 하나, 내장지방을 없앤다는 믿음은 착각에 불과할 수 있다. 미국의 한 대학이 8개월간 매주 17.6km 조깅을 시켰더니, 내장지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분을 포함해 살이 빠졌지만, 내장지방 효과는 미미했다는 얘기다.

흔히 배꼽을 기준으로 그 위가 내장지방, 아래가 피하지방으로 구분한다. 내장지방은 손으로 움켜잡기 어렵고 피하지방은 쉽게 잡힌다. 복부지방을 빼려고 작정할 때 더 쉽게 빠지는 쪽은 내장지방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도 개인마다 다르고, 환경에 따라 다르다. 100kg이 넘는 사람이 복부를 뺄 때 내장지방은 엄청 빠른 속도로 빠질 수 있지만, 70kg대는 그보다 더딘 경우가 적지 않다.

다시 내 경우로 돌아와, 잘 안 빠지는 내장지방의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봤다. 운동은 물론, 탄산(과당) 음료 안 마시고 탄수화물 반으로 줄이고 빨리 먹는 습관까지 고쳤는데도 내장지방에 변화가 없다면 역시 더 이상 빠질 곳이 없는 한계 상태에 다다른 것일까, 아니면 잘못된 습관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가능성이 가장 낮지만 나름 걸리는 것은 하나였다. 술이었다. 나는 유전적으로 술을 거의 못 먹는데 '술이라니'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다음의 내용들과 마주하니 적극적으로 부인하기도 힘들었다.

동국대 일산병원 가장의학과 연구팀이 건강한 남성 951명을 대상으로 알코올 섭취량과 내장지방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알코올 섭취량이 많을수록 내장지방 양은 증가하고 피하지방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술 한두 잔은 심혈관에 좋다고 알려졌지만, 역시 내장지방 축적 위험도 높인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진 셈이다.

무엇보다 적은 양의 음주는 전당뇨나 당뇨병 단계의 사람에게 담도암 위험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전당뇨(혈당 100~125 mg/dL 이하)인 사람이 매일 소주 2~3잔을 마실 경우 담관암 발병 위험이 일반인보다 20% 높아졌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홍정용 교수, 고려대안산병원 가정의학과 박주현 교수로 이뤄진 연구팀이 2009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을 받은 952만 629명을 분석한 결과다.

내장지방이 많은 경우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보다 플랭크 같은 근육 운동이 더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유튜브 캡처내장지방이 많은 경우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보다 플랭크 같은 근육 운동이 더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유튜브 캡처
잘 알려졌다시피, 탄수화물 1g은 4kcal다. 단백질은 4kcal, 지방은 9kcal다. 알코올은 물처럼 칼로리가 거의 없을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알코올 1g은 탄수화물의 2배 가까운 7kcal다. 맥주 500cc를 마시면 200kcal, 소주 한병 비우면 300kcal를 섭취하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알코올이 내장지방의 주범이라는 뜻이다.

원리는 이렇다. 가뜩이나 칼로리가 높은 것도 문제인데, 알코올은 무엇보다 독성물질이어서 우리 몸이 이를 분해하는데 집중하느라 기존 지방을 분해하는 작업을 멈춰 기존 지방이 중성지방으로 합성돼 복부에 쌓이는 역할을 본의 아니게 돕는다. 칼로리가 높아 쌓이는 술배와 기존 지방의 분해를 놓쳐 쌓이는 지방배로 내장지방은 더 가파르게 두꺼워지는 것이다.

당뇨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라면 술 한두 잔쯤이 건강에 필요한 '간식'일 수 있지만, 당뇨 범위에 조금이라도 걸쳐있는 사람이라면 만성염증의 원인인 내장지방과 암 위험의 시한폭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엄격하게 들이대자면, 당뇨인은 술 한잔도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마신 술 한 잔이 되레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퍼졌다. 이런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까지 방해받으며 엄격하게 살아야 하나 같은 회의감도 밀려들었다.

우울한 기분으로 '고독한 미식가'를 보다 뇌리에 박히는 문장 하나를 낚아챘다. "내 삶의 이유는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는 것이다."

행복을 생각하면 '미식가의 철학'을, 건강을 고려하면 '술 한잔의 원칙'을 따라야 했다. 둘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 내 삶의 도마에 다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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