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권도형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뉴스1
'K-코인' 루나와 테라의 연쇄 폭락 사태로 세계 암호(가상)화폐 시장이 큰 충격을 받은 가운데 한국산 코인을 발행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루 만에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가총액 2000억달러(256조원)를 증발 시키고, 세계 각국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공황 상태로 몰아 넣은 테라폼랩스의 핵심인물.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불과 지난달까지 '한국판 일론 머스크'로 불리며 가상화폐 총아로 평가받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실리콘밸리 희대의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즈 전 테라노스 CEO와 같은 처지로 몰락했다고 전했다.
'1테라=1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출발
/사진=테라폼랩스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에 골몰했던 이들은 2018년 테라폼랩스를 설립했고, 이듬해인 2019년 특이한 알고리즘을 채택해 코인을 발행했다. 이것이 바로 스테이블 코인(가격이 고정된 암호화폐) 테라와 이와 연동된 코인 루나다. 권 대표는 테라 블록체인 생태계의 기본통화인 루나의 공급량을 조절해 테라 1개의 가치를 1달러에 맞추는 '1테라=1달러' 공식을 도입했다. 또 테라를 예치하면 루나로 바꿔주고 최대 20%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가상화폐 테라USD와 루나 도식 /사진=테라폼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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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투자자들이 돈을 태우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테라 기반 디파이 예치금은 이더리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테라의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시가총액만 한때 180억달러(23조원)에 달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테라의 자매 암호화폐인 루나의 시총은 지난해만 100배 이상 급증했다.
두 코인이 시가총액 상위권 암호화폐로 급부상하면서 시장에서 권 대표도 거물로 통했다. 그는 테라 가치를 떠받치는 안전장치의 일환으로 15억달러(1조9000억원) 어치 비트코인을 사들이며 암호화폐 큰 손을 의미하는 '비트코인 고래'로 주목받기도 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CEO 트위터 계정/사진=트위터 캡처
지난해 9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소송전에 나서면서 권 대표는 더 큰 유명세를 탔다. SEC가 테라폼랩스의 서비스가 일종의 미등록 증권이라며 소환장을 발부했는데 권 대표는 이 소환장이 적법하게 발부되지 않았다며 당당히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유동성 사라지자 무너진 알고리즘…소송·고발 이어질 듯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차트가 표시되고 있다. 최근 한국 블록체인 기업 테라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테라'가 사흘째 무너지면서 자매코인격인 '루나' 역시 5월초 대비 95%에 가까운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2022.5.12/뉴스1
가상화폐 상승기에는 이 알고리즘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시장이 냉각되면서 시스템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1테라가 1달러 밑으로 추락하자 권 대표가 이끄는 테라폼랩스는 루나를 대량으로 찍어냈다. 루나로 테라를 사들여 유통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테라 가격을 올리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루나 가치가 통화량 증가를 버티지 못하고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테라와 루나를 동반 투매하는 '뱅크런' 사태로 이어졌다. 이른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루나 코인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의 계좌/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권 대표에 대한 주요 외신들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설계한 알고리즘이 일종의 사기였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 7월 영국의 한 경제학자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모델의 실패 가능성을 지적하자 권 대표가 "난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던 일화도 재조명되고 있다.
가상화폐 전문매체인 코인데스크의 데이비드 모리스 수석 칼럼니스트는 "권 대표는 루나 폭락 사태로 소송과 형사 고발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나의 근본 구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권 대표가 "바퀴벌레", "바보" 등으로 대응해 온 것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