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0원, 투자자 거지됐다"…'한국판 머스크'는 왜 몰락했나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22.05.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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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가상화폐 루나·테라 폭락→상폐,
권도형 테라폼랩스 CEO 코인 발행자에 관심…
대원외고·스탠퍼드 학력, 애플·MS 경력 소유자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권도형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뉴스1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권도형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뉴스1


'세계 7위 비트코인 고래→남자 엘리자베스 홈즈→죽음의 소용돌이 창시자.'

'K-코인' 루나와 테라의 연쇄 폭락 사태로 세계 암호(가상)화폐 시장이 큰 충격을 받은 가운데 한국산 코인을 발행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루 만에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가총액 2000억달러(256조원)를 증발 시키고, 세계 각국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공황 상태로 몰아 넣은 테라폼랩스의 핵심인물.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불과 지난달까지 '한국판 일론 머스크'로 불리며 가상화폐 총아로 평가받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실리콘밸리 희대의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즈 전 테라노스 CEO와 같은 처지로 몰락했다고 전했다.



미 명문대인 스탠퍼드 출신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피 한 방울만 있으면 200여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 '여자 스티브잡스'로 불리는 등 촉망받던 스타트업 대표였지만 사업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검찰에 기소된 인물이다.

'1테라=1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출발
/사진=테라폼랩스/사진=테라폼랩스
권 대표는 1991년생으로 화려한 이력의 청년 창업가다. 한국에서 대원외고를 졸업한 뒤 미국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로 불리는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2015년 와이파이 공유서비스 애니파이를 선보였다.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2016년 분산 네트워크를 연구하다 '코인 토끼굴'에 빠져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소셜커머스 업체인 티몬의 신현성 창업주와 의기투합해 사업 모델로 발전 시키기까지는 꼬박 3년이 걸렸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에 골몰했던 이들은 2018년 테라폼랩스를 설립했고, 이듬해인 2019년 특이한 알고리즘을 채택해 코인을 발행했다. 이것이 바로 스테이블 코인(가격이 고정된 암호화폐) 테라와 이와 연동된 코인 루나다. 권 대표는 테라 블록체인 생태계의 기본통화인 루나의 공급량을 조절해 테라 1개의 가치를 1달러에 맞추는 '1테라=1달러' 공식을 도입했다. 또 테라를 예치하면 루나로 바꿔주고 최대 20%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가상화폐 테라USD와 루나 도식 /사진=테라폼랩스테라폼랩스가 발행한 가상화폐 테라USD와 루나 도식 /사진=테라폼랩스
루나에 열광했던 투자자들, 권 대표 SNS 팔로워 60만명↑
테라가 몸집을 불린 건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열풍이 불면서다. 변동 폭이 극심한 다른 가상자산과 달리 가치 유지가 목적인 스테이블 코인은 암호화폐 기반의 디파이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 역시 테라를 키우는데 일조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돈을 태우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테라 기반 디파이 예치금은 이더리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테라의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시가총액만 한때 180억달러(23조원)에 달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테라의 자매 암호화폐인 루나의 시총은 지난해만 100배 이상 급증했다.

두 코인이 시가총액 상위권 암호화폐로 급부상하면서 시장에서 권 대표도 거물로 통했다. 그는 테라 가치를 떠받치는 안전장치의 일환으로 15억달러(1조9000억원) 어치 비트코인을 사들이며 암호화폐 큰 손을 의미하는 '비트코인 고래'로 주목받기도 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CEO 트위터 계정/사진=트위터 캡처권도형 테라폼랩스 CEO 트위터 계정/사진=트위터 캡처
권 대표는 한국과 테라폼랩스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를 오가며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권(Do Kwon)'이라는 아이디의 그의 트위터 계정 팔로워는 60만명을 웃돈다. 가상화폐 재벌이 된 권 대표는 '루나틱((Lunatic)'으로 불리는 투자자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적극 소통했다. 이 같은 모습이 세계 최대 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닮았다고 '한국판 머스크'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소송전에 나서면서 권 대표는 더 큰 유명세를 탔다. SEC가 테라폼랩스의 서비스가 일종의 미등록 증권이라며 소환장을 발부했는데 권 대표는 이 소환장이 적법하게 발부되지 않았다며 당당히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유동성 사라지자 무너진 알고리즘…소송·고발 이어질 듯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차트가 표시되고 있다. 최근 한국 블록체인 기업 테라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테라'가 사흘째 무너지면서 자매코인격인 '루나' 역시 5월초 대비 95%에 가까운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2022.5.12/뉴스1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차트가 표시되고 있다. 최근 한국 블록체인 기업 테라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테라'가 사흘째 무너지면서 자매코인격인 '루나' 역시 5월초 대비 95%에 가까운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2022.5.12/뉴스1
하지만 권 대표의 몰락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물자산을 담보로 하는 일반적인 스테이블 코인과 달리 루나와 테라 간 거래 알고리즘이 전부인 이 가상화폐는 발행 초기부터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 '다단계' 등 비판에 시달렸다.

가상화폐 상승기에는 이 알고리즘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시장이 냉각되면서 시스템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1테라가 1달러 밑으로 추락하자 권 대표가 이끄는 테라폼랩스는 루나를 대량으로 찍어냈다. 루나로 테라를 사들여 유통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테라 가격을 올리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루나 가치가 통화량 증가를 버티지 못하고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테라와 루나를 동반 투매하는 '뱅크런' 사태로 이어졌다. 이른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루나 코인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의 계좌/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루나 코인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의 계좌/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는 이틀 만에 99% 이상 폭락한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를 상장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시세가 회복되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품었던 투자자들은 그야 말로 패닉 상태가 됐다. 유튜브와 SNS 등에는 루나 코인 투자에 실패했다는 인증 게시물이 도배됐고, 투자자들이 오열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되기도 했다.

권 대표에 대한 주요 외신들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설계한 알고리즘이 일종의 사기였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 7월 영국의 한 경제학자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모델의 실패 가능성을 지적하자 권 대표가 "난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던 일화도 재조명되고 있다.

가상화폐 전문매체인 코인데스크의 데이비드 모리스 수석 칼럼니스트는 "권 대표는 루나 폭락 사태로 소송과 형사 고발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나의 근본 구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권 대표가 "바퀴벌레", "바보" 등으로 대응해 온 것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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