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입고' 계단 성큼성큼… 사고 22년만에 그가 걸었다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06.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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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연세대 ‘워크온슈트4’ 공동개발…비장애인 보행속도와 비슷…"장시간 착용도 무리 없어"

워크온슈트4를 착용한 모습/사진=KAIST워크온슈트4를 착용한 모습/사진=KAIST


# 김병욱 씨는 1998년 뺑소니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휠체어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웠다. 그런 김씨가 대전 카이스트 기계공학동에서 두 발로 일어나 걸었다. 입는(웨어러블) 로봇 ‘워크온슈트’를 통해서다. 그는 워크온슈트를 입고 오는 9월 예정된 재활로봇올림픽 ‘사이배슬론 2020’에 출전한다.

워크온슈트는 두 다리를 감싸는 외골격형 로봇이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된 기계장치를 벨크로(일명 찍찍이)와 플라스틱 끈으로 온몸에 연결했다. 낙상사고를 막기 위해 로봇을 공중에 안정적으로 매단 안전줄이 연결됐다. 저렇게 육중한 장비를 몸에 달고 과연 걸을 수 있을까? 하지만 잠시 뒤 상황이 달라졌다. 로봇 전원을 켜자 몸에 부착된 로봇 모터가 동작하며 힘을 쓰기 시작했다.



로봇은 김 씨 관절 곳곳을 안정적으로 받쳐줬다. 워크온슈트를 착용한 김 씨는 양팔에 지팡이를 끼고 훈련코스를 자유롭게 걸었다. ‘위잉’하는 기계음과 함께 약간 휘청대는 모습이 간혹 연출됐지만, 테이블 장애물을 피하고 널빤지와 나무막대로 만든 약 3m 길이 울퉁불퉁한 길에선 신중하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끝으로 김 씨는 마의 코스로 꼽힌 ‘계단’ 앞에 선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김 씨는 한 팔은 계단 난간을 잡고, 다른 한 팔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여섯 계단을 단숨에 오르고 내려왔다. 그 모습이 무릎을 굽히고 펴는 동작이 일반인들의 걸음걸이와 유사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워크온슈트4/사진=KAIST워크온슈트4/사진=KAIST
"장시간 착용 무리 없어"…탐승자 맞춤형 설계된 ‘워크온슈트4’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나동욱 교수와 공동 개발한 웨어러블(착용형) 로봇 ‘워크온슈트4’를 15일 공개했다. 워크온슈트는 모터의 힘을 활용해 하반신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우들의 움직임을 보조한다. 일어나 걷는 등의 기본적 동작은 물론 계단·오르막·내리막·옆경사·문 열기·험지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시리즈4가 이전 모델과 달라진 점이라면 ‘장시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연구팀에 따르면 이전까지 개발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은 장시간 사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반신 기능을 잃어 근육 등 신체 기능이 퇴화한 장애인들이 로봇을 착용하고 움직이려면 수십 kg에 이르는 무게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팀은 인체가 이루는 자연스러운 균형을 모사해 로봇의 무게중심을 설계하는 기술을 고안했다. 쉽게 말해 탑승자의 신체 움직임에 맞춰 보행 형태 및 속도를 다르도록 설계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하다.


워크온슈트4는 로봇이 착용자의 걸음을 30보 이내로 분석, 가장 적합한 보행 패턴을 찾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이 같은 기능 덕에 연속보행 시 1분당 40m 이상을 걸을 수 있다. 공 교수는 “시간당 2~4km 가량을 걷는 비장애인의 정상 보행 속도와 견줄만한 수준”이라며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하반신 완전 마비 장애인의 보행 기록 중 가장 빠른 속도”라고 강조했다.

공 교수 연구팀은 오는 9월 예정된 재활로봇올림픽 ‘사이배슬론 2020’에 출전할 계획이다. 입는 로봇으로 계단 오르내리기, 장애물 회피 등 총 6개 코스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 대회다. 공 교수팀은 2016년 스위스에서 열린 제1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소방관용 입는 로봇/사진=한국생산기술연구원소방관용 입는 로봇/사진=한국생산기술연구원
‘입는 로봇’ 포탄이송용으로 1960년대 첫선…대기업·연구기관 참여로 응용분야 확대
사실 이런 ‘입는 로봇’이 나온 지는 한참 됐다. 1960년대 미 해군이 함정의 포탄 이송용으로 처음 개발했다. 시초가 전투용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뛰어들면서 시장 판도가 점차 바뀌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7년 의료용 입는 로봇 ‘H-MEX’를 공개한 바 있다. 과학계도 ‘인공신체’에 관심을 두며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창업한 FRT는 ‘소방관용 입는 로봇’을 처음 내놨다.

산업용 입는 로봇에 비해 의료용은 시장 수요가 비교적 적다. 게다가 기술도 더 고난도다. 하지만 이 분야를 선점하면 산업로봇 등 다른 부문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기계연구원 측은 “웨어러블 로봇이 향후 보편화 되면 장애 극복은 물론 택배나 물류 등 신체 일부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분야의 작업환경을 개선할 수 있고, 나아가 고령화 시대 노동인력 감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은 전 세계 입는 로봇 시장이 오는 2025년 83억 달러(약 1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중 절반은 의료용 로봇, 나머지는 산업용·군인용 로봇이 나눠 차지할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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