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발작 위험 실시간 감시"…첨단 '뇌 센서' 개발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02.11 01:00
글자크기
국내 연구진이 뇌전증(간질)으로 인한 발작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 현택환 단장(서울대 석좌교수) 연구팀은 뇌 여러 영역의 포타슘이온(K+) 농도 변화를 동시에 측정하는 고감도 나노 센서를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생쥐의 발작 정도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뇌전증은 3대 뇌 질환으로 꼽힌다. 주로 뇌 신경세포의 불규칙한 흥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분한 뇌 신경세포는 포타슘(칼륨)이온을 바깥으로 내보내며 이완한다. 하지만 신경세포 내 포타슘이온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흥분상태를 유지하면 뇌전증의 증상인 발작과 경련이 일어난다.



현택환 IBS 나노입자 연구단 단장(공동교신저자)/사진=IBS현택환 IBS 나노입자 연구단 단장(공동교신저자)/사진=IBS


뇌전증을 비롯해 신경세포의 활성으로 인한 뇌질환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다양한 뇌 부위에서 포타슘이온 농도 변화를 추적·관찰하는 일이 필요하다.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경련은 전체 인구의 1%가 가지고 있을 정도로 빈도가 높지만 지금까지는 실시간으로 신경세포의 변화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신경세포가 흥분할 때 세포막의 이온통로를 통해 이동하는 포타슘, 소듐(Na), 칼슘(Ca) 등의 이온 중 포타슘이온의 농도변화만 선택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웠기 때문. 게다가 포타슘이온의 농도변화는 다른 이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측정이 어려운 편이다.

이에 따라 우수한 선택도와 민감도를 가진 포타슘센서를 개발하려는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기존 기술로는 배양된 신경세포, 뇌 절편, 마취상태의 동물 등 제한된 환경에서만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움직임이 뇌 신경세포의 활성에 즉각 반영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관찰을 위해서는 자유롭게 이동하는 상태에서도 활성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진은 나노입자를 이용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생쥐에서 포타슘이온의 농도 변화만 선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고감도 나노센서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먼저 포타슘이온과 결합하면 녹색 형광을 내는 염료를 수 나노미터(nm) 크기의 구멍을 가진 실리카 나노입자 안에 넣었다.

이 나노입자 표면을 세포막에 있는 포타슘 채널과 유사한 구조를 가져 포타슘만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얇은 막으로 코팅했다.

막을 통과한 포타슘이온이 염료와 결합해 내는 형광의 세기를 토대로 포타슘이온의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이후 연구진은 움직이는 생쥐의 뇌 해마, 편도체, 대뇌피질에 나노센서를 주입한 뒤 해마에 전기적 자극을 가해 발작을 일으킨 뒤 포타슘이온 농도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손가락과 같은 신체의 세부적인 부분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발작의 초기 단계인 부분발작이 일어나는 경우 자극이 시작된 뇌 해마에서 편도체, 대뇌피질 순으로 순차적으로 농도가 증가했다.

반면, 전신발작 때는 3개 부위 포타슘이온 농도가 동시에 증가하고 지속시간 역시 길어짐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태에서 실시간으로 뇌 신경세포 활성을 측정하는 것은 물론, 뇌의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농도 변화를 감시할 수 있어 발작의 정확한 발병기전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포타슘이온 농도는 뇌전증은 물론 알츠하이머병, 파킨슨 병 등 뇌질환의 발생을 감시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 만큼, 연구진은 이번 기술이 다양한 뇌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으로 인해 발병하는 여러 뇌질환의 발병원인 규명 및 진단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택환 단장은 “개발된 나노센서를 이용하면 뇌전증에 의한 발작 정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뇌 여러 영역의 포타슘이온 농도 변화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며 “향후 뇌전증이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뇌질환들의 병리기전 규명과 진단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나노기술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게재됐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