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억제제, 이게 잘 들을 겁니다”…감염병에 맞선 AI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02.0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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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인공지능(AI)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코로나)을 억제할 치료제를 찾는 ‘긴급대응연구’에 본격 나서면서 AI를 활용한 신약개발에 관심이 모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 질병관리본부 지난 6일 신종 코로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신속진단제 개발 등 긴급대응연구 4개 과제를 선정·발표했다. 여기에는 수많은 기존 약물 중 신종 코로나를 억제할 치료제를 확보하는 ‘AI 기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 재창출’ 연구가 포함됐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바이러스 계통 약물중 신종 코로나를 억제하는 약물이 있다고 보고 AI를 이용해 찾고 있다.



기존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신종 코로나에 효과…AI는 어떻게 알았나
실제로 AI와 머신러닝(기계학습)으로 신약을 개발 하고 있는 AI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베네볼런트에이아이 연구진은 자제 개발한 AI 알고리듬을 이용해 기허가 류마티스관절염치료제 ‘올루미언트’(Olumiant, 성분명 바리시티닙)가 신종 코로나 치료에 효과적임을 밝혀 의학전문지 ‘랜싯’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DNA(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에이즈(HIV) 치료제(로피나비르, 리토나비르)가 신종 코로나의 치료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아직 확실한 근거를 가진 약은 없다면서, AI를 활용해 신종 코로나 감염 과정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기전을 확보한 기허가 약물들을 검색했다. 그 결과 올루미언트가 가능성 있는 약물로 꼽혔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수용체 매개 내포 작용을 통해 세포 내로 침투한다. 내포 작용은 세포가 자체의 세포막을 안쪽으로 함입시킴으로서 외부의 물질을 적극적으로 세포 내부로 이동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연구진은 신종 코로나가 폐 세포 안으로 침투할 때 이용하는 수용체는 폐, 신장, 혈관, 심장 세포의 표면 단백질인 ‘ACE2’로 추정했다. AI는 ACE2의 내포 작용을 촉진하는 ‘AAK1(AP2-associated protein kinase 1)’를 억제하면 바이러스 감염 과정을 방해할 수 있어 신종 코로나 감염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를 토대로 1차적으로 47개 약물을 찾았고 이어 6개 약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엘로티닙’ 등 부작용이 심한 항암제는 제외하고, 1일 1회 2mg 혹은 4mg 정도의 적은 용량으로도 충분한 효능을 낼 수 있는 올루미언트가 적합한 최종 약물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 연구는 초기 단계로 신종 코로나 치료제 발굴을 위해선 보다 더 정교한 분석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연구진의 견해다.


사진=버네벌런트AI 웹사이트사진=버네벌런트AI 웹사이트
하루 만에 에볼라 신약 후보 발견…AI 신약개발은 태동기
베네볼런트에이아이의 연구결과를 받아본 국내외 전문가들은 감염병 확산의 위기 상황에서 AI가 의과학자 수 백 명 이상의 역할을 대신할 역량을 지녔다는 점에 주목한다.

보통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고 시판하기까지 10~15년 가량 걸리는 데다 2조 원 이상의 개발 비용이 투입된다. 그 과정은 이렇다. 기존 5000∼1만 개 신약 후보 물질을 탐색해 10∼250개 물질을 발굴한다. 이어 세포나 동물을 이용한 전 임상 시험 단계를 거쳐 10개 미만 물질이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 쓰인다. 이 같은 3단계를 거쳐 겨우 하나의 신약이 탄생한다. 임상 1상부터 FDA 승인을 통과하는 신약 성공률은 평균 9.6%에 불과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면 기존 2∼3년 걸리던 신약 후보 탐색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부작용 우려가 있는 후보 물질도 걸러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AI를 활용해 기존 화합물 정보를 수집·학습하고 신약 표적에 맞는 최적의 화합물 조합을 예측하면 기존 5년이 걸리던 후보 물질 발굴 단계를 1년 내외로 단축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발간한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개발 동향’ 자료에 따르면 10명의 연구자가 14개월간 15개의 말라리아 신약 후보 물질을 발견한 데 반해 IBM AI 왓슨은 한 달 만에 30개 이상을 발굴했다. 연구자 한 명이 조사할 수 있는 자료가 200~300건인 반면, AI는 100만 건 이상의 논문을 한 번에 탐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 기존 임상결과의 추적 방식은 임상 참여자의 응답에 의존하고 의사의 주관이 개입됐다. 데이터 측정 빈도도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신약의 유효성·안전성, 용법 및 용량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AI 기술을 응용한 웨어러블(착용형) 의료 진단기기의 발전으로 객관적·정량적으로 환자를 관찰하고, 용법·용량·부작용 등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세계 1위 제약사인 미국 화이자는 IBM의 AI ‘왓슨 포 드러그 디스커버리’로 면역 및 종양학 연구, 신약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화이자는 왓슨을 활용해 지금까지 축적해둔 암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신약 발굴과 병용 요법 연구에 활용 중이다.

AI 기반 선도 물질 최적화 플랫폼인 ‘스탠다임 베스트’(Standigm BEST)는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기존 의약품의 새로운 용도를 발굴하는 ‘약물 재창출(drug repositioning)’ 사업에 착수했다. 국내에선 최근 SK케미칼이 스탠다임과 신약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도 2017년부터 AI 기반 신약 개발에 착수했다. 다케다약품공업, 시오노기제약 등 제약업체와 후지쯔, NEC 등 IT(정보기술)기업 50여 개가 문부과학성 산하 과학기술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 교토대 등과 함께 신약 개발 컨소시엄 LINC(Life Intelligence Consortium)를 구성하고 신약 관련 AI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AI로 신약 개발에 전문화한 약 85여 개(2018년 기준) 스타트업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시장이 초기이나 관련 스타트업이 비교적 많은 이유는 최근 벤처캐피탈로부터 많은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베네볼런트의 경우 2018년 1억1500만달러(약 1364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아톰와이즈는 AI로 하루 만에 에볼라에 효과 있는 신약 후보 2개를 발견했다. 버그는 14조 개에 이르는 암 관련 데이터를 AI로 분석,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한 바 있다. 영국 엑사이언티아와 일본 다이닛폰스미토모제약은 AI를 활용해 강박장애(OCD) 치료제 화합물(DSP-1181)을 도출했다. 엑사이언티아 측은 “AI를 활용해 신약개발에서 임상까지 12개월로 대폭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I는 기존에 있던 데이터를 학습해 신약 후보 물질을 찾는 방식이므로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발굴할 수는 없다. 또 데이터가 부실하면 결과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신약 후보 물질 발굴은 신약 개발의 첫 단계로써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역량이며, 상대적으로 영세한 국내 제약사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단일 기업이 구축하기 어렵다”며 “정부 지원과 더불어 특정 분야의 질환이나 기반 기술에 전문성을 갖춘 틈새 선도 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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