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박스] 이미지의 배반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2013.09.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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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초콜릿박스] 이미지의 배반


몇 달 전 자전거를 선물로 받았다. 다섯 번 정도 탔던 것 같다. 그 후 장마가 왔고 그 동안 자물쇠를 걸어 아파트 자전거 주차장에 놓았다. 그런데 며칠 전 자전거가 사라졌다. 경비실에 말했더니 찾아주겠다며 자전거의 색깔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접이식이고 사이즈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거 빼고 잘 기억나는 것이 없다. 억지로 기억을 더듬어 은색인 것 같다고 말했다. 파란색이 섞인 것 같다고도.

경비실에서 자전거를 찾는다는 소문이 아파트 내에 돌자 이를 의식했는지 이틀 뒤 자전거 도둑은 자전거를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나를 가장 경악하게 만든 건 내 자전거의 색깔이었다. 그것은 내가 말한 것처럼 은색도 파란색도 아닌 하얀색과 빨간색이었던 것이다! 기가 딱 막혔다. 도대체 내가 기억한 건 뭐란 말인가. 순간 나의 모든 기억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은 정말로 내가 아는 것들의 기억일까. 혹시 나의 기억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을, 내가 믿고 싶은 대로만 기록 되었던 것은 아닐까. 왜곡된 나의 기억을 바라보고 있자니 벨기에 출신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생각난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중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는 파이프가 크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파이프 바로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쓰여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그리트가 그린 파이프는 그림이지 파이프는 아니다. 파이프라는 단어 역시 그 사물을 지시하는 단어일 뿐 그 본연의 존재는 아닌 것이다.



마그리트는 사실적인 그림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화가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독특하게 표현해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게 만든다. 그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우리의 '관습적인' 사고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안다고 믿는 것은 실제 아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자전거와 실제 자전거는 달랐다. 그리고 오늘 내 자전거는 나의 관습적인 사고방식에 경종을 울리는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내게 '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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