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박스]말하는대로, 생각한대로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2013.06.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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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초콜릿박스]말하는대로, 생각한대로


음악가들 사이에는 9번 징크스라는 것이 있다. 베토벤, 슈베르트, 드보르작, 부르크너 모두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고 난 후 죽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인데 이를 제일 두려워했던 사람은 구스타브 말러다. 말러는 9번째 교향곡을 작곡하고는 9번이란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인다. 그 후 10번째 교향곡을 작곡하고는 이내 9번이라 이름 붙였고 이 후 11번째, 즉 10번 교향곡을 작곡하는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대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한 여름 캠프에서 우연한 기회에 내 왼손 네 째 손가락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다른 손가락들과 달리 네 째 손가락은 혼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지 의문이 들어 당시 여름캠프에 있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상대로 물어보고 실험해본 결과 내 손가락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왜 내가 특정 fingering (운지법)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이런 손가락이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깨닫고 나는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째 손가락은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세 째 손가락에 의지해 움직였다. 그러니 빠른 음악을 연주할 때 손가락이 느려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내 절친이었던 대만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 곧 움직일 거야." 거의 마비에 가까운 내 손가락을 보며 그러 말을 태연하게 하는 그 친구가 참 야속했다. "어떻게 움직여? 선천적으로 안 되는걸!" "그냥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봐. 그럼 될 거야." 난 기가 막혔지만 너무나 큰 확신을 갖고 말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가 없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난 네 째 손가락에 매달렸다. 수도 없이 내 왼손에 대고 말했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라고. 어느 날, 꿈쩍도 하지 않던 네 째 손가락이 정말이지 기적처럼 움직였다. 마비라는 건 경험도 못해본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말이다.

지난 4월 중국 쓰촨성 지진 당시 CCTV 화면이 공개되었다. 200여 명이 희생되었을 정도로 긴급한 상황에 침착하게 대피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모습이 찍혀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을 샀다. 중국에서는 '비상구'를 '태평문'이라고 표기한다고 한다. 응급 상황을 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저 문을 통과하면 태평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은 참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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