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박스] '열정'과 '욕심'사이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2013.01.0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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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초콜릿박스] '열정'과 '욕심'사이


얼마 전 한 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 그저 월급을 받기 위해 다니는 직장이 아닌 내가 열정을 가지고 임할 수 있는 나의 일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직장인은 아니지만 나도 내 '열정'을 다할 신년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2013년 한 해 이루고 싶은 리스트를 적다 보니 한 페이지를 채울 정도로 참 많다.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인 나의 꼬마제자의 마지막 레슨 날이다. 일주일 넘게 연습을 하지 않은 준서는 나에게 미안했던지 악보에 눈을 고정시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해있었다. 마지막 레슨을 어떻게 마무리 하는 것이 준서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열정과 재능 중 어떤 걸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길 것 같니?" 준서는 주저 없이 "열정이 많은 사람이요"라고 대답했다. 열정을 의심하지 않는 순수함의 반증이다. 이어서 나는 물었다. "그럼 열정이 많은 사람은 뭘 할까?" 준서는 대답이 없었다. "연습을 하지." 내가 말했다. 준서는 뭘 그렇게 당연하고 재미없는 말을 하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습을 해. 연습을 하지 않고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욕심쟁이지. 준서는 열정쟁이에요, 욕심쟁이에요?"



순간 내 맘 한구석이 콕 쑤셔옴을 느꼈다. 그 질문은 마치 내가 그 동안 직면하기 싫었던 나에 대한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가끔 우리는 열정을 그저 '원하는 것' 내지는 '가지고 싶은 것' 정도로 착각한다. 열정이란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빠져 사는 것, 그래서 희생을 희생이라 여기지 않는 것, 욕심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일 텐데 말이다.

오랜 친구를 만났다. 한참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바쁘다던 친구는 뜬금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8년 전 내가 한 말을 학생들에게 아주 잘 써먹고 있다며. 난 재능을 타고난 소위 '천재'를 부러워하는 친구에게 "천재가 가진 제일 중요한 재능은 열정이다"라며 "천재는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있기에 그 열정을 보통사람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정말… 그런 말을 했던가….?'



내가 적어놓은 리스트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열정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어느덧 그 의미를 잊은 채 열정의 가면을 쓴 욕심쟁이가 앉아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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