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조용필이 무대에 선다면…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2013.05.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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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초콜릿박스]

'90세' 조용필이 무대에 선다면…


조용필이 음반을 냈다. 60이 넘은 나이에 발매한 신규앨범의 판매량은 순식간에 10만장 돌파를 내다보고 있다. 힘을 빼고 대중적인 음악 색깔을 살린 이번 앨범의 발매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쉽고 경쾌한 음악은 50년 세월의 거장의 것이라기 보단 신인가수의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젊고 도전적이다.

그의 이번 도전은 약 10여 년 전 보스톤에서 보았던 한 연주회를 생각나게 한다. 바로 90세 바이올리니스트 로만 토텐버그의 것이다. 토텐버그는 6세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11세에 데뷔를 했을 정도로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는 당시 보스톤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종종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헛갈리기도 하고 서로 나눴던 대화를 기억 못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연주를 한다니.



콘서트 당일, 보스톤 대학엔 노장의 연주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몇몇 사람들은 90세에 연주회를 여는 그를 보며 경이를 표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과연 그가 연주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불이 꺼지고 그가 느릿느릿한 속도로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그는 90년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악기와 활을 어깨 위에 올렸다. 그 몇 초의 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진 걸까? 어쩌면 내 맘속에는 그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멋진 연주를 해 주길 기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 바이올리니스트의 손끝에서 나오는 음악은 힘도 없고 정확하지도 않았다. 음정은 물론, 박자, 소리까지도. 그의 연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연주가 시작 된지 한 5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뜨거운 무언가가 내 가슴속을 마구 휘졌고 다니기 시작했다. 틀린 음정도 쉭쉭거리는 소리도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뜨거워진 가슴은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90세의 나이에 무대에 선 그는 예전 화려했던 소리를 이제는 낼 수 없다는 것을 몰랐을리 없다. 자신이 뜻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 섰다. 음악은, 예술은, 테크닉을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닌 가슴을 울리는 것이라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 그 진실을 상기시키기나 하듯 말이다.



그날 보스톤의 한 연주홀에선 할아버지 바이올리니스트의 90년의 세월이, 음악의 역사가, 그 누구도 담을 수 없는 깊이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의 눈에선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찬란했던 시절에 머물고 싶어 한다. 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안주하려 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는 것. 그들의 음악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일 테다. 앞으로 기대해본다.

앞으로 기대해본다. "조용필이 음반을 냈다" "조용필이 또 다시 음반을 냈다" "올해로 90세가 된 조용필이 신규 음반을 냈다"라는 얘기가 들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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