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면 지는 거고, 미치면 이기는 거야"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13.07.0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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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멘토다]35. '감시자들'‥범죄액션에 녹아든 성장 드라마

# 한 후배가 있었다. 몇 년 전 그는 한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회사 규모는 작았지만 열심히 일했다.

그는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는데다, 인원도 없는 부서에 속하게 됐다. 여건은 열악했고 모든 게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죽을 둥 살 둥 일했다. 밤도 숱하게 샜다. 그렇게 1년 이상을 일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 조직에서 인정은 별로 받지 못했다. 윗 사람이 별 생각없이 시킨 일에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다, '고집 세고 제 멋대로'라는 나쁜 평판까지 얻어야 했다.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2년이 흘러갔다.



그는 점점 지쳐갔고 실망하게 됐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내게 "회사에서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가 한 고생을 알기에 짠했지만 선배로서 "그 회사 괜찮아 보인다. 조금만 더, 한 2~3년만 더 참고 견뎌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따라서는 인정받기 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다. 너는 모르지만 지금 네가 하는 노력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을 거다. 알아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거다. 조금만 더 참아봐."



하지만 지치면서 열정을 잃은 그 후배는 자기가 맡은 일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후배는 몇 년이 지나 훨씬 커진 그 회사보다 형편이 더 못한 다른 회사에서 지금도 고군분투 중이다.

"지치면 지는 거고, 미치면 이기는 거야"


# 올 하반기 한국 영화의 첫 기대작 '감시자들'(감독 조의석, 김병서)은 범죄 액션물로 2007년작 홍콩 스릴러 '천공의 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대담한 범죄 조직을 찾아내려는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의 이야기를 다룬다.

헬리콥터 카메라까지 이용해 촬영한 도시의 고층건물과 거리 뒷골목을 무대로 연출한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일부 사실적 부분에서 단점은 있지만 전반적인 만듦새가 탄탄하다.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리듬감 있는 스토리 전개도 좋고,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배우들의 연기 변신도 신선하다.


그런데 이 영화, 범죄 액션스릴러물이면서 사회 초년병의 성장기도 함께 그리고 있다. 바로 한효주가 연기한 감시반 신참 경찰 '하윤주'의 이야기다. 하윤주는 한번 본 것은 모두 기억하는 탁월한 기억력과 관찰력을 가진 우수한 인재다.

그녀는 감시반 황 반장(설경구)의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다. 하지만 실장과 반장은 겨우 턱걸이로 통과했다며 그녀의 기를 죽인다. 선배들이 우수한 후배가 자칫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하윤주는 무전기를 켜놓고 소변을 보다 그 소리를 온 동료들에게 중계하기도 하고, 사채업체자들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해주려다 칼에 찔릴 위기에 처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감시반 경찰로 점차 성장해 나간다.

그러다 자신의 품 안에서 동료가 범죄자의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리며 죽자 큰 충격을 받고 경찰을 관두려 한다. 하지만 결국 충격을 이겨내고 특유의 기억력을 발휘해 범인 검거에 공을 세운다.

# 요즘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이상으로 심각한 건 어쩌면 젊은이들의 '인내심 부족'일지도 모른다. 틀에 박힌 교육을 받고 자라 스스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젊은이들은 일단 논외로 하자.



우여곡절 끝에 어떤 일을 정했어도 그걸 끈질기게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 한 가지 일에 자기에게 맞는지 스스로 느끼려면 최소 3년은 그 일에 해봐야 한다. 또 그 일을 정말 잘 하기 위해선 최소 10년은 미쳐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몇 달만에, 아니면 많아야 1년 안에 시작한 일을 관두는 경우가 주변에 허다하다.

일이란 건 꾸역꾸역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미쳐서 해야 한다. 그러면 누구에게나, 어떤 종류의 일이라도 길이 보이게 돼 있다. 영화 속에서 황 반장이 하윤주에게 한 조언을 실생활에서도 늘 새길 필요가 있다. "끝까지 버텨야 해. 지치면 지는 거고, 미치면 이기는 거야."

# 좀 긴 뱀꼬리. 수다 삼아 주연 배우들의 연기 변신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주인공 황 반장 역할의 설경구는 과거 '형사 강철중' 캐릭터를 통해 과하게 정의로운, 그래서 다소 비현실적으로도 보였던 강한 캐릭터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하나의 전문 직업으로서 자연스런 모습의 경찰 역할을 잘 해냈다. 막판에 칼을 맞고도 멀쩡하게 범인을 끝까지 잡으러 가는 다소 '오버'스러운 설정만 아니었다면 이미지 변신이 좀 더 완벽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범죄자 '제임스' 역의 정우성은 이 영화에서 처음 악역을 맡았다고 했다. 그런데 엄밀히 보면 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맡은 박도원 역도 사실 '정의의 사도' 역할은 아니다. 제목이 그래서 그렇지 사실은 주인공 셋 모두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 나쁜 놈들이었다.

정우성은 지금껏 히트작 '비트'의 주인공 ' 민이' 캐릭터의 이미지에서 제대로 빠져 나오지 못했는데, 이 영화에선 반항기를 거쳐 '40대의 범죄자가 된' 민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별 대사 없이 눈빛과 아우라 만으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재능이다. 그런 배우 역시 연기파 배우만큼이나 많지 않다.



한효주는 그동안 드라마 '동이'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반창꼬' 등에서 단아하거나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의 역할을 주로 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드라마적이고 전형적인 캐릭터였는데, 이 영화에선 보다 현실적인 캐릭터로 다듬어진 연기를 펼친다. 이렇든 저렇든 어쨌든 그녀는 예쁘다.

아이돌 그룹 2PM 출신의 이준호는 첫 장편 데뷔작인데도 자신의 배역인 '다람쥐' 역에 잘 녹아들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에 이어 10대 소녀 팬들을 꽤나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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