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법을 보는 시각은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국민후생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공수단'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이해관계자들의 협상 결과'라는 견해도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후자가 진실에 가깝다. 미국 금융개혁법의 내용 중 일부는 이미 예측이 가능했다.
월가의 주요 금융회사들이 가진 정치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상·하원 합의안을 도출하려면 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법안내용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 원안에 포함됐던 은행의 헤지펀드 사모펀드 투자금지, 은행세 신설 등이 합의안에서 완화되거나 아예 삭제된 것은 어느 정도 예정된 사항이었다.
그러면 이번 금융개혁법은 정치적 쇼에 불과했던 것인가. 아니다. 이번 개혁법은 당파를 넘어 경제적 중요성을 지닌 2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감독당국에 모든 부실금융기관에 개입해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과거 이러한 구조조정 권한은 부실은행에 대해서만 부여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1998년 금융위기 처리과정에서 감독당국에 부여된 권한이기도 하다. 사적재산권에 대한 정부 개입을 극도로 백안시하는 미국의 경제문화를 감안할 때 감독당국의 구조조정 권한 강화는 새로운 변화다. 파생상품에 대한 감독, 헤지펀드의 등록의무화 등과 함께 감독없는 금융시스템의 영역은 사라질 것임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조항이다.
다음으로는 시스템리스크 관리기구 설립이다. 금융개혁법은 재무부, 연방감독기구 등으로 구성되는 '시스템리스크 감시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자산거품 등 금융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판별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이 기구의 임무다. 부동산가격 상승 등의 현상이 있을 때 범정부적인 대책이 수립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거시안정성을 위해 금융회사를 감독한다는 관점이 존재한 적 없는 미국의 금융문화를 감안하면 상당한 변화다. 형식적으로는 '관치금융'의 재량이 허용된 셈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그러므로 이번 개혁법은 어느 정도 '미국의 한국 따라잡기'다. 금융시스템은 감독되고 개입에 의해서라도 안정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관점의 확산을 상징한다. 위기방지 및 관리를 위해서는 감독당국에 포괄적 재량권 행사를 허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미국에서도 확인된 사건이었다. 금융개혁법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