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의 범람]①신용대란 불씨 될라

더벨 황철 기자 2008.06.11 14:35
글자크기

[이슈리포트]CP 발행액 65조 육박 … 은행 유동성 악화시 공멸 ‘우려’

기업어음(CP)이 자금시장의 뜨거운 화두다. CP시장의 폭발적 성장세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CP와 관련한 제도 및 정책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CP의 급팽창으로 자금시장과 채권시장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은행 단기차입금에 CP까지 더해져 기업 자금조달이 지나치게 단기에 집중돼 있다는 경계론이 확산되고 있다. 건설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 ABCP에 대한 불안감 또한 커진 상태다.



문제는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현상이 심화되거나 건설사 자금난이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CP차환 실패가 잇따르고 은행들의 자금회수가 본격화돼 금융시장 전체가 불안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은행들은 장부상 회사(SPC)인 콘듀잇(conduit)을 설립해 대규모로 CP를 발행하고 있어 'CP시장發 자금시장 위기론을 키운다'는 힐난을 받고 있다.

윤영환 굿모닝신한증권 크레딧애널리스트는 "대우사태, 카드대란의 원인 또한 대규모 CP 발행 이후 신용경색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라며 "지금처럼 장·단기 자금시장의 불균형이 계속된다면, 금융시장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CP, 자금시장 체질 악화 '주범'

지난 수년간 자금조달시장은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체질 개선에는 실패했다는 부정적 평이 대부분이다. CP·은행대출 등 단기자금 시장이 비약적으로 확대된 데 반해, 장기 공모 회사채는 침체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CP시장은 지난해 초를 기점으로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의 CP잔액은 64조 5500억원(5월15일 현재)에 달한다.


2006년 말 28조 3610억원과 비교하면 가히 폭발적인 팽창이다. 1년5개월여만에 36조 2000억원 가량 늘어나, 증가율만 128%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지난해 연말 55조5190억원보다 9조원 가량 잔액을 보탰다.

[CP의 범람]①신용대란 불씨 될라


이러한 CP시장 급성장의 원인은 기업들의 땜방식 자금조달과 은행의 무차별적 자산 확대 정책이 상호 작용한 결과다.



기업 입장에서는 금리 불안 등을 이유로 회사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달비용이 싼 단기차입을 선호했다. 은행 또한 몸집불리기의 일환으로 각종 규제에서 자유롭고, 인수가 손쉬운 CP를 선택했다.

문제는 기업들의 CP 활용 폭이 지나치게 넓어졌다는 점이다. CP는 주로 기업 단기자금의 과부족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이용된다.

그러나 일부 기업에서는 설비투자나 장기 운전자금과 같은 고정자금 수요에 CP를 활용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고정자금을 단기 차입으로 충당하면 그만큼 유동성 리스크가 커진다.



CP가 일반적으로 대기업과 우량 공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도 역으로 보면 문제를 키울 수 있다.

만약 유동성 위기가 불거져 우량 기업마저 자금난에 허덕일 경우, 중소기업은 물론 금융기관까지 ‘도미노 붕괴’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한번 막힌 돈줄(자금 통로)은 쉽게 뚫리지 않는다는 자금시장의 통용 진리가 섬뜩해지는 대목이다.

최근 건설업종의 자금조달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의 폭증은 더욱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건설 경기 악화로 부실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탓이다.



현재 ABCP 잔액은 29조 7140억원으로 전체 CP의 46%를 차지한다. 이중 건설 ABCP는 12조 2730억원에 해당한다. 100조원대로 추정되는 부동산PF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수개월 이내에 돌아오는 만기구조상 파급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국내 부동산PF 자금의 70% 이상을 조달하고 있는 은행들에게는 유동성 위기를 불러일으킬 뇌관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작은 균열이 제방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시장의 경고가 기우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CP의 범람]①신용대란 불씨 될라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CP는 여느 자금조달원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지만 만기가 짧아 일순간에 기업 도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특히 건설사를 포함한 대기업, 공기업이 부실화할 경우 중소기업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제도개선, 투명성 요구 ‘봇물’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법·제도 개선을 통한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약속어음과 유가증권의 애매한 위치에 놓인 CP의 법적 지위를 단일화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른바 단기사채법의 도입 요구다.



최근 종금업을 겸하고 있는 우리·신한·외환은행이 매입한 CP가 유가증권이냐 대출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것도 기업어음의 이중적 지위 때문이다.

은행들이 종금계정에 부과하는 신·기보 출연료를 피해 콘듀잇(conduit)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원인 또한 여기에 있다. 은행 콘듀잇은 CP 급팽창을 유도해 조달시장을 왜곡한 주범이기도 하다.

CP정보 투명화에 대한 요구 역시 거세지고 있다. 현재 은행연합회와 증권예탁결제원이 CP관련 정보를 취합하고 있지만, 정보활용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ABCP의 경우 공시체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다.



위 관계자는 “발행 CP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도 정부 주도의 공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은행연합회와 예탁결제원의 취합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