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기술은 회수할 수 없다 [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2024.08.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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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B는 한 때 직장 동료였다. 각각 2000년과 2004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해 같은 업무에 종사했다. 세계1위 제품을 만들던 A와 B는 2020년~2021년 몇개월 차이를 두고 함께 퇴사했고, 2021년 한 해에 각각 다른 중국 업체에 들어갔다. 한국의 산업역군에서 중국의 핵심 기술인력으로 변신하기까지 기간은 3~5개월에 불과했다.

이들의 제2의 인생은 꽃길이 되지 못했다. 과거 다니던 회사에서 기밀을 빼내 중국 회사에 넘긴 사실이 적발돼 최근 한국 사법 당국에 의해 함께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평범한 엔지니어였던 이들이 이제는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사건 피고인으로 재판받는 법정 동료가 됐다.



기술유출 혐의를 적발은 했지만 이들이 이직해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3년여 동안 넘어간 기술은 회수가 불가능하다. 사법당국은 이들이 중국 업체로부터 거액을 제안받고 회사를 옮겼으며 실제로 기술을 넘긴 것까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기업이 수조 원을 투입해 확보한 핵심기술을 중국 업체는 푼돈으로 쥐었다.

해당 산업은 1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중국 기업을 압도했지만 올해 1분기 들어 근소한 차이로 역전을 당했다. 평범한 엔지니어들에 의해 빼돌려진 기술이 중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고, 산업 지형까지 바꿨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사내 기술 보안에 철저하지 못했던 기업만을 탓할 수 없다. 열 사람이 한 명의 도둑을 막지 못한다는 속담이 가장 잘 통하는 곳이 첨단기술 산업 현장이다. USB나 휴대폰 등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매체를 단속하면 내용을 종이로 일일이 프린트해 검색장치를 피해가는 식으로 허를 찌른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 유명 대학 산합협력관에 위장 연구소를 설립한 뒤 핵심 인재들을 포섭하는 등 기술 탈취 수법을 빠르게 발전시킨다.

기술유출 방지가 중요하다고 떠들기만 했지 대책은 사후약방문에 기대는 게 현실이다. 제도적인 뒷받침은 기업의 요구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정부가 지난해 의욕적으로 도입한 '첨단기술 전문인력' 지정·관리 제도가 대표적이다. 기업이 보유한 전문인력에 대해 이직을 제한하고 기업이 이들의 출입국 기록까지 조회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인데 개별기업에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개별 기업 기밀사항이라며 구체적인 실적은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전문인력으로 실제 등록된 인원은 극소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전문인력으로 등록되면 직업선택의 자유나 주거이전의 자유를 침해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정되기는 꺼리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선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등록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정부에 호소하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사람 자체가 각각의 기술이고 사람이 넘어가면 기술이 넘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업무 중 취득한 핵심 기술을 보유한 인력이 경쟁업체로 이직해 기술 유출이 우려될 경우 민사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전직 금지를 내려달라는 본안 소송이 아닌 가처분 신청 결과조차도 나오는 데 몇 개월이 소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실효성이 크지 않다.


기술을 빼앗겨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 해외 시장에서 고전하게 되고 쉽게 경영난으로 이어진다. 핵심기술을 보유한 인재들에 대한 처우도 나빠진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비자발적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소속 회사에서 만족하지 못한 인재들이 해외 경쟁기업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악순환이 빨라지고 한때는 국부의 원천이었던 산업이 쇠락하는 수순을 밟는다. 조그만 구멍 하나가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기술유출 방지에 지금 쏟아붓는 노력은 가까운 미래에 막대한 보상으로 돌아온다.

도둑맞은 기술은 회수할 수 없다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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