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씨(46·가명)가 머니투데이 기자와 화상으로 인터뷰하는 모습. / 사진=최지은 기자, 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
올해 4월 업무차 해외에 있던 김윤수씨(46·가명)는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두 살 터울 동생 김연수씨(44·가명)가 사라진 지 1년이 된 시점이었다.
순간 안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혹시 동생이 죽은 채 발견된 것은 아닐까' 손과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동생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뻤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동생이 사라진 1년간 윤수씨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자다가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수차례 몸을 일으켰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내색할 수도 없었다. 동생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안심이 됐지만 마음 한켠 쓸쓸함을 떨치지 못했다.
무뚝뚝한 형…자나 깨나 동생 걱정뿐이었다윤수씨는 동생 연수씨의 '보호자'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거처를 해외에 마련하셨다. 한국에서 연수씨를 챙길 사람은 윤수씨 뿐이었다. 동생을 뒷바라지하면서 때때로 따끔한 질책도 했다. 말수가 없는 형이었는데 언제나 연수씨를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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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씨는 일본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한국에서 홀로 지내는 동생에 마음이 더 쓰였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동생 계좌에 넣었다.
윤수씨는 결혼 후에도 동생과 함께 살았다. 윤수씨는 "그때는 '동생이 먼저'라고 생각해 아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윤수씨와 아내는 2012년 다른 지역으로 살림을 옮겼다.
올해 4월 업무차 해외에 나가 있던 김윤수씨(46·가명)씨는 전화가 온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두 살 터울 동생 김연수씨(44·가명)가 자취를 감춰 실종 신고를 한 지 약 1년이 된 시점이었다. 동생이 사라진 1년 동안 윤수씨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자다가도 마음이 꽉 막힌 기분이 들어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윤수씨는 "동생이 살아있다는 게 확인된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고 했다./사진=최지은 기자, 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
"형한테 의지하면 되는데 혼날 것 같으니까 말을 안 한 것 같아요. 저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동생은 당시 별다른 직업 없이 가족들 지원으로 생활했다.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윤수씨 부부는 동생을 집으로 데려왔다. 윤수씨 아내는 연수씨를 위해 매 끼니를 준비했다. 연수씨 얼굴에 살이 붙고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수씨는 동생에게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말을 건넸다. 다음 날 새벽 동생은 아르바이트 장소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갑과 휴대전화도 윤수씨 집에 뒀다. 동생이 미웠다. 서글픈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렇게 약 1년 흘렀다.
비번에도 습관처럼…실종자 찾아 나선 경찰관
연수씨 관련 서류를 검토하는 서울 강서경찰서 실종수사팀 고병철 경위./사진=최지은 기자
윤수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동생 생사라도 알고 싶었다. 2023년 4월 윤수씨는 경찰을 찾았다.
실종 사건은 서울 강서경찰서가 맡게 됐다. 강서서 실종수사팀 고병철 경위(51)가 올해 2월 인사이동 후 인수인계를 받아 연수씨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수사는 꽤 난이도가 있었다. 해외에 있는 윤수씨 어머니를 불러 DNA를 채취하고 연수씨의 최근 1년간 진료기록, 통신 가입 이력, 건설현장 근로내역 등을 수시로 확인했지만 어떤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2개월 후. 고 경위는 연수씨 인적 사항을 점검하다 평소와 다른 정보를 발견했다. 연수씨는 한 달 전 발생한 사건 목격자로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고 경위는 담당 수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연수씨가 노숙인이었다고 했다. 고 경위는 노숙인들이 모이는 서울역과 영등포역 주변을 탐문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고가 아래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3일 간격으로 발품을 팔았다. 근무일이 아니어도 습관처럼 현장에 나가 연수씨를 찾고 또 찾았다. "가족이니까요" 동생을 생각하는 윤수씨 진심을 되새겼다.
한 달 후, 고 경위는 영등포역 부근을 지나다 연수씨와 유사한 노숙인을 발견했다. 사진보다 머리가 길고 얼굴이 대부분 담요로 가려져 있었지만 '느낌이 왔다'. 10m 떨어진 곳에서 그가 담요를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30분 후, 얼굴이 드러났다. 연수씨였다.
연수씨는 자신의 행방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성인 실종자는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인계할 수 없다.
"서울 한 다리 밑에 있어요." 고 경위가 윤수씨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서울 강서경찰서 실종수사팀 소속 고병철 경위(51)가 지난 2월부터 연수씨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고 경위는 노숙자가 많이 모이는 서울역과 영등포역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근무 날이 아니어도 습관처럼 나가 연수씨를 찾았다. 업무 중인 서울 강서경찰서 실종수사팀 고병철 경위./사진=최지은 기자, 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
윤수씨는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일대를 꼼꼼히 살폈다. 무료 급식소도 돌며 "이런 사람 온 적 없나요" 물었다. 공업사에 찾아가 일꾼 명부도 봤다. 동생 이름은 없었다.
두 달 후, 한참을 돌아다니던 윤수씨는 영등포역 인근 한 고가 아래 공원에서 휴식을 취했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쑥 나타났다. 연수씨였다. 실종 후 1년9개월만이었다.
동생은 살도 오르고 피부도 적당히 타고 이전보다 건강한 모습이었다. "죽으려고 나왔는데 길을 잘못 들었어. 그래서 여기 오게 됐어. 돌봐주는 사람을 만났어." 동생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하지만 윤수씨는 동생을 믿기로 했다. 연수씨가 갈만한 장소에 연락처를 전달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동생과 짧은 재회 후. 윤수씨는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하나만은 기억해줘. 너에게는 돌아올 곳이 있어.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윤수씨는 영등포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영등포역 일대 노숙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쪽방촌 골목 구석구석을 돌고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 동생이 찾아온 적이 있는지 물었다. 윤수씨가 동생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 서울 영등포구의 노숙인 쪽방촌./사진=최지은 기자, 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
/그래픽=윤선정 디자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