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Anthropocene)는 1950년대를 기점으로 지구에 대한 인류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진 시기를 현재의 홀로세(Holocene)와 구분한 새로운 지질 시대의 명칭이다. 올 8월 부산에서 열릴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공표될 수 있을지를 두고 기대감이 모아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5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미국 '뉴욕타임스' 등 다수 외신에 따르면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산하 국제층서위원회(ICS) 내 제4층서학(플라이스토세) 분과위원회 투표 결과 인류세 도입이 부결됐다.
지구 평균기온이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지구온난화의 영향력이 피부에 와닿자 인류세의 개념도 과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지질학계에서는 곧 인류세를 공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올 8월 부산에서 개최될 '2024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인류세를 공표할 것인지를 두고 시선이 집중됐다.
이번에 인류세 도입이 부결된 분과위원회는 사실상 본 투표를 위한 첫 절차다. 분과위원회 위원 18명 중 1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분과위원회에서 가결될 경우 ICS 전체 투표안으로 상정되고 이후 ICS의 상위 집단인 IUGS의 본 투표에 상정된다. IUGS 투표에서 인류세 도입이 최종 가결될 경우 올해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공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첫 투표에서부터 부결되면서 더이상 논의가 진척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IUGS 부회장은 "지난달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회의에서 인류세 도입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계 내부에서는 (인류세 도입이) 충분히 이해되지만, 약 100만 년 정도의 긴 시간을 주기로 연대를 나누는 기존 지질학적 관점에선 50년 된 시간을 하나의 시기로 구분하는 게 성급하다는 의견이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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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내부 관계자로부터 투표 결과를 첫 입수한 것으로 알려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투표에 반대표를 던진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활동은 지구의 역사를 재편하는 적절한 이정표가 되기엔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얀 피오트로프스키 덴마크 오르후스대 지질학과 교수는 "(인류세 도입이) 농업혁명, 산업혁명, 북미 대륙과 오세아니아 식민지화 등 인간이 지질학적 시간에 미친 영향을 제한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한국에서 인류세를 첫 공표한다는 기대는 수그러들었지만 학계 차원의 인류세 논의는 이어진다. 정 IUGS 부회장은 "도입은 무산됐지만 인류활동이 지질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며 "지질학계가 인정한 공식 용어가 아니더라도 '지구 환경에 획기적인 변화를 준 시기'로서의 인류세 개념은 앞으로도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