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는 죽었다"…올 8월 한국서 '인류세' 공표 무산될 듯

머니투데이 박건희 기자 2024.03.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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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핵폭탄 등 지구에 등장한 시기 '인류세'… 10여년 논쟁 끝 무산
국제층서위원회(ICS) 첫 투표서 부결 처리… "당분간 논의 없을 듯"

인류세(Anthropocene)는 1950년대를 기점으로 지구에 대한 인류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진 시기를 현재의 홀로세(Holocene)와 구분한 새로운 지질 시대의 명칭이다.  올 8월 부산에서 열릴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공표될 수 있을지를 두고 기대감이 모아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인류세(Anthropocene)는 1950년대를 기점으로 지구에 대한 인류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진 시기를 현재의 홀로세(Holocene)와 구분한 새로운 지질 시대의 명칭이다. 올 8월 부산에서 열릴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공표될 수 있을지를 두고 기대감이 모아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류 활동이 지구에 영향을 미친 시기를 뜻하는 '인류세' 도입이 지질학회 내 첫 찬반 투표에서 부결됐다. 올 8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2024 세계지질과학총회'서 인류세를 첫 공표할 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지만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5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미국 '뉴욕타임스' 등 다수 외신에 따르면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산하 국제층서위원회(ICS) 내 제4층서학(플라이스토세) 분과위원회 투표 결과 인류세 도입이 부결됐다.



인류세(Anthropocene)는 1950년대를 기점으로 지구에 대한 인류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진 시기를 현재의 홀로세(Holocene)와 구분한 새로운 지질 시대의 명칭이다. 지구온난화, 생태계 훼손, 핵폭탄으로 인한 인류의 생존 위협 등이 대두된 시기를 하나의 시대로 지정, 호모 사피엔스 집단이 지구라는 행성에 일으킨 광범위한 변화를 인정해야한다는 움직임이다. 2009년 처음 제기된 이후로 15년에 걸쳐 논쟁 대상이 됐다.

지구 평균기온이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지구온난화의 영향력이 피부에 와닿자 인류세의 개념도 과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지질학계에서는 곧 인류세를 공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올 8월 부산에서 개최될 '2024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인류세를 공표할 것인지를 두고 시선이 집중됐다.



하지만 ICS 첫 분과위원회 투표에서 인류세 도입이 부결되면서 올 8월 부산에서의 인류세 공표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정대교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부회장(강원대 명예교수)은 머니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부산에서 인류세를 공표할 가능성은 낮아졌다"며 "인류세 도입에 대한 논의는 당분간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인류세 도입이 부결된 분과위원회는 사실상 본 투표를 위한 첫 절차다. 분과위원회 위원 18명 중 1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분과위원회에서 가결될 경우 ICS 전체 투표안으로 상정되고 이후 ICS의 상위 집단인 IUGS의 본 투표에 상정된다. IUGS 투표에서 인류세 도입이 최종 가결될 경우 올해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공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첫 투표에서부터 부결되면서 더이상 논의가 진척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IUGS 부회장은 "지난달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회의에서 인류세 도입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계 내부에서는 (인류세 도입이) 충분히 이해되지만, 약 100만 년 정도의 긴 시간을 주기로 연대를 나누는 기존 지질학적 관점에선 50년 된 시간을 하나의 시기로 구분하는 게 성급하다는 의견이 크다"고 전했다.


학회 내부 관계자로부터 투표 결과를 첫 입수한 것으로 알려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투표에 반대표를 던진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활동은 지구의 역사를 재편하는 적절한 이정표가 되기엔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얀 피오트로프스키 덴마크 오르후스대 지질학과 교수는 "(인류세 도입이) 농업혁명, 산업혁명, 북미 대륙과 오세아니아 식민지화 등 인간이 지질학적 시간에 미친 영향을 제한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한국에서 인류세를 첫 공표한다는 기대는 수그러들었지만 학계 차원의 인류세 논의는 이어진다. 정 IUGS 부회장은 "도입은 무산됐지만 인류활동이 지질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며 "지질학계가 인정한 공식 용어가 아니더라도 '지구 환경에 획기적인 변화를 준 시기'로서의 인류세 개념은 앞으로도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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