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차 기자가 보는 언론 징벌배상[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1.08.2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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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징벌배상 반대 명분 없다, 문제는 '가짜뉴스'보다 '유독성 뉴스'
-포털-언론 공동책임, 아웃링크, 기사원산지 표시, 지적재산권 ...시장형 개혁이 급선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지난주 소관 상임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를 통과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언론개혁법안'인 언중법 개정안을 24일 법사위, 25일 본회의까지 통과시킨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앞서 얼마 전 기자협회보가 한국기자협회 소속 기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언중법 개정안의 핵심 조항으로 여겨지는 언론 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0.1%였다. 동의한다는 응답은 34.3%, '보통'이란 응답이 15.6%였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중법의 핵심내용으로 보고 이에 대한 찬반을 물은 거라 질문도 응답도 피상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속한 조직에 '칼날을 겨누는' 법안에 34%가 동의했다는 건 낮은 수치가 아니다. 검사들에게 검찰개혁법안 찬반을 물었다면 찬성의견이 10%나 나올지 모르겠다.



나 역시 언론사 밥을 30년째 먹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34%'의 입장이다. 징벌배상의 취지는 업종에 상관없이 적용돼야 하고, 언론도 상품인만큼 예외일 수는 없으며 사회적 파급력을 감안하면 오히려 더 엄중히 채찍질을 해 달라고 하는 게 스스로 떳떳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현행 법으로도 판사가 얼마든지 허위 조작보도로 인한 손배금액을 인정하고 배상금액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최빈도 손해배상 금액은 '500만원'이다. 징벌배상을 5배로 높여봤자 2500만원이다. 허위 조작보도에 대한 징벌배상을 5배로 높여도 언론사 망하게 만들 수도 없고, 언론사 입장에서도 그렇게 겁낼 일도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여당 언론개혁법만으로는 부족하며, '징벌배상'에만 초점을 맞춰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독자들이 일상에서 언론에 대해 분노를 넘어 좌절까지 하게 되는 건 엄밀히 말하면 '가짜뉴스'에 의한 피해(심각하지 않다는게 아니다) 때문이 아니다.
질 낮은 기사, 낚시성 기사, 편을 가르고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 사회에 해악이 되는 기사, 정파적 혹은 경제적 입장에 따라 '팩트'를 교묘히 얽어 독자들을 호도하는 기사들이 평범한 국민들을 매일매일 좌절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짜뉴스'라는 말은 이런 기사들에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정확히는 '유독성(Toxic)기사이다. 파장이 큰 정치적 사회적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그리고 코로나19와의 사투 과정에서 우리는 유독성 기사의 폐해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유독성 기사가 판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먹고 살고, 영향력도 커지는 언론 생태계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런 생태계에 의해 유독성 뉴스 제조자들은 실제로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언론생태계에서 유독가스가 생산되는 매커니즘을 제거하는 것이 언론개혁이다. 유독성 굴뚝 몇 개를 타깃으로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현 정부 언론개혁의 목표를 보수언론 제거로 삼거나, 혹은 그렇게 비쳐서는 '언론탄압'이라는 반발 앞에 추진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보수건 진보건 과거 정부들도 그랬다.
유독가스 생산 매커니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언론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을 강화하고 언론이 (정권이 아닌) 소비자와 시장에 의해 심판 받을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포털공화국'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된 우리 언론 시장에선 언론에 의한 피해도 납품업자(언론)와 유통업자(포털)이 책임 정도에 따라 공동책임을 지게 만드는 게 시장에 의한 피해구제의 출발이다. 불량기사의 90%가 포털에서 읽히고 10%가 언론에서 읽혔다면 배상도 9대1로 하라는 것이다. 징벌배상액이 피해액의 5배가 아니라 10배가 돼도 언론사로서는 지금보다 배상액이 줄어들 것이고, 매출이 수조원에 달하는 포털이 언론배상 때문에 망할 일도 없다. 물론, 언론의 책임을 포털에 떠넘기자는게 아니고 포털이 불량 납품업자를 가려내게 하는 유인을 만들자는 말이다. 포털의 언론으로서의 지위와 배상책임은 이미 10여년전 '전여옥 케이스(관련기사보기)'에서 법원이 판결로 인정한 바 있다. 이를 언중법에 명확히 함으로써 실효성을 높이면 된다.

포털의 뉴스 소비자들이 누가 만든 제품인지 원산지를 알 수 있도록 기사 제목에 작성 언론사를 반드시 명기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필수적인 조치의 하나다. 인터넷에서 언론 소비는 클릭 하는 순간 이뤄지는데, 클릭하기 전까지는 어느 언론사 기사인지 모르게 해놓은 의도적 익명화가 포털에는 여전히 난무하다.
원칙적으로는 포털이 언론사를 규제하고 옥석을 가려내는 게 아니라 언론이 소비자를 직접 만나 평가받고 이를 토대로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아웃링크(기사를 클릭하면 언론사 사이트의 기사로 직접 링크되도록 하는 시스템)는 이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야당도 자유한국당 시절인 2018년 드루킹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아웃링크 의무화 등을 담은 '포털정상화법'을 당론 발의한 적이 있다. 국민의힘이 반대목소리만 높일게 아니라 언론시장 개혁 법안을 내놓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는게 정책정당으로서의 자세다.


나아가 시장에 의한 근본적 언론개혁은 지적재산권 확립에 있다.
기사가 공짜가 아니게 되면 소비자들이 아무 뉴스나 마구 소비하지 않고 '유독성 뉴스'를 스스로 걸러내는 선택적 소비를 하게 된다. 언론은 포털 클릭에 따라 좌우되는 영향력과 돈으로부터 벗어나, 충성 독자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제품 생산에 눈을 돌려야 한다. 남의 기사 마구 베껴서 클릭 높이는 해적질에 대한 책임도 커지게 된다.
기사를 돈 주고 사서 보는게 말이 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음악을 한곡당 900원씩 내고 듣는다는 생각을 아무도 안했었다. 기자협회나 언론관련 단체(나도 소속이긴 하지만)는 음악산업협회를 본받아서 기사를 돈 받고 팔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쟁취하는게 '언론독립'의 숙원을 이루는 길이다.
지금처럼 포털에 벌크로 기사를 넘겨주는 건, BTS소속사 하이브가 BTS 노래를 몇 곡이건, 어떤 신곡이건 무제한으로 틀 수 있게 방송국이나 음원회사들과 연간 계약하는거나 마찬가지다(일정조건을 갖춘 기사 한 건당 10원이라 치면, 하루 100건 기사 보는데 1000원. 신문 1부값이다. 너무 비싼가? 가격이야 얼마든지 할인 가능하지 않겠나)
뉴스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급을 위해서는 여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언론 바우처 제도도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기사 구독 유료화를 제도로 못박되, 국민 1인당 일정 액수의 바우처를 제공해서 유료구독 금액을 벌충해주는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 언론사에 지급하고 있는 광고비나 각종 협찬금액을 감안하면 감당못할 금액이 아니다.

이같은 조건이 마련된다면 포털이 뉴스를 전면에 배치하느냐를 두고 논란을 벌일 이유도 없다. 포털은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이고, 포털끼리의 경쟁과 소비자의 선택도 시장기능이기 때문이다. 포털이 아무리 공공재화 됐다 하더라도 민간 기업한테 기사배치 로직과 같은 노하우를 공개하라는 건 무리이고 경쟁촉진에도 도움안된다. 설사 로직을 공개해서 투명하게 한들, 그 로직에 맞게 정밀하게 낚시 기사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더불어민주당이 타깃으로 하고 있는) 기성 매체들이 최고 기술자다.

요컨대, 언론개혁 요구의 절실함에 대해서는 언론인으로서 겸허하게 인정한다. 징벌배상 도입도 좋다.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반대만을 주장하는 건 그냥 그냥 지금처럼 살자는 것이다. 8월 이전이든 대통령 선거 전이든 조속히 결론을 내야 한다.
하지만 시장개혁을 위한 위와 같은 디테일들이 논의되고 반영되기 위해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보통신망법, 신문진흥법 같은 관련 법안들의 패키지가 필요하다.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소지가 있는 '독소조항'으로 지적된 내용 중 상당수는 제거된 것으로 보이지만 남아 있는 우려가 있다면 이를 '반개혁'이라고만 몰아부칠 게 아니다. 상임위 통과 이후에도 법사위나 본회의에서 대안반영 입법의 기회가 남아 있다.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니고 야당도 언론계나 법조계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합리적 대안을 고민해 왔을 것이다. 그러고도 결론을 못내 180석의 책임을 걸고 '발차' 시킨다고 큰 일 날 건 없다.
어차피 소송에 몇 년씩 걸리는 징벌배상보다 더 시급한건 지금도 매일매일 공해를 유발하고 있는 유독성 기사를 걷어낼 '시장형 개혁'이다.
30년차 기자가 보는 언론 징벌배상[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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