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끼와 맥주병, 하나회와 검찰...그 시대는 저물까[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0.11.3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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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저명인사들의 부고를 보며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걸 실감한다. 지난 24일에는 이세기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세상을 떠났다. 일찍부터 권력 핵심부에 머물렀던 터라 백수(白壽)에 가까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향년 84세다. 학자출신으로 1981년 민주정의당 의원으로 전두환 정권에 합류, 20세기 마지막까지 4선의원을 지냈다. 2000년 이후에는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보수 본당의 상임고문 자리를 줄곧 지켜왔다. 보수 정치권의 원로인 그의 이름 뒤에는 두고두고 따라다니는 치욕의 순간이 있었다. 이세기가 졸지에 ‘이새끼’가 돼 버린 34년 전 ‘국방위 회식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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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3월21일.
한 예비군이 훈련장에서 ‘반정부 언행’을 했다는 이유로 군 수사기관과 안전기획부에 끌려가 구타당하고 숨진 사건을 다루기 위해 임시국회가 열렸다. 임시회가 끝난 뒤 저녁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여야의원 10여명과 박희도 육군 참모총장(대장, 육사 12기)등 군장성 8명이 서울 회현동 한 요정에서 술판을 벌였다.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의 원내총무 김동영의원(나중에 대통령이 된 김영삼의 최측근 ‘우동영, 좌형우’ 중 1인이다.지금으로 치면 원내대표)이 먼저 도착했다. 여당 원내총무인 이세기 의원이 도착하지 않고 군인들만 있는 걸 보고 농반진반 한마디 던졌다. “똥별들만 먼저 왔구만…”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이들은 80년 전두환의 12.12 쿠데타의 주역이자, 박정희 정권때부터 정치군인의 본산이 된 육군사관학교 ‘하나회’ 멤버들이 주축이었다. ‘야당의원 나부랭이’의 겁 없는 한마디에 분노 게이지가 치솟을 수 밖에 없었다.



지역구 행사를 마치고 한참 뒤에 도착한 이세기 의원에게 육군참모차장 정동호 중장(육사13기)이 “‘이세끼 총무’가 왜 이렇게 늦고 그래, 야당한테 똥별 소리나 듣게 만들고”라고 쏘아붙였다. '이세기' 이름을 일부러 강하게 발음해 모욕을 준 것이다. 다른 장성들도 ‘(국회가) 정치를 잘해야, 우리가 밖에서 떠들 필요가 없지 않나’ 이런 훈계들을 반토막 말투로 늘어놓았다. 강제로 노래를 시키고 벌주로 양주 글래스 원샷도 먹였다. 이 걸 보고 있던 기자출신 민정당 남재희 의원이 동료의식을 발휘, ‘뭐하는 짓들이냐’며 유리컵을 연달아 던졌다. 애초에 맞히고자 던진 건 아니었을텐데, 하필 벽에 맞고 깨진 유리컵이 이대희 인사참모부장(소장. 육사 15기)의 얼굴에 맞아 이 소장의 얼굴에 피가 흘렀다. 피를 본 이 소장은 그 자리에서 공중부양, 태권도 5단의 이단 옆발차기로 남재희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날은 술김에 대충 마무리가 됐지만 정치권에 후폭풍이 이어졌다. 하지만 세상을 M16 탄환구멍만하게 보았을 정치군인들에게 이들은 오히려 영웅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이세끼 발언’의 정동호 중장은 전역한 뒤 도로공사 사장을 거쳐 13대 14대 민정당 민자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소장도 잠시 전방으로 좌천되긴 했지만, 전역후 병무청장까지 지냈다. 박희도 참모총장을 비롯해 그 자리의 주역 장성들 대부분 전두환 노태우 정권하에서 승승장구 잘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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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서울 서초동 모 카페.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과 기자들이 술자리를 가졌다. 결혼을 앞둔 모 일간지의 검찰출입 H기자가 검사들과 출입처 타사 동료들을 초청해 저녁을 한 뒤 2차로 옮겨온 자리였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그해 지검으로 전입한 3년차 젊은 검사가 H기자에게 양주를 글래스 가득 따라 강권했다. H기자가 한 잔을 받아 마셨지만 검사의 강권은 계속 이어졌다. 검사는 당초 이 자리에 H기자로부터 초청을 받지 못했다가 동료들한테 전해듣고 뒤늦게 참석한 터라 처음부터 심사가 뒤틀려 있었다.
상사 검사에게 말투가 불손하다는 둥 시비가 계속되자 처음엔 농담으로 받아들였던 참석자들의 분위기도 어색해졌다. 그렇다고 서로 욕설을 퍼붓거나 멱살드잡이를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검사가 맥주병을 들어 기자의 머리를 정통으로 내리쳤다. 뚜껑을 따지도 않은 맥주병이 정수리를 가격하면서 병이 박살이 나고 기자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병이 깨진 덕에 오히려 치명상은 면했다. 술김에 그 자리는 대충 정리가 됐지만 후유증으로 기자는 병원에 1주일 가까이 입원을 해야 했었다. 당연히 형사처벌 감이었음에도 검찰 수뇌부까지 무마에 나서면서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았다. 해당 검사는 처음엔 최대한 피해에 대해 보상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도 여러 상황을 감안해 검찰의 내부 징계나 후속조치를 지켜보며 시간이 흘렀다. 스스로 수치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병원 치료비만 부담하고는 그만이었다. 검찰 내부에선 징계는커녕 오히려 감싸는 분위기가 주류였다.

검사는 청주 대구 수원 지검장에 이어 대검찰청 강력부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검찰을 떠나 잠시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올랐다.
당사자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고 민정수석 취임 당시에도 “해프닝이었다”고 넘어갔다. 그 검사는 고 김영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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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권위주의 독재체제의 두 축을 상징하는 단어가 ‘육법당(陸法黨)’이다. 민주주의 정당정치가 아니라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부와 서울대 법대 출신 위주 법조계 두 권부가 국가를 이끌어가는 축이었던 것이다. 법조라고 하지만 사법부는 조역이었고, 공안검사 중심의 검찰이 1선에서 정권을 보위한 주축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행정부 소속인 검찰을 ‘법조’범주에 넣는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자타가 검사를 법조인이라고 여기는게 현실이다).

국방위 회식사건으로부터 6년 뒤, 대통령 자리에 오른 김영삼은 취임 10일만인 1993년 3월8일 하나회 척결에 나선다. 하나회 출신의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과 서완수 국군 기무사령관을 전격 해임한 것이다. 불과 13년전 총칼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에서 수백명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세력을 날리는게 쉬운 일이었을까. YS는 정치생명뿐 아니라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IMF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한 무능한 대통령 소리도 들었지만 하나회 척결은 금융실명제와 함께 YS의 위대한 업적이다. 우리 정치에 수십년간 드리워졌던 군부의 그림자는 그제서야 지워지기 시작했다. 대위 제대 하면 사무관으로 채용하는 ‘유신사무관’ 전관예우부터 시작, 유무형의 막대한 권한을 누린 ‘군부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었다.

YS 이후 ‘육법’ 가운데 ‘육’은 적어도 집단으로서 정치의 무대에 나서지 못하게 됐고, 사회의 진로나 일반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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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하나 ‘법’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로다. '공안'에서 '특수'로 검찰 대표주자들 얼굴만 바뀌었을 뿐이다.

군대는 물리력에 있어서는 어느 집단보다 압도적이지만, 전쟁이 나거나 탱크 몰고 시내로 처들어올 때 빼고는 ‘민간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일이 별로 없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하고 사찰하던 기무사의 기능도 없어졌다. 군 수뇌부가 국회의원이나 언론사 사주를 만나 술자리를 할 일도 없다. '단독기사'를 미끼로, 혹은 권력을 공유한다는 착각을 심어주며 언론과 팀웍을 이룰 유혹을 느끼지도 않는다.

반면 검찰은 여전히 생활권력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우리의 일상을 간섭하고 통제할 수 있다. 총칼이 없이도 사람을 죽이고, 매장하고 죄인을 만들 수 있고, 실제 그런 사례들을 수십년간 봐 왔다. 그렇기에 더욱 자제하고, 겸허해야 하며 자신에 대한 잣대에 엄격해야 한다
“정치가 잘 못하니 우리가 나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5공시절 수준의 착각, ‘이새끼’들에게 ‘맥주병’을 날리는 특권의식, 자의적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수사권을 남용하는 데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검사들이 주류를 이룬다면 검찰은 사회 혼란세력으로 전락한다.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부장검사)는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조치가 있기 얼마전 페이스북에 “검찰이 감당하지도 못하는 권한을 움켜쥐고 사회주동세력인 체 하던 시대는 저물어야 한다”고 썼다.
나도 저물 거라고 믿는다.

어떤 경우에도 '피고'가 되는 걸 못 받아들이는 검찰 구성원들의 '단체저항'을 보면, 하나회보다 저무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기도 하다. 상당 부분 검찰의 손에 남겨진 수사권도 앞으로 검찰의 시대를 연장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YS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마찬가지, 땅거미 질 때 닭이 홰를 치고 목청을 돋워도 넘어가는 해를 붙잡을 순 없다. 하지만 검찰의 시대가 저물때까지는 크고 작은 ‘이세끼’와 ‘맥주병’이 누군가를 향해 계속 날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나도 당신도 될 수 있다.
이세끼와 맥주병, 하나회와 검찰...그 시대는 저물까[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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