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맞아야 어르신…'세니에르 오블리주' 실천해야 [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1.05.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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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백신 노쇼(No show) 예약 개시 시점인 어제(27일) 오후 1시부터 벼르고 기다렸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안내 진동음이 울림과 동시에 번개같이 핸드폰을 들고 '예약하기'를 눌렀다. 잠시 '1(접종가능 인원수)'자가 환영처럼 떴던걸 분명히 봤는데 '예약실패' 메시지와 함께 숫자가 금방 '0'으로 바뀐다. 50대의 손놀림으론 30~40대 속사 총잡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는 듯 하다. 그나마 이틀째인 오늘은 아예 시도 기회조차 없다. 괜히 핸드폰만 힐끔거리다 하루가 갔다.
예약자 가운데 노쇼 비율이 2%도 안돼 나한테까지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예약자들은 성실하게 백신을 맞고 있지만, 28일 현재까지 여전히 접종 대상자 전체의 예약률은 64.9%에 머물러 있다. 특히 제일 젊은 60∼64세의 예약율이 58.4%로 가장 낮다. 감염돼도 별 탈 없을 것이라는 자신이 어느정도 있는 사람들이 접종을 기피하고 있다.

지난주 식당에서 들은 대화.
"아스트라 제네카(AZ) 맞았다가 뭔 일 나면 어쩔라고, 나는 안 맞을라네. 차라리 걸려서 항체 생기는게 나은거 아녀?, 아제 맞고 나서 100몇명이나 죽었다잖어"
맞은편에 앉은 60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엿들으려고 한게 아니고 목소리가 워낙 커서 식당 사람들한테 다 들렸다. 다 들으라고 일부러 목청을 키운 것 같기도 했다.
앞에 앉은 또래 남성이 "감기 백신 맞고도 그 정도씩 매년 죽는다던데?"라고 이야기해도 그 여성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으라는게 멀쩡한 사람 사지로 몰아넣는 거라는 식의 분노를 토해냈다. 아직도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그런가.
질병관리청의 주단위 집계에 따르면 (백신 접종 연관성 판정여부를 떠나)접종 이후 사망한 것으로 신고된 사례는 지금까지 총148명(5.23 기준). 이 가운데 88명이 화이자 백신 접종자였고 AZ 백신이 60명이다. 전체 접종자수가 553만6097명이니 사망 확률은 0.00267%다. 5만분의 1을 조금 넘는 셈이다. 화이자 접종 건수가 324만명으로 AZ 229만명보다 훨씬 많지만 접종자 수 대비 비율도 화이자가 0.00271%, AZ는 0,00261%로 화이자가 높다(https://ncv.kdca.go.kr/board.es?mid=a11707010000&bid=0032#content)
화이자 백신이 더 위험하다는 주장을 하는게 아니다. 어느 백신이건 위험성은 있게 마련이고 그 차이는 통계적 의미가 없을 정도라는 말이다.
그런데 접종초기 AZ백신이 먼저 접종되기 시작한데다, 줄기차게 'AZ=문재인 백신'이라는 식의 집요한 정치적 공격에 의해 광기 어린 'AZ 공포'의 미신이 자리 잡은게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백신 부작용 혼수상태...'처럼 제목에 백신 이름이 안들어가면 화이자 백신인 경우가 많다. AZ부작용 기사는 거의 'AZ 맞고 사지마비...'처럼 제목에 백신 이름이 들어간다. 일부(라고 쓰고 상당수 내지 대다수라고 읽는다) 언론 종사자들에게는 AZ 공격이 아예 매뉴얼이 돼 버린 듯 하다.
부정확하고 의도적인 공격으로 AZ 불신을 키워온 뒤,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AZ 불신 큰데, 인센티브 통할까'라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는 모습에서는 '주술적 신념'이 읽힌다.
'AZ백신 얼떨떨한 인기...노쇼 확 줄고 잔여백신 예약 광클' 같은 제목에서는 백신접종이 순조로운 상황 앞에 얼떨리우스가 돼 당황하는 기자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지난해 폼나게 선포식까지 하며 공동으로 제정해 발표한 '감염병 보도준칙'이란게 있다는 걸, 나도 찾아 보고야 기억해 냈다.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71969)
코로나19 방역과정에서 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보도준칙'은 위반시 처벌규정을 갖춘 법으로 격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언론이나 정치권 탓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60년 이상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이라면 세상사 판단 능력은 갖추고 있어야 마땅하다.
백신접종후 사망신고 사례들이 전부 백신과 유관하다고 가정해도 5만분의 1 확률은 통상적으로 우리 곁에 있는 죽음의 가능성보다 훨씬 낮다. 비행기 추락사로 사망할 확률이 12만분의 1정도이고, 벼락 맞아 죽을 확률이 100만분의 1이라니, 그보다는 위험한 셈이다. 백신 접종 이후 고열이나 다른 후유증을 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를 위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백신 접종대상자들, 특히 바이러스에 더 취약한 고령자들이 백신을 기피하면 사회 전체의 집단면역은 그만큼 늦어질 수 밖에 없다.
기초감염재생지수(감염자 1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1명선에서 유지되고 있기에 그나마 확진자 수가 600~700명선에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감염재생지수가 높아지면 백신접종에 따른 집단면역 비율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진다.
접종률이 낮으면 감염확산을 막기 힘들고, 비접종자들 사이에 반복적으로 바이러스 감염이 일어나 코로나19 비상사태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60대 이상 어르신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가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뛰어 놀지 못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경제활동이 정상화되지 못해 아들 딸들은 취직하기 힘들고, 가게를 열어도 손님이 없어 망할 수 밖에 없다.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 딸, 손자 손녀를 위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는게 어르신의 도리, 즉 '세니에르 오블리주(senior oblige)'다.
도리를 해야 어르신 대접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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