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게 부끄럽다…'노이즈 라이팅' 그만 좀[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1.07.3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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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도쿄=뉴스1) 송원영 기자 = 양궁 안산이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개인전 시상식을 마치고 과녁판에 사인을 하고 있다. 2021.7.30/뉴스1   (도쿄=뉴스1) 송원영 기자 = 양궁 안산이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개인전 시상식을 마치고 과녁판에 사인을 하고 있다. 2021.7.30/뉴스1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에 오른 안산.
금메달을 목에 걸기 까지 지켜보는 사람도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쿵쾅거렸는데 과녁을 응시하는 이제 갓 스무 살 궁사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간간히 스칠 뿐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이처럼 머리칼 하나 흐트러짐이 없는데, 바다 건너에서는 숏컷 헤어스타일을 두고 덜 떨어진 '잡소리(노이즈)'가 나오고, 이걸 장사에 이용하는 어른, 언론들이 난리 법석을 떨었다. 페미 세월호 전라도...늘 그렇듯 혐오와 증오를 선동하는 키워드들이 동원됐다.
안산은 금메달을 딴 뒤 기자회견에서 페미니스트라며 비난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묻는 말에 "경기력 외에 관한 질문은 대답하지 않겠다"고 쿨하게 대답했다.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배설하는 이들, 그리고 온라인 어느 구석의 배설물을 퍼 날라와 클릭 장사를 하고 떼거리로 숟가락 얹어 '논란'과 '이슈'를 제조해내는 노이즈 공급자들은 안산의 당당함과 의연함 앞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했다.

키보드 앞에 숨어 자판을 두드리고 댓글을 올리며 남들이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바라보며 쾌감을 느끼는 변태적 '히키코모리'형 인간들은 사회 곳곳에 박혀 있다.
키보드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댓글을 검색하며 커뮤니티와 SNS를 뒤져 이걸 논란으로 재생산하고, 독자들의 반응에 은밀한 쾌락을 느끼는 기자들이 이들에겐 훌륭한 동료이자 대변자이다.



클릭을 올려야 돈을 벌고, 그게 언론사의 순위인 것처럼 인식되는 지극히 한국적인 '포털공화국' 시스템이 이 부조리극의 근저에 존재한다는 건 이제는 상식이다.
언론은 포털에 벌크로 헐값 혹은 공짜로 기사를 주고, 독자들은 불량 우량 가릴 것 없이 공걸리는 대로 공짜 기사를 보고, 다시 언론은 얻어 걸린 클릭으로 포털에서 돈을 정산받고 광고 장사를 해대는 시스템 말이다.
"생산자(언론)와 유통업자(포털)가 기사의 품질에 대해 법적 윤리적 책임을 엄중히 지고,
소비자는 자신의 선택권에 따라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시장시스템"
이는 언론시장에 국한된 과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모범답안이다. 국회에 몇 가지 언론개혁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이 견고한 카르텔이 해체되는 걸 보는 건 이번 생에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게 안에서 본 솔직한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게 포털 탓'일 수는 없다. 언론사들부터가 각자 눈앞의 이해타산에 따라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동업자 모임에서 어쩌다 이야기가 나오면 별로 생각조차 없어들 보인다. 어쩔수 없다며 '온라인 강화'에 나서고 기자들을 클릭 전쟁 일선으로 내몬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고 먹고 살만한 언론일수록 지금의 포털 시스템을 이용하는데 영악하고 유능하고 유리하다.



기자들은 '회사에서 시켜서, 어쩔수 없이...'라는 말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까까시시(까라면 까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라는 자조는 스스로 기자로서의 자존을 포기하는 말이다. 일선 기자들도 갈등조장자로서의 '파워'를 은근히 즐기고 있지 않은지, 자판을 두드리는 손을 되돌아보는 자성이 필요하다. 뭐든지 내갈기는 용기가 아니라, 쓰지 않을 용기가 절실한 때다.

나 역시 '시키는 기사'를 썼었고, '읽히는 기사'를 쓰라고 기자들을 닦달했던 공범이다. 하지만 '읽히는 기사'가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거나 온갖 비정상적인 흥밋거리를 퍼 나르는 '노이즈 라이팅(Noise Writing)'과 동의어일 수는 없다. 댓글이건 기사건 임계점을 벗어나고 있는 노이즈 라이팅, 그만 둘 때가 됐다.
내 부모 형제 자식, 친구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 부끄럽다면 쓰지 말고, 쓰라고 시키지 말고, 유통시키지 않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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