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등근육, 꿈일까[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1.01.0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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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이시영 등근육, 꿈일까[50雜s]


지난 연말 드라마 ‘스위트 홈’을 정주행한건 순전히 '이시영 등근육' 검색어 때문이었다.
한번 시작하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K-드라마의 치명적 폐해 때문에 시리즈 작품은 되도록 눈길을 주지 않는다. 웹툰 원작을 드라마화 했다는 스위트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포스터 속의 등(얼굴도 배도 가슴도 팔다리도 아닌)사진의 유혹에 넘어가긴 50남짓 평생 처음이다. 딱 그 장면만 봐야지 하고 시작했다가 결국 시즌2를 예고하는 광화문 신(scene)까지 내달리고 말았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이시영은 역시 덕질 타깃으로 자격이 있었다. 그냥 덕질 정도가 아니라 존경해야 할 대상이다.
아마추어 복싱 우승 경력이야 알고 있었던 터다. 그 예쁜 얼굴에 글로브 강타 세례가 쏟아지는(못 생기면 맞아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영상도 본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한 뒤에도, 우리 나이로 마흔에, 애 까지 낳은 엄마가, 저런 ‘트리 근육’을 만들어 내다니. 그것도 겨우 몇 분, 딱 한 신을 위해.
원래도 얼굴과는 다르게 ‘근육질 여전사’ 배우이지만, 속옷 차림의 몸을 보여주는 격투 장면이 있다는 감독의 말에 6개월 동안 추가로 몸을 만들었단다.



스위트홈 주요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에 의해 괴물로 변하는데 이시영은 왜 안 변할까. 잠시 의문을 품었는데, 이미 근육이 괴물이 됐는데 굳이 변할 필요가 있나 싶다(사람들이 내면에 숨겨진 욕망에 따라 맞춤형 괴물로 변한다는 설정은 신선했다. 대머리 슈퍼마켓 사장 우현이 털복숭이 괴물이 돼 맞아죽는 장면은 감정이입으로 몹시 슬펐다).

이시영 등근육은 척추기립근을 근간으로 위쪽으론 승모근 후삼각근 대원근 소원근, 옆으로 광배근 능형근 하후거근 등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근육’ 하면 식스팩(복직근)에 알통(이두근)같은 ‘앞쪽’만 신경들 쓰지만, 뒤가 실하지 않으면 앞도 제 기능을 발휘 못한다. 뒤태까지 예뻐야 진짜미인이다.



런너들, 특히 나같은 아마추어들은 대개 하체 근육만을 신경쓴다. 상체, 그중에서도 등쪽 근육 운동을 경시하게 되는데, 강고한 등근육이야말로 장거리 런닝의 펀더멘탈이다.
요추를 지탱하는 등근육들이 굳건하게 버텨줘야 달리는 동안 내내 똑바로 선 자세를 무리없이 유지할 수 있다. 또 대퇴부 이하 하체 근육들이 제 역할을 하고, 양쪽 다리의 불균형을 방지하면서 오래 버틸 수 있다. 마라톤 풀코스 한 번 뛰려면 다리 뿐 아니라 팔도 5만번 가까이 흔들어야 한다. 승모근은 팔과 머리를 리드미컬하게 흔들어 추진력을 보태주는데 도움이 된다.

달리기 뿐인가, 사이클 라이더들은 몸을 구부린 자세로 주행하게 되는데 척추기립근 광배근이 실하지 않으면 부하를 견딜 수 없다. 승모근 후삼각근은 거친 길에서 덜컹거리는 충격을 흡수하고, 안장에서 일어서는 ‘댄싱’이나 언덕길을 오를 때도 중요한 근육이다.

수영에서도 척추기립근은 척추의 회전을 담당하며 롤링을 부드럽게 하고 수평을 유지하는 기본 근육이다. 손이 물을 잡아 당기는 핵심동작에서 광배근은 팔과 다리 허리로 이어지는 연속동작의 중추역할을 한다. 승모근은 당연 팔회전의 핵심이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인 달리기 수영 싸이클만 봐도 등근육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요 두 달 새 비실비실한 것도 부실한 등근육과 무관하지 않다는 확신이 설 수 밖에.
그리하여, 50대 아재가 ‘이시영 따라가기’를 2021년 새해 목표로 잡게 된 것이다.
덕질의 기본은 싱크로 동일화 따라하기 아니겠나.

올해 목표는 대략 이렇다(세계평화 코로나극복 양성평등 민족통일 검판개혁 등등, 남들 다 세우는 이런 목표는 일단 제쳐두고).

-체지방률 10% 초반 근접(이시영은 8%라지만 이건 나한텐 죽으라는 이야기고..그래도 대체 얼마를 빼야 하는겨).
-트리 등근육(뭔지 모르면 사진을 보면 금방 감이 옴) 흔적이라도 새겨보기.
-위 두가지를 위해 러닝 월 200km, 연 2000km(작년 내가 뛴 거리가 1500km정도인데, 이 정도론 런너라고 하기엔...).

뭔 택도 없는 목표냐고? 목표는 목표니까 아름다운거지. 등근육 있는 자만이 나중에 나한테 돌을 던지든지 말든지.

새해 연휴 마지막 날, 영하8도의 날씨에 이시영 덕에 겨우 문지방을 넘어 나섰다.
2021 목표달성을 위한 새해 오프닝 러닝. 서울둘레길 4, 5구간 30km 트레일이다.
수서역에서 출발해 대모산~구룡산~우면산~사당역까지가 4구간. 사당역~낙성대~서울대~석수역으로 이어지는 길이 5구간이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서울편'에서 말했듯, 도성으로서 서울의 입지는 완벽하다. 다섯 개 산들이 병풍처럼 호위하고, 한강이 복판을 흐르는 메가 시티. 157km둘레길만 따라 가도 아스팔트 몇 번 밟지 않고 서울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고층 아파트 바로 뒤에 이런 길들이 있다. 둘레길은 꼭대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맘도 푸근하다. 그래도 4, 5 구간만 획득고도 1600m가 넘는다. 산은 산이다.

6시간여 동안 2979kcal를 태웠다. 이시영 등근육에 한 발 다가간 느낌인데…냉장고에 족발이 웬말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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