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넘기고, 승계원칙 바뀌고…성역없는 ESG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21.06.14 06:20
글자크기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불가리스의 코로나19(COVID-19) 예방 효과를 홍보했다 역풍을 맞고 오너 일가의 지분매각으로 이어진 남양유업 불가리스 사태를 계기로 식품업계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이 탄력을 받고 있다. 식품 대기업도 ESG 경영에 소홀할 경우 경영권이 넘어가는 대표사례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1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불가리스 코로나19 예방효과를 발표하기 한달 전인 지난 3월 ESG 추진위원회를 설립했다. 플라스틱 감축과 사회공헌 강화를 통한 지속가능경영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ESG 경영은 헛된 구호가 됐다. 대리점 갑질, 오너일가의 마약 흡입, 경쟁사 비방 등 가뜩이나 '악덕기업'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남양유업은 불가리스 사태가 도화선이 돼 창업 2세인 홍원식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지분을 사모펀드에 헐값으로 넘기고 회사를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구본성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구본성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장자승계도 무너진 아워홈...사회적 감수성 부각
불가리스 사태를 거치면서 식품업계의 ESG 경영은 더욱 부각되는 모양새다. 전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만든 유제품이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헛된 믿음은 경영진의 심각하게 낮은 사회적 감수성(Social)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돼서다. 여기에 오너 일가와 우호인사로 꾸려진 이사회는 상식을 거르지 못하는 지배구조(Governance)의 민낯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ESG 경영 소홀은 80여년간 이어진 범 LG가(家)의 장자승계 원칙도 무너뜨렸다. 지난 4일 아워홈 주주총회에서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세자매는 장남인 구본성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해임시켰다. 구 부회장은 지난해 9월 강남구 학동사거리 인근에서 보복운전에 따른 특수재물손괴와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돼 주총 전날인 지난 3일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구 부회장은 자신의 차량 앞에 차량 한대가 끼어들자, 분에 못이겨 이 차량을 추월한 뒤 앞에서 급정거해 접촉사고를 일으킨 혐의를 받았다. 그는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차량 앞을 막자, 차량으로 밀어붙인 혐의도 받고 있다.

아워홈의 새로운 대표이사가 된 구 회장의 막내딸 구지은 신임 대표이사는 "최근 몇년동안 과거의 좋은 전통과 철학을 무시하는 경영을 해왔다"며 오빠의 실책을 직격하기도 했다. 2017년 경영권 분쟁 당시 장남의 편에 섰던 장녀는 이번엔 막내에 손을 들어주면서 경영권을 넘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회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경영자에게 더이상 기업을 맡기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해석이다.


회사 넘기고, 승계원칙 바뀌고…성역없는 ESG
식품업계, 구호로 그치면 실패...ESG 가속화
식품업계는 남양유업에 이어 아워홈까지 경영권이 뒤바뀌자 ESG 경영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선언적인 발표만으로는 급변하는 대내외 리스크를 해소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식품기업 중 가장 ESG에 적극적인 기업은 CJ그룹이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부장 등 오너 리스크를 잠재하고 있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CJ그룹은 지난달 이사회를 통해 ESG 정책 의사결정기구인 ESG위원회 설치를 의결하고 조직을 꾸렸다. 이미 지난해 CJ대한통운의 전기화물차 도입, CJ ENM의 친환경 포장재 적용 등을 적용해 왔지만 지속가능경영위원회 출범에 이어 ESG위원회 설치까지 본격적인 ESG경영에 뛰어들었단 평가다.

위원회 설립 후 처음으로 지난 10일 유엔(UN)의 기조에 합류해 아동노동 철폐를 주요 현안으로 내세웠다. 해외사업지 50여곳의 경영실태를 파악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지만 인권문제만큼은 제대로 관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일회용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도 ESG에 적극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신세계그룹의 스타벅스코리아다. 2025년까지 전국 매장 내 일회용컵 0% 사용을 목표로 한 스타벅스는 이달부터 환경부 등과 손잡고 제주도내 매장에서 일회용컵 사용을 중단했다. 33년만에 갈월동 시대를 마감한 롯데GRS는 독산동 사옥 이전과 함께 ESG경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주요 브랜드인 롯데리아를 중심으로 'No 빨대', 'No 플라스틱', '전기바이크 도입' 등 ESG 경영 전략 실현을 구체화한 상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과 아워홈 사례를 계기로 ESG 경영이 구호로만 끝나면 안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며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ESG 경영을 실천해나가야만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