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사냥터' 美 막히자 韓으로…반·디 인력 사냥 나선 中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05.20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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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중국 인력 블랙홀 '천인계획']②

편집자주 미국 트럼프 정부가 미국 기술을 활용한 반도체 부품을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또다시 미중 무역전쟁의 전운이 감돈다. 중국의 반도체 사업은 더욱 '독자생존' 길을 걷고 한국 기술인력 사냥은 한층 노골화할 전망이다.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베끼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 중국의 한국 기술인력 스카웃을 집중 조명해본다.

'인재 사냥터' 美 막히자 韓으로…반·디 인력 사냥 나선 中


"미중 무역전쟁이 재점화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국가전략산업 분야에서 한국 인재들이 다시 중국의 인재 사냥감이 되고 있다."

19일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한 임원은 중국의 인재 스카우트가 다시 활개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15일 사전허가 없이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 칩을 공급할 수 없게 하는 수출규제 개정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해법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업계 한 인사도 "3~4년 전 정점에 달했던 중국 업체들의 한국 인력 쇼핑이 2018~2019년 미국의 잇단 제재에 다소 뜸해지는 듯하다가 올초부터 다시 노골적화하고 있다"며 "더는 미국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 차원의 전략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업체들이 노리는 한국 인력은 삼성전자 (80,900원 ▼400 -0.49%), SK하이닉스 (176,500원 ▼3,100 -1.73%), LG디스플레이 (10,590원 ▼70 -0.66%), 삼성디스플레이, LG화학 (402,000원 0.00%), SK이노베이션 (112,100원 ▼100 -0.09%) 등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다.



'인재 사냥터' 美 막히자 韓으로…반·디 인력 사냥 나선 中
과거에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원했지만 최근에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인재까지 넘본다. 이미 기술 자체가 중국에 상당히 넘어가면서 기술개발을 넘어 실질적인 양산 단계에서 수율(생산품 가운데 합격품 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인재를 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중 무역전쟁이 재점화하는 국면에서 생산성만 높이면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한국 인력 스카우트에 다시 열을 올리는 또 다른 이유가 됐다는 분석이다.

세계 5위이자 중국 1위 파운드리업체인 중신궈지(SMIC)의 경우 미국의 수출규제 개정 발표 직후 올해 43억달러(약 5조3000억원)를 설비 확장과 기술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수정 발표했다. SMIC가 올초 내놨던 투자 계획보다 34% 더 늘린 금액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증액된 투자금 가운데 상당액이 한국 기술진을 스카우트하는 데 쓰일 것으로 본다.

SMIC는 회로선폭 14나노(10억분의1m) 제품의 시험 양산을 막 시작한 단계다.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인 대만의 TSMC나 삼성전자의 7나노 양산 기술과는 아직 격차가 있지만 감히 두 업체를 넘볼 수 없었던 시절에선 벗어났다는 평가다. 원천기술과 함께 생산성을 높이면 격차를 더 좁힐 수 있다는 게 SMIC의 입장이다.


디스플레이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업체들이 한국 인력이라면 수율을 10~20% 올릴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영입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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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애당초 미중 무역갈등이 중국의 전략산업 인재 확보 때문에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이 '제조 2025'의 중점사업으로 반도체를 선정하고 전세계 인재를 싹쓸이하자 중국의 급부상을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했다는 얘기다.

중국은 2008년부터 첨단산업 분야에서 '천인계획'(1000명의 인재 확보 계획)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업 인재를 대거 스카우트했다. 이 과정에서 2018년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핵심인재 2명을 스카우트하려다가 소송에 휘말린 사건도 있다.

반도체 학계의 한 인사는 "올 들어 미국 정부가 중국의 '천인계획'을 겨냥해 칼을 빼든 게 중국의 한국 인재 확보전을 다시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스카우트가 막히자 풍선효과로 주변국인 한국과 대만 인력을 스카웃하는 방향으로 중국이 눈을 돌렸다는 지적이다.

미국 검찰은 올 1월 나노 테크놀로지의 아버지로 불리며 노벨 화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찰스 리버 하버드대 화학·생물학과 교수를 천인계획에 참여한 사실을 숨기고 지적재산권을 중국 우한이공대에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직원을 포함해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은 연구자에게 중국 등 미국에 적대적인 외국 정부가 후원하는 인재유치 프로그램 참여를 금지하는 등 미국 정부 차원에서 중국의 천인계획을 정조준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마냥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중국행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행 수요를 억누르기만 할 게 아니라 국내에 남을 수 있는 유인책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지난 3~4년 동안은 중국을 향하는 인재들을 어떻게 막을까에 집중했지만 효과가 낮았다"며 "국내 환경을 개선하고 맞춤형으로 지원해 중국행보다 한국에 남는 게 낫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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