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한 임원은 중국의 인재 스카우트가 다시 활개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15일 사전허가 없이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 칩을 공급할 수 없게 하는 수출규제 개정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해법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업체들이 노리는 한국 인력은 삼성전자 (80,900원 ▼400 -0.49%), SK하이닉스 (176,500원 ▼3,100 -1.73%), LG디스플레이 (10,590원 ▼70 -0.66%), 삼성디스플레이, LG화학 (402,000원 0.00%), SK이노베이션 (112,100원 ▼100 -0.09%) 등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다.
세계 5위이자 중국 1위 파운드리업체인 중신궈지(SMIC)의 경우 미국의 수출규제 개정 발표 직후 올해 43억달러(약 5조3000억원)를 설비 확장과 기술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수정 발표했다. SMIC가 올초 내놨던 투자 계획보다 34% 더 늘린 금액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증액된 투자금 가운데 상당액이 한국 기술진을 스카우트하는 데 쓰일 것으로 본다.
SMIC는 회로선폭 14나노(10억분의1m) 제품의 시험 양산을 막 시작한 단계다.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인 대만의 TSMC나 삼성전자의 7나노 양산 기술과는 아직 격차가 있지만 감히 두 업체를 넘볼 수 없었던 시절에선 벗어났다는 평가다. 원천기술과 함께 생산성을 높이면 격차를 더 좁힐 수 있다는 게 SMIC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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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업체들이 한국 인력이라면 수율을 10~20% 올릴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영입한다"고 전했다.
중국은 2008년부터 첨단산업 분야에서 '천인계획'(1000명의 인재 확보 계획)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업 인재를 대거 스카우트했다. 이 과정에서 2018년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핵심인재 2명을 스카우트하려다가 소송에 휘말린 사건도 있다.
반도체 학계의 한 인사는 "올 들어 미국 정부가 중국의 '천인계획'을 겨냥해 칼을 빼든 게 중국의 한국 인재 확보전을 다시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스카우트가 막히자 풍선효과로 주변국인 한국과 대만 인력을 스카웃하는 방향으로 중국이 눈을 돌렸다는 지적이다.
미국 검찰은 올 1월 나노 테크놀로지의 아버지로 불리며 노벨 화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찰스 리버 하버드대 화학·생물학과 교수를 천인계획에 참여한 사실을 숨기고 지적재산권을 중국 우한이공대에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직원을 포함해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은 연구자에게 중국 등 미국에 적대적인 외국 정부가 후원하는 인재유치 프로그램 참여를 금지하는 등 미국 정부 차원에서 중국의 천인계획을 정조준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마냥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중국행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행 수요를 억누르기만 할 게 아니라 국내에 남을 수 있는 유인책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지난 3~4년 동안은 중국을 향하는 인재들을 어떻게 막을까에 집중했지만 효과가 낮았다"며 "국내 환경을 개선하고 맞춤형으로 지원해 중국행보다 한국에 남는 게 낫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