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낯선이가…" 美 지금 코로나보다 무서운 건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20.04.28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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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저지 주지사의 명령으로 사실상 가택연금에 들어간 지 한달이 넘었다. 유일하게 허용된 외출은 산책과 식료품 구매뿐. 답답함을 달래려 매일 동네를 산책하다보니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의 취지와는 달리 새롭게 알게 된 이웃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기껏해야 길 건너편에서 마주 오다 인사하는 정도인데, 얼마 전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백인 여성 한명이 내게 "문 단속 잘 하고 나왔냐"고 묻는다. 이유를 되물으니 조금 전까지 수상한 사람 4명이 차를 타고 동네를 배회하고 있더란다. 최근 낯선 이가 한밤 중 건너편 집의 차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CCTV에 찍히기도 했다.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생활고에 빠진 이들이 급증하면서 한적한 교외 마을에도 범죄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전국적 봉쇄 조치로 미국에서 불과 5주만에 256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제활동인구 5명 가운데 1명 꼴로 실업자로 전락했다. 해고됐다면 실업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월급만 깎인 이들은 오히려 사정이 더욱 어렵다.

당장 월세 낼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많으니 절도나 강도, 약탈 등 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최근 미국에서 총기 구매가 폭증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가뜩이나 동양인들에 대한 혐오범죄까지 팽배한 터다. 요즘 미국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사망자가 속출하자 한국에서 안부를 묻는 연락이 종종 오는데, 솔직히 코로나19보다 더 걱정되는 게 범죄로부터의 가족의 안전이다.



이런 판국에 가수 마돈나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코로나19가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글은 미국 내 계층간 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집 밖을 나갈 수 없으니 마찬가지란 의미로 쓴 글일 텐데, 기층민들의 현실에 대한 몰이해 탓에 공감보단 공분만 자아냈다.

코로나19를 피해 개인이 소유한 섬으로 도피한 뒤 호화 요트 사진과 함께 "모두들 안전하기 바란다"는 글을 올린 부호도 상태적 박탈감을 자극하긴 마찬가지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누가 탓하겠느냐만 그걸 소셜미디어로 자랑하는 건 다른 문제다.

국가 지도자의 '내로남불'식 가족 여행은 또 어떤가. 국민들에게 여행 자제를 당부하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부활절을 맞아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도 소셜미디어로 "제발 제발 집에 있으라"고 호소한 뒤 정작 본인은 가족들과 함께 부친 소유의 골프 리조트로 여행을 떠났다.


예로부터 감염병은 기존 권위에 균열을 가져오곤 했다. 14세기 유럽인들 가운데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페스트) 당시 고위 성직자들은 교구민들을 버린 채 시골로 도망갔다. 집을 떠나선 식량과 거처를 구할 돈이 없는 평민들은 하릴없이 죽어갔다.

기도로 역병을 막겠다던 수도승들은 집단생활 탓에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인본주의 르네상스가 싹튼 계기 가운데 하나로 페스트가 지목되는 이유다.

코로나19는 국제질서의 위기를 몰고왔다. 남의 나라로 가던 마스크를 가로채고, WHO(세계보건기구) 지원을 중단하는 미국을 책임있는 초강대국이라 할 수 있을까.

슬픈 건 미국의 헤게모니가 흔들려도 대신할 나라가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발병을 숨겨 다른 나라의 피해를 키웠다고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중국을 누가 지도적 국가로 인정할까.

1930년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책임 회피에 따른 패권국의 부재에서 기인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몹쓸 돌림병이 앗아간 건 비단 생명과 일상뿐만은 아니다.

"한밤중 낯선이가…" 美 지금 코로나보다 무서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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