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에이트쇼ㅣ 재미와 메시지 두 마리 토끼 다잡다

머니투데이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5.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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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행할 만한 가치 충분한 흥미진진한 러닝타임 6시간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새로운 드라마(또는 영화)가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또는 관객)은 재미를 먼저 기대한다. 재미가 작품을 판단하는 우선 기준이다. 여기에 의미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고, 없어도 크게 불만을 품지 않는다.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시간은 한정적이니 내가 보고 실패든 성공이든 판단하는 경험을 갈수록 주저한다. 대신에 “재미있나요?” 한마디로 재미 유무를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이 간편한 질문 하나로 나의 소중한 시간을 지킬 수 있으니까.

415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에이트쇼’ 1화부터 8화까지 러닝타임을 합친 숫자다. 각 화의 9분 남짓한 엔딩 크레딧들을 빼면 총 6시간 정도. 화마다 50분 안팎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정주행도 가능하다. 이 드라마 안에서 진행되는 리얼 버라이어티 머니 게임 ‘더 에이트쇼’에서도 시간은 곧 돈(상금)이다. 참가자들이 재미를 만들어내면 시간은 늘어난다.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은 참가자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어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더 에이트쇼’를 먼저 본 시청자 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이 드라마에 쏟은 415분이 아깝지 않다. 재미있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중에서 뛰어난 각색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추켜세우고 싶다. 첫 시리즈 연출을 맡은 한재림 감독의 야심이 극 전반에 강하게 흐르는 점도 마음에 든다.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등 출연 배우들은 기존 이미지를 넘어서는 과감한 게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배우들의 활약이 기대 이상이라는 소리다.



‘더 에이트쇼’는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과 후속편 ‘파이게임’이 원작이다. ‘머니게임’은 드라마에선 원작자 이름과 같은 주인공이 빚에 허덕이다가 100일 동안 7명의 참가자와 448억 원의 상금을 나눠 갖는 라이브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파이게임’은 ‘머니게임’의 주인공이 다시 새로운 게임에 참가해 6명의 참가자와 함께 시간과 상금을 늘이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게임장에서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고 돈과 욕망을 좇는 인물들의 드라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의 민낯을 신랄하고 공포스럽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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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에이트쇼’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한재림 감독은 ‘머니게임’의 주인공 설정과 ‘파이게임’ 내용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차별성을 세우는 데 주력한다. 무채색에 가까운 배경에 색을 입히고,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공간을 밝고 입체적인 공간으로 바꿔 서늘한 풍자를 강조했다. 여덟 명의 등장인물 중에서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머니게임’과 ‘파이게임’ 캐릭터들의 성격과 특징을 조금씩 가져와 새로운 서사를 가진 캐릭터로 만들었다. 원작 캐릭터와 닮은 꼴 비교에서 벗어나니 보는 사람도, 연기하는 배우들도 자유롭게 느껴진다. 감독의 노림수다.


한재림 감독의 작심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각 화마다 여덟 명의 인물 중 한 명씩을 부각하는 오프닝 타이틀, 쇼의 안과 밖을 친절하게 구분해 주는 화면비가 눈에 띈다. 무성 영화 형식으로 구성한 주인공 소개는 웃음과 비애를 넘나든다. 영사기, 필름, 마임, 서커스까지 등장해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과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이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더 에이트쇼’가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소재로 한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라면 사회 풍자와 더불어 엔터테인먼트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것이다.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적정선까지 보여주고 마지막에 가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지를 확실히 알려주겠다는 엔터테인먼트 제공자의 주관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원작과 비교해 장기자랑 에피소드는 구성이나 각색 면에서 탁월한 수준이다. 왕 게임 에피소드부터는 폭력 묘사의 수위가 높아지는데 불쾌감을 유발하는 대신에 쾌감을 철저히 차단한다. 원작에서 더 나아간 결말은 엔터테인먼트가 주는 위로이고, 마지막 화에서 엔딩크레딧 중간에 나오는 쿠키 영상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놓인 창작자의 고충을 대변한다.

이처럼 ‘더 에이트쇼’는 재미 이상의 메시지로 시청자를 붙드는 드라마다. 보고 나면 내용을 까마득히 잊는 드라마가 아니라 불현듯 떠올라 곱씹게 되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정말 재밌기만 하면 그만일까?’ 반문하게 하고, ‘이 드라마는 정말 자극적이기만 한 걸까?’ 잔혹한 폭력 묘사와 현실의 폭력을 비교하게 만든다. ‘더 에이트쇼’는 즐거운 쇼라기보다 드라마에서 설명한 대로 ‘지독한 쇼’에 더 가깝다. 살기도 버거운데 이런 쇼를 굳이 봐야 하는 이유? 이 정도로 현실 자각을 일으키는 드라마는 드물기 때문이다. 원작 ‘머니게임’의 대사처럼 과연 나는 ‘보통의 양심과 보통의 상식을 지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며, 언제나 이성적인 판단과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인간인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쾌락 추구의 시대에 뇌를 깨우는 드라마가 도착했다. 머리 아프게 즐길 각오를 단단히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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