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LG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사진)은 마지막 순간까지 소박한 여정을 선택했다. 구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LG그룹은 이날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구 명예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조용하게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문과 조화 역시 사양하기로 했다.
경영을 맡았던 1970년 260억원대였던 그룹 매출은 1995년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줄 때 30조원대로 성장했다. 종업원은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늘었다.
'공장 지킴이'로 불릴 만큼 현장 경영수업은 고됐다. 주위에서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에게 "장남에게 너무한 게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구인회 창업회장이 "대장간에서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 데도 무수한 담금질로 무쇠를 단련한다.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를 게 없다"며 현장 수업을 고집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75세 생일 당시 가족사진. /사진제공=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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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명예회장의 6남 4녀 중 장남으로 1925년 태어났다. 1945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1950년 그룹 경영에 참여하기까지 한동안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의 모교 지수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지냈다.
70세인 1995년 1월 그룹명을 럭키금성그룹에서 LG그룹으로 바꾸고 같은 해 2월 장남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2015년까지 20년 동안 LG복지재단 이사장직을 유지하면서 사회공헌활동을 이어왔다. 교편을 잡았던 지수초등학교가 1999년 학생수 부족으로 통폐합될 위기에 처하자 체육관과 급식소를 겸한 다목적 건물을 선물하며 모교 살리기에 나섰다.
LG그룹 회장 시절에도 1973년 7월 인재육성과 과학기술 진흥이라는 선친(연암 구인회 창업주)의 뜻을 이어받아 학교법인 LG연암학원을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 열정을 쏟았다. 1974년 5월7일 천안연암대학을, 1984년 5월9일 연암공업대학을 각각 설립했다.
평소 취미였던 분재와 난 가꾸기, 버섯 연구 등에 전념하면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슬하에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전 LG그룹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 별세했다.
1988년 3월 고 구자경 명예회장(왼쪽 두번째)이 민간 차원의 경제외교 활동을 위해 미국을 방문, 워싱턴에서 리셉션을 열고 미국 각계 인사들과 합작선 경영자를 초청했다. /사진제공=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