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2.0 랠리"…'트럼프 탄핵' 무산에 베팅한 시장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19.09.2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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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시각] 클린턴 탄핵 국면, S&P 28% 급등…"트럼프 탄핵 시도, 중국에 힘 실어줄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자신의 유력 대권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아들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는 의혹이 통화 녹취록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민주당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 시도에 힘을 실어주는 증거가 나온 셈이다.

그럼에도 뉴욕증시는 '탄핵 무산'에 베팅했다. 여당인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점한 상원의 문턱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과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례처럼 탄핵 절차가 시작되고 상원에서 부결되기까지 오히려 주식시장이 랠리를 펼칠 것이란 기대도 확산되고 있다.

◇클린턴 탄핵 국면, S&P 28% 급등



25일(현지시각) 뉴욕증시에서 블루칩(우량주) 클럽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162.94포인트(0.61%) 오른 2만6970.71에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위주의 S&P(스탠다드앤푸어스) 500 지수는 18.27포인트(0.62%) 상승한 2984.87을 기록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전일 대비 83.76포인트(1.05%) 급등한 8007.38에 마감했다.

미 법무부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당시 통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 요약본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녹취록 공개를 승인했다.

요약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검찰의 기소를 막았다는데, 바이든의 아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들린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우리 (윌리엄 바) 법무장관과 함께 무엇이든 해 준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자신의 아들인 헌터 바이든과 관련된 우크라이나 최대 가스회사를 수사하던 검사를 해임하라고 압박한 사실을 조사해달란 뜻으로 해석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부통령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통화할 것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순순히 조사에 나서겠다고 답했다.

CNN은 백악관 고위 관계자를 인용, 법무부가 공개한 녹취록 요약본이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록된 것이라고 전했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 것도 아닌 통화였고 압박도 없었다"면서 자신의 요구가 강압적이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클린턴 2.0 랠리"…'트럼프 탄핵' 무산에 베팅한 시장
한편 미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분쟁 중인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군사원조를 미끼삼아 대선 경쟁자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권한남용을 저질렀다며 전날 탄핵 절차에 착수했다. 통화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약 4억달러 규모의 군사원조를 보류한 바 있다.

그러나 녹취록 요약본에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원조를 빌미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위협하는 발언은 담겨 있지 않았다.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탄핵으로 퇴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에서 대통령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하원에서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가결돼야 한다. 이후 상원에서 탄핵 재판을 벌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이 확정된다. 이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현재 미 하원은 야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상원은 공화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다.

크레셋자산자문의 잭 앨빈 최고운용책임자는 "상원은 탄핵을 거부할 것"이라며 "시장은 탄핵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사례는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하원의 탄핵 표결을 앞두고 스스로 퇴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 스캔들'로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지만, 상원에서 부결되며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오히려 시장은 탄핵 절차 중 주가가 급등한 클린턴 행정부 당시 상황이 재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른바 '클린턴 2.0 랠리' 시나리오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당시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관계에 대한 스캔들이 보도된 1998년 1월부터 탄핵안이 상원에서 부결된 이듬해 2월까지 S&P 500 지수는 28%나 뛰었다.

당시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과 LTCM(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파산에 따른 급락 후 반등 성격이 컸지만, 탄핵 부결이 유력해지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낮아진 것도 한몫했다.

◇"트럼프 탄핵 시도, 중국에 힘 실어줄 것"

시장의 관심은 탄핵 절차가 미중 무역협상에 미칠 영향에 쏠려있다.

내셔널증권의 아트 호건 수석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는 무역협상에서 중국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가 열리고 있는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들(중국)은 몹시 무역협상을 타결하고 싶어한다"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찍 (협상 타결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을 통해 "미중 무역협상에서 나쁜 거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지만 하루만에 어조가 다소 누그러졌다.

당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강제 기술이전과 지식재산권 절도에 의존하며 환율을 조작한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강경 발언에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중국은 무역 등에 대한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반박하면서도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좋은 결과가 도출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미중 양국은 다음달 미국 워싱턴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다.

퍼스널캐피탈의 크레이그 버크 최고투자책임자는 "미중 무역협상은 예측불가능한 두명의 리더가 주도하고 있는 만큼 향배를 예측할 수가 없다"면서도 "무역전쟁이 길어지면서 시장은 점점 현재 상태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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