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초 함흥냉면옥
그도 그럴 것이 평양냉면을 파는 식당 음식이 가진 극강의 담백함이란. 요즘은 자극적인 음식이 넘쳐 나는 시대다 보니 오히려 이러한 담백함이 오히려 강점으로 자리 잡아 젊은이들의 발길을 사로 잡고 있다. 누구 보다 평양냉면을 사랑하지만 오늘은 어릴 때 즐겨 먹던 입맛 당기는 함흥냉면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냉면은 비빔냉면이 주였지만, 가끔 물 냉면도 먹었다. 어머니께 물냉면을 부탁하면 다시마를 넣은 멸치 육수를 내 얼음을 동동 띄워 차가운 동치미나 물김치와 섞어 내주셨다. 그런데 그 맛이 묘한 별미였다. 추억 탓인지 지금도 여름이면 비빔 냉면을 주로 먹는다.
사진=오장동 함흥냉면
함흥냉면은 고향에서 먹던 감자 전분이나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농마 국수의 맛을 잊지 못하던 실향민들이 남쪽에 정착해 만들어 먹으면서 시작됐다. 함흥냉면 맛집은 유독 함흥 출신 실향민이 많이 거주하던 을지로와 종로, 그리고 속초 아바이 마을에 많이 위치해 있다.
함흥냉면을 먹을 때면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를 주로 찾았다. 초등학교때 오장동을 방문해 회냉면을 처음 맛볼때가 생각난다. 처음 따뜻한 육수를 컵에 따라 주는데 눈 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짭쪼롬 하면서도 구수한 고기 국물에 감칠맛이 넘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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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를 몇 번 리필해 먹었을지 모를 정도로 푹 빠졌다. 지금도 육수를 맛보기 위해 함흥냉면집을 찾는다. 집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고추장 양념과는 너무 다른 숙성된 비빔 양념 맛도 이때 처음 느꼈다. 그동안 집에서 먹던 냉면은 그냥 냉면의 탈을 쓴 비빔국수였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비빔 냉면은 무척 좋았다. 다시는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서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도 가끔 추억을 되살려 집에서 냉면을 만들어 먹지만, 옛날 어머니 손 맛은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에서 자주 방문하던 가게는 오장동 흥남집과 오장동 함흥냉면 두 곳이다. 두 집 모두 맛있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스타일은 확연하게 다르다. 오장동 흥남집은 고소한 맛이 진한 반면 오장동함흥냉면은 양념 맛이 보다 진하다. 다만, 최근 찾았던 오장동 함흥냉면은 과거에 비해 많이 매워졌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 취향을 가미한 듯 하다.
사진=속초 단천식당
자주 방문하는 곳은 속초 함흥냉면옥과 아바이마을의 단천식당이다. 함흥냉면옥은 수준급 함흥냉면을 옛 맛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지금까지 낸다. 돼지고기 수육과 찐만두를 곁들이면 소주 한잔하기 정말 좋다. 회냉면을 시키면 위에 올려주는 명태무침이 끝내준다.
단천식당도 오징어순대, 순대국 등 다양한 메뉴와 함께 냉면도 한다. 함흥냉면을 좋아하시던 부모님께서도 이 집 냉면을 맛보고는 잘 하는 집이라고 얘기하셨다. 이후 속초를 방문하면 횟집보다 함흥냉면집을 찾는 게 우리 가족의 필수 코스였다. 오로지 냉면을 먹고 바다를 보기 위해 찾을 때도 있었다.
여름 함흥냉면의 계절이 돌아왔다. 평양냉면도 좋지만 함흥냉면으로 입맛을 돋우러 가까운 오장동에 조만간 한번 들러야겠다. 술안주로는 비빔냉면 만한 것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