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세]평양냉면도 좋지만 올여름은 함흥냉면?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19.07.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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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의 맛으로 보는 세상]13회. 함흥냉면의 감칠맛 오장동과 속초의 맛있는 함흥냉면

편집자주 맛은 추억으로 기억됩니다. 음식 본연의 맛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어떻게 먹었는지도 중요합니다. 추억과 경험으로 맛집을 써내려가려 합니다. 너무 달지 않고, 맵지 않은 균형 잡힌 맛을 추구합니다. 참고로 맛집을 고려할때 어떠한 협찬도 받지 않습니다.

사진=속초 함흥냉면옥사진=속초 함흥냉면옥


옛날엔 그냥 일반 분식집 냉면이나 함흥냉면 뿐이었다. 우래옥, 필동면옥, 장충동 평양면옥 등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오던 유명한 평양냉면 집들이 을지로, 충무로, 장충동 등 여러 곳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북서 내려오신 어르신들만 주로 찾는 곳이었지 일반 사람들은 잘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양냉면을 파는 식당 음식이 가진 극강의 담백함이란. 요즘은 자극적인 음식이 넘쳐 나는 시대다 보니 오히려 이러한 담백함이 오히려 강점으로 자리 잡아 젊은이들의 발길을 사로 잡고 있다. 누구 보다 평양냉면을 사랑하지만 오늘은 어릴 때 즐겨 먹던 입맛 당기는 함흥냉면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냉면은 그냥 집에서 자주 먹던 음식이었다. 슈퍼마켓 가면 파는 공장에서 만든 냉면을 사다(함흥냉면처럼 전분으로 만든 질긴 면) 비빔국수 만들듯 고추장에 고춧가루 넣고 뚝딱 양념을 만들어 오이를 채썰어 놓고, 삶은 달걀을 넣어 쉽게 만들어 먹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냉면은 비빔냉면이 주였지만, 가끔 물 냉면도 먹었다. 어머니께 물냉면을 부탁하면 다시마를 넣은 멸치 육수를 내 얼음을 동동 띄워 차가운 동치미나 물김치와 섞어 내주셨다. 그런데 그 맛이 묘한 별미였다. 추억 탓인지 지금도 여름이면 비빔 냉면을 주로 먹는다.



사진=오장동 함흥냉면사진=오장동 함흥냉면
어렸을 때만 해도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다. 외식은 졸업, 입학, 생일 등 큰 일이나 좋은 일이 있어야만 하는 연례행사와 같았다. 돼지갈비, 짜장면, 경양식집, 피자 등이 주요 외식 메뉴였지만, 계절 메뉴로 가끔 함흥냉면도 순위권에 들었다.

함흥냉면은 고향에서 먹던 감자 전분이나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농마 국수의 맛을 잊지 못하던 실향민들이 남쪽에 정착해 만들어 먹으면서 시작됐다. 함흥냉면 맛집은 유독 함흥 출신 실향민이 많이 거주하던 을지로와 종로, 그리고 속초 아바이 마을에 많이 위치해 있다.

함흥냉면을 먹을 때면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를 주로 찾았다. 초등학교때 오장동을 방문해 회냉면을 처음 맛볼때가 생각난다. 처음 따뜻한 육수를 컵에 따라 주는데 눈 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짭쪼롬 하면서도 구수한 고기 국물에 감칠맛이 넘쳐 났다.


육수를 몇 번 리필해 먹었을지 모를 정도로 푹 빠졌다. 지금도 육수를 맛보기 위해 함흥냉면집을 찾는다. 집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고추장 양념과는 너무 다른 숙성된 비빔 양념 맛도 이때 처음 느꼈다. 그동안 집에서 먹던 냉면은 그냥 냉면의 탈을 쓴 비빔국수였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비빔 냉면은 무척 좋았다. 다시는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서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도 가끔 추억을 되살려 집에서 냉면을 만들어 먹지만, 옛날 어머니 손 맛은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에서 자주 방문하던 가게는 오장동 흥남집과 오장동 함흥냉면 두 곳이다. 두 집 모두 맛있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스타일은 확연하게 다르다. 오장동 흥남집은 고소한 맛이 진한 반면 오장동함흥냉면은 양념 맛이 보다 진하다. 다만, 최근 찾았던 오장동 함흥냉면은 과거에 비해 많이 매워졌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 취향을 가미한 듯 하다.

사진=속초 단천식당사진=속초 단천식당
요즘엔 함흥냉면을 맛보기 위해 속초를 찾는다. 속초 함흥냉면 집들이 오히려 서울보다 옛 맛을 많이 유지한다. 함흥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많이 자리 잡은 속초는 최고의 함흥냉면을 내는 집들이 많다. 속초와 고성에 위치한 웬만한 함흥냉면집들은 방문해도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

자주 방문하는 곳은 속초 함흥냉면옥과 아바이마을의 단천식당이다. 함흥냉면옥은 수준급 함흥냉면을 옛 맛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지금까지 낸다. 돼지고기 수육과 찐만두를 곁들이면 소주 한잔하기 정말 좋다. 회냉면을 시키면 위에 올려주는 명태무침이 끝내준다.

단천식당도 오징어순대, 순대국 등 다양한 메뉴와 함께 냉면도 한다. 함흥냉면을 좋아하시던 부모님께서도 이 집 냉면을 맛보고는 잘 하는 집이라고 얘기하셨다. 이후 속초를 방문하면 횟집보다 함흥냉면집을 찾는 게 우리 가족의 필수 코스였다. 오로지 냉면을 먹고 바다를 보기 위해 찾을 때도 있었다.

여름 함흥냉면의 계절이 돌아왔다. 평양냉면도 좋지만 함흥냉면으로 입맛을 돋우러 가까운 오장동에 조만간 한번 들러야겠다. 술안주로는 비빔냉면 만한 것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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