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제비/사진제공=강성규 부산스런미디어 대표
반면 아버지는 6.25 전쟁후 배급된 밀가루로 수제비를 자주 먹다보니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수제비라고 하신다. 먹을게 별로 없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수제비는 기억하기 싫은 음식 중 하나였다. 그래도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수제비는 좋아하셨다는 후문.
수제비는 반죽에 계란을 넣느냐 넣지 않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계란을 넣지 않은 반죽은 쫀득하면서 담백한 맛이 나는 반면 계란을 넣은 반죽은 좀 더 찰지면서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어떤 맛을 좋아하느냐는 개인 선호에 따라 달라지지만, 개인적으로 계란을 넣는 것보단 물과 소금, 식용유 약간을 넣어 만든 담백한 반죽을 선호한다.
수제비를 뜯는 것은 얼핏 쉬워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잘 못 뜯으면 수제비가 잘 펴지지 않고 울퉁불퉁 두껍다. 반죽을 잘 펴서 얇게 뜯어 넣어야 맛이 좋은 건 자명하다.
수제비의 요리법은 다양하다. 담백하게 파와 다진 마늘만 넣고 조리할 때도 있고, 감자, 호박 등을 다양한 야채를 넣어 끓일 때도 있다. 김치와 고춧가루를 넣는 등 맛의 변주도 가능하다. 기분에 따라 조리법을 달리할 수 있다.
매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때는 김치를 넣어 끓이고, 그냥 담백하게 먹고 싶을 때는 양념 간장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좋다. 양념 간장은 집에서 직접 메주로 담은 국 간장에 다진마늘, 파, 깨소금, 고춧가루, 참기름 등 갖가지 양념을 더해 만든다. 양념장을 수제비와 곁들이면 천상의 맛이 따로 없다. 국물에 후추를 치면 매콤한 향이 살아나 더 입맛을 돋운다.
해장을 원하거나 얼큰한 맛이 땡길 때는 익은 김치를 듬뿍 넣어 끓인다. 김치 국물 맛이 제대로 우러나면서 해장이 되는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다. 수제비를 다 먹은 후 국물에 말아 먹는 밥은 별미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반반 넣어 끓이는 이른바 '칼제비(칼국수+수제비)'도 좋은 대안이다.
수제비의 또 다른 변주는 경상도 지방에서 주로 먹는 '갱이죽'이다. 멸치육수를 기본으로 김치, 밥, 수제비, 콩나물 등 갖가지 재료를 넣어 끓인다. 수제비 대신 소면을 넣거나 떡국 떡을 넣어 끓이기도 한다. 하지만 수제비를 넣은 갱이죽이 최고다.
삼청동수제비, 여의도 영원식당, 팔당 인근 창모루(칼제비) 등이 수제비를 잘한다. 하지만 수제비는 가장 보편적인 서민 음식이라는 점에서 웬만한 식당이라면 기본적인 맛은 낸다.
수제비 집 가운데 어머니 손맛과 가장 가까운 집을 꼽자면 노량진 컵밥거리에 위치한 '노량진 수제비'다. 길거리에서 서서 먹어야 하는 불편함을 빼고는 탓할 게 없다. 늦은 시간 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가다 생각나 일부러 들러 한 그릇 뚝딱 비우기도 한다. 멸치 육수에 담백하게 끓여내 "수제비는 이래야 한다"는 정석을 보여준다.
어머니국시방의 김치 칼제비
오늘 저녁은 수제비를 끓여봐야겠다. 망쳐도 그만이다. 앞으로 실력을 향상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