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세]영혼의 음식 '수제비'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19.05.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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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의 맛으로 보는 세상]8회. 노량진 수제비의 담백함과 자극적인 어머니국시방 김치칼제비

편집자주 맛있는 음식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정보를 나누는 것을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합니다. 미식 경험은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맛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과하게 달거나 맵지 않은 균형 잡힌 음식은 삶의 원동력이자 즐거움입니다. 추억과 정이 깃든 다양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맛으로 보는 세상'(맛보세)으로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노량진 수제비/사진제공=강성규 부산스런미디어 대표노량진 수제비/사진제공=강성규 부산스런미디어 대표


누구나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추억의 음식 '소울푸드(Soul food)'가 있다. 나에게 있어 소울푸드는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수제비'다.



워낙 수제비를 좋아 하다 보니 어릴 때부터 일주일에 최소 3끼는 수제비를 먹었을 정도다.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께 수제비를 끓여 달라고 부탁해도 어머니께서는 싫어하는 기색 없이 그 자리에서 뚝딱 반죽을 만들어 따듯한 아랫목에 담요로 덮어 두었다. 그래야만 반죽이 잘 숙성돼 나중에 뜯을때 쉽고, 더 쫄깃해 진다고 하셨다. 매번 밀가루 반죽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도 수제비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아버지는 6.25 전쟁후 배급된 밀가루로 수제비를 자주 먹다보니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수제비라고 하신다. 먹을게 별로 없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수제비는 기억하기 싫은 음식 중 하나였다. 그래도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수제비는 좋아하셨다는 후문.



1~2시간이 지나 반죽이 어느 정도 숙성 됐다 싶을 때 멸치, 양파, 대파, 다시마 등을 넣고 물을 끓여 육수를 준비한다. 육수가 보글보글 끓어 오르면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수제비를 뜯는다.

수제비는 반죽에 계란을 넣느냐 넣지 않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계란을 넣지 않은 반죽은 쫀득하면서 담백한 맛이 나는 반면 계란을 넣은 반죽은 좀 더 찰지면서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어떤 맛을 좋아하느냐는 개인 선호에 따라 달라지지만, 개인적으로 계란을 넣는 것보단 물과 소금, 식용유 약간을 넣어 만든 담백한 반죽을 선호한다.

수제비를 뜯는 것은 얼핏 쉬워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잘 못 뜯으면 수제비가 잘 펴지지 않고 울퉁불퉁 두껍다. 반죽을 잘 펴서 얇게 뜯어 넣어야 맛이 좋은 건 자명하다.


수제비의 요리법은 다양하다. 담백하게 파와 다진 마늘만 넣고 조리할 때도 있고, 감자, 호박 등을 다양한 야채를 넣어 끓일 때도 있다. 김치와 고춧가루를 넣는 등 맛의 변주도 가능하다. 기분에 따라 조리법을 달리할 수 있다.

매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때는 김치를 넣어 끓이고, 그냥 담백하게 먹고 싶을 때는 양념 간장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좋다. 양념 간장은 집에서 직접 메주로 담은 국 간장에 다진마늘, 파, 깨소금, 고춧가루, 참기름 등 갖가지 양념을 더해 만든다. 양념장을 수제비와 곁들이면 천상의 맛이 따로 없다. 국물에 후추를 치면 매콤한 향이 살아나 더 입맛을 돋운다.

해장을 원하거나 얼큰한 맛이 땡길 때는 익은 김치를 듬뿍 넣어 끓인다. 김치 국물 맛이 제대로 우러나면서 해장이 되는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다. 수제비를 다 먹은 후 국물에 말아 먹는 밥은 별미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반반 넣어 끓이는 이른바 '칼제비(칼국수+수제비)'도 좋은 대안이다.

수제비의 또 다른 변주는 경상도 지방에서 주로 먹는 '갱이죽'이다. 멸치육수를 기본으로 김치, 밥, 수제비, 콩나물 등 갖가지 재료를 넣어 끓인다. 수제비 대신 소면을 넣거나 떡국 떡을 넣어 끓이기도 한다. 하지만 수제비를 넣은 갱이죽이 최고다.

삼청동수제비, 여의도 영원식당, 팔당 인근 창모루(칼제비) 등이 수제비를 잘한다. 하지만 수제비는 가장 보편적인 서민 음식이라는 점에서 웬만한 식당이라면 기본적인 맛은 낸다.

수제비 집 가운데 어머니 손맛과 가장 가까운 집을 꼽자면 노량진 컵밥거리에 위치한 '노량진 수제비'다. 길거리에서 서서 먹어야 하는 불편함을 빼고는 탓할 게 없다. 늦은 시간 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가다 생각나 일부러 들러 한 그릇 뚝딱 비우기도 한다. 멸치 육수에 담백하게 끓여내 "수제비는 이래야 한다"는 정석을 보여준다.

어머니국시방의 김치 칼제비어머니국시방의 김치 칼제비
노량진 수제비와 대비되는 자극적인 수제비를 맛보고 싶다면 종로5가에 위치한 어머니국시방 '김치칼제비'가 제격이다. 홍합, 김치 등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이집 김치 칼제비는 별미다. 김치볶음밥 등 다양한 음식을 시켜 나눠 먹어도 좋다.

오늘 저녁은 수제비를 끓여봐야겠다. 망쳐도 그만이다. 앞으로 실력을 향상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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