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세]종로 'X'의 추억...'팬피자'를 아시나요?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19.07.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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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의 맛으로 보는 세상]12회 홍은동 피자아일랜드, 지금은 사라진 종로 X에서 맛본 팬피자의 추억

피자아일랜드의 스페셜 피자. 마치 파전처럼 두툼하고 많은 토핑이 올라가 있다. 사진=피자아일랜드피자아일랜드의 스페셜 피자. 마치 파전처럼 두툼하고 많은 토핑이 올라가 있다. 사진=피자아일랜드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아버지께서는 당시 서울시 중구 청계 2가 쪽에 위치한 한 회사에 다니셨다. 자연스럽게 주말엔 아버지가 잘 아시는 단골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포 곰탕으로 유명한 하동관도 이때 처음 알게 됐다. 지금은 하동관이 명동에 있지만 당시엔 중구 장교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을지로 맛집은 물론 아버지 회사에서 길 건너에 있는 삼일빌딩 건물 뒷편 종로 2가 맛집들도 많이 방문했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피자란 정말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 너희들도 좋아할 거라고. 당시 만해도 피자가 생소했다. 어렸을 때 미군 부대에 다니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주셔서 한번 정도 맛을 본 적은 있었지만, 피자를 파는 곳은 거의 없었다.

피자에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 형제들은 "그냥 햄버거 먹으러 가요"라고 떼를 썼지만 새로운 메뉴를 시도 하려는 아버지의 의지는 굳건했다. 솔직히 피자가 뭔지 잘 몰랐다. 종로 2가 종로서적에 있던 웬디스를 가자고 조르다 거절 당해 뿔이 났다.



아버지가 우리를 데려 간 곳은 종로의 'X'(엑스)란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콤비네이션 피자를 주문하셨다. 큰 팬에 담겨 오븐에 구워 갓 나온 피자는 '대박'이었다. 피망과 고기, 다양한 햄과 함께 치즈 등이 잔뜩 토핑된 피자는 단번에 우리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피자를 조각내 각자 접시에 담아주는데 치즈가 길게 달려 왔다. 치즈가 늘어나는 재미에 일부러 포크를 높이 들면서 "이렇게 길게 늘어난다"고 즐거워 하던 표정이 아직 기억난다. 몇 판을 해치웠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근대 피자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팬피자는 당대 최고의 비싼 고급 음식 중 하나였다. 삼형제의 먹성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어머니께서는 대신 집에 있던 오븐을 활용해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도우 대신 기름을 두른 팬에 식빵을 잘게 짤라 밑에 깔고 토마토 케첩과 토마토소스, 다진 고기, 마늘, 양파, 후추 등을 넣고 만든 소스를 듬뿍 부었다. 그리고 각종 소시지, 피망, 다진 볶은 고기, 양송이 버섯 등을 얹고 피자 치즈를 듬뿍 뿌려 오븐에 넣고 구워 주셨다. 식빵을 넣었지만 꽤 맛있었다.

친한 친구들은 지금도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피자 맛이 기억난다"는 말을 가끔 한다. "너희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피자 진짜 맛있었는데~"라며.

레스토랑에서 처음 맛본 팬피자는 나에게 "피자란 이런 것"이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피자 치즈를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 들어 올리면 치즈가 주욱 달려오는 그런 재밌는 느낌이다. 그 뒤로도 종로 X 레스토랑을 종종 찾아 피자를 즐겼다. 하지만 X는 1990년대 말 없어졌다. 어찌나 섭섭하던지.

X레스토랑에 이어 1980년대 중반 피자헛과 피자인이란 미국 피자 브랜드가 들어와 명동에 나란히 매장을 열었다. 돼지갈비를 제치고 피자가 우리집 최고의 외식 메뉴가 되는 순간이었다.

피자아일랜드 피자피자아일랜드 피자
우리나라에 들어온 피자의 원형은 '팬피자'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도우를 깔아 오븐에서 피자를 구워 내는 방식이다. 1990년대까지 대부분 고급 레스토랑이 팬피자를 메뉴로 내놓았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이다.

지금 피자는 피자 전문점이나 나폴리식 피자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다. 그리고 피자를 굽는 방식도 팬을 쓰지 않고 화덕을 쓰거나 스크린을 깔아 오븐에서 깔끔하게 구워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지금도 추억의 '팬피자'를 고수하는 맛집이 있다. 바로 홍은동의 '피자아일랜드'다. 2010년 쯤 피자아일랜드에 처음 방문해보고 아직 원조 '팬피자'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나도 반가웠다.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을 데리고 "옛날 원조 피자가 아직 남아 있다"고 호들갑스럽게 소개하며 피자를 먹으러 간다. 그 사이 맛집 방송도 타고 유명해졌다.

피자아일랜드의 가장 대표적인 메뉴는 피자 치즈를 듬뿍 넣은 '스페셜 피자'다. 스페셜 피자를 먹으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아낌없이 재료를 넣어 만들어주시던 어머니 피자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도 피자아일랜드의 피자를 좋아하셨다. 치즈가 아낌없이 듬뿍 들어있다는 이유에서다. 피자아일랜드에서 추억의 피자를 함께 맛볼 사람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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