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이야기처럼 보일 지 몰라도 사실은 약 20년 전 영국 보수당과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수상이 주인공이다. 토리당 시절부터 300년 넘는 역사 동안 영국 보수당은 개혁보수를 뜻하는 '젖은 자'(Wets·습파)와 강경보수인 '마른 자'(Dries·건파)들이 번갈아 당권을 잡아왔다. 시대적으로 복지 확대가 요구될 땐 '젖은 자'들이, 그 폐해가 심해졌을 땐 '마른 자'들이 당을 주도했다. 당의 주류가 교체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집권'을 위해 필요해서다.
그러나 1989년 대처는 나이젤 로손 재무장관 등 내각의 항명 사태를 맞으며 레임덕에 빠진다. 이때부터 개혁보수의 반격이 시작됐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젖은 자' 가운데 하나인 엔소니 메이어가 당권을 놓고 대처에게 도전했다. 대처는 당 경선에서 도전자를 물리쳤지만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다. 대처의 당내 리더십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메이저의 보수당은 노동당보다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이후 7년 동안 가까스로 선거에 승리하며 정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97년 선거에서 보수당은 토니 블레어가 이끈 노동당에 참패했다. 무려 18년에 걸친 보수당 장기집권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메이저는 대처에 비해 유연한 노선을 취하며 중도층 공략을 꾀했지만 '대처리즘'이란 유산을 걷어내진 못했다. 유권자들에게 보수당은 이미 '기득권을 위한 극우정당'으로 각인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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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시대의 종식과 함께 보수당은 강경보수와 개혁보수로 분열됐다. 메이저 내각이 추진한 우체국 민영화는 여당 비주류의 반대로 무산됐다. 설상가상으로 보수당 의원들의 혼외정사, 뇌물수수 등 각종 스캔들까지 잇따랐다. 메이저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며 혁신을 외쳤지만 조롱만 받았다. 보수당은 이미 혁신성도, 집권욕도 잃은 뒤였다.
약 20년 전 영국 보수당의 모습에 오늘날 새누리당이 오버랩된다.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회·혁신위원회 출범이 친박계의 저항으로 무산됐다. 강성 비박계가 비대위와 혁신위의 요직에 내정됐다는 이유였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4·13 총선 참패의 상처를 딛고 정권재창출을 위해 거듭날 기회를 또 한번 날려버렸다.
이번 사태는 새누리당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친박이 좌지우지하는 새누리당의 정체성은 '박 대통령'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새누리당이 혁신성을 잃고 '박근혜당'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동안 중도층은 여당에서 등을 돌려 국민의당 등으로 넘어갔다. 4·13 총선 결과가 말해준다.
1997년 영국 보수당이 18년만에 정권을 놓치고 야당으로 전락한 이유는 간단하다. 보수정당 장기집권에 따른 유권자들의 피로감을 씻을 정도의 혁신성을 보여주기 못해서다. 반면 블레어의 노동당은 핵심 지지층인 노조와 등을 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우클릭'을 감행, 신 노동당으로 탈바꿈했다. 그만큼 노동당은 '집권'이 절실했고 보수당은 그렇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의원은 "비박계가 당을 나가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친박계 의원은 "내년 대선 후 야당할 각오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당권만 지키면 집권은 못해도 괜찮다는 얘기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집권을 지상목표로 삼아야 할 정당에서 할 말이 아니다. 정권을 재창출할 뜻이 별로 없다면 유권자도 굳이 새누리당을 찍어줄 이유는 없다. 선택은 새누리당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