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미국 의회는 대개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공화당 출신 레이건 대통령도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을 상대해야 했다. 주요 법안과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 지도부를 설득하는 게 그의 주된 일과였다. 민주당 지도부를 백악관 만찬에 초청해 밤 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시느라 다음날 늦잠을 자는 일도 허다했다.
현직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0년 중간선거 이후 하원의 다수당은 야당인 공화당이다. 예산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극한 충돌을 이어가던 2013년 3월6일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상원의원 12명을 워싱턴D.C. 제퍼슨호텔로 초청해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식사비는 오바마 대통령이 사비를 털어 계산했다. 이튿날엔 공화당 폴 라이언 당시 하원 예산위원장(현 하원의장) 등을 백악관으로 불러 오찬을 함께 했다. 공화당 중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예산안 처리를 위한 협조를 호소하기도 했다.
단점정부, 즉 여대야소에선 여당이 국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만큼 대통령은 국회를 상대로 대국민 여론전 등을 통해 정치적 압박만 가해도 국정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분점정부, 즉 여소야대에서 그런 방식으론 작은 법안 하나도 통과시키기 어렵다. 여소야대 국회에 시달리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오죽 답답했으면 3당 합당을 택했을까.
이번 총선 결과는 통치가 아닌 협치, 독주가 아닌 대화를 하라는 국민들의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구조개혁과 경제재도약 등 국정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차기 당 대표·원내대표가 누가 되든 수시로 청와대로 불러 만나야 한다. 아니면 직접 전화 통화를 해서라도 핵심법안 처리를 위한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대통령과의 대화 자체가 그들에겐 커다란 정치적 압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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