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스타매니저 A씨는 왜 여의도로 돌아왔을까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5.08.3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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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보수·사명감 강요 한계…팀장급 매니저 민간운용사 이직 잇따라
운용역 평균 근속 4년 수준…"국민 노후자금 500조 단기 운용되는 셈"

국민연금 스타매니저 A씨는 왜 여의도로 돌아왔을까


“국민연금 운용역의 평균 근속연수가 4년이 조금 넘습니다. 장기투자를 통해 꾸준히 관리돼야 할 국민의 노후자금이 사실상 단기 운용되고 있는 셈이죠.”

여의도에서 만난 한 전직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역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에서 근무하다 최근 여의도로 돌아왔다. 국내 자산운용사에서 근무하다 국민연금에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자리를 옮긴 지 4년여만이다.



500조원에 달하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 운용하는 국민연금 운용역들이 잇따라 이탈하고 있다. 국민연금에서 10년 안팎을 근무한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전문인력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해외대체실 사모팀장으로 근무하던 배모 팀장이 외국계 금융사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3월에는 같은 실에서 10년 넘게 해외부동산 투자를 전담해온 강모 팀장이 국내 부동산투자 전문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 해외부문 대표로 이직했다.



올 들어 국민연금을 떠난 팀장급 인사만 2명이다. 주식운용실, 채권운용실, 대체투자실, 해외대체투자실, 운용전략실별로 3~4명인 팀장급 인사 중 10% 이상이 자리를 옮긴 셈이다. 지난해에도 대체투자실의 고모 팀장이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GIC(싱가포르투자청)로 이직했다. 지난 6월 팀장급 이하 운용역 중에서도 1명이 민간 운용사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삼성·롯데·SK (163,700원 ▲3,700 +2.31%)그룹 등 그룹 계열사의 지배구조 문제로 국민연금에 이목이 쏠린 시기에 핵심인력이 잇따라 이탈하자 국민연금 고위 임원들이 총출동해 잔류를 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IB(투자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적잖은 국민연금 운용역이 일종의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연봉을 감내하고 있다”며 “아내의 병간호 비용 때문에 어렵게 이직을 결정하며 눈물을 보인 탓에 차마 잡지 못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운용역의 직급별 기본급 하한액은 15년 이상 경력의 수석운용역이 1억500만원, 11년 이상 선임운용역이 8500만원, 7년 이상 책임운용역이 6500만원, 3년 이상 전임운용역이 4500만원, 그 이하 주임운용역은 3000만원이다. 여기에 1000만원 수준의 성과급이 더해져도 민간 자산운용사만 못하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4년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성과급 지급률’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 운용역 1인당 평균 성과급은 1375만원이었다. 그나마 대다수 운용직의 신분은 3년짜리 계약직이다.


정부가 2017년부터 국민연금과 비교 평가하기로 한 CPPIB(캐나다연금투자이사회)의 경우 미국 월가에 뒤지지 않는 급여를 바탕으로 사장에서 검증된 투자전문가를 영입, 올 3월 기준으로 1157명의 운용역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연금도 지난해 운용역의 연간 보수 인상률 한도를 정부가 발표하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 직원 보수 인상률과 별도로 적용하면서 스타급 전문가를 확보하기 위한 보수 현실화에 나섰지만 갈 길이 멀다.

전문가들은 기금운용본부가 독립적인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의 인건비는 기획재정부에서 편성하면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국민연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기금 규모에도 불구하고 운용역을 확충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지난해 인력 동결 이후 올해 운용역 69명을 충원하기로 했지만 국회가 올해 예산안에 배정한 전체 신규 인건비는 30억원에 불과하다.

시장에선 내년 기금운용본부의 전북 전주 이전을 앞두고 인력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핵심인력이 이탈한 자리를 채워 넣고 운용역을 늘린다 해도 전문성은 후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순차적으로 채용하는 경력직의 보수로 책정된 예산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6000만~7000만원”이라며 “5~6년차 경력의 매니저 위주로 채용하겠다는 말인데 최근 몇 년 새 국민연금에서 이직한 인력은 10년 경력의 인재다 보니 전문성 우려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2~3년 전만 해도 국민연금 경력직 채용 공고가 뜨면 민간 운용사 임원들이 자사의 스타급 매니저들 동향을 파악하느라 분주했지만 요즘은 그리 긴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올 들어 세차례에 걸쳐 10명 안팎씩 경력직을 채용하는 과정에서도 경쟁률이 예년 수준인 20대 1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국민연금 운용역 사이에서는 국민연금 내에서 전문성을 발휘해 수익률을 개선할 전략보다는 보수적인 투자 행태가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결과가 잘못될 경우 화살이 고스란히 운용역에게 돌아오다 보니 대부분 시도조차 안 하다가 국민연금을 경력으로 삼아 민간 운용사로 자리를 옮긴다는 얘기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투자의 투명성을 위한 감사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회와 감사원, 정부부처 등 이중삼중으로 겹치는 감사는 대부분 운용 자체를 옥죄게 된다”며 “투자에 대한 부분이라도 전문기관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 기금의 연 수익률이 1%포인트만 늘어도 국민들이 더 내야할 수도 있는 보험료율 2.5%를 인상하지 않아도 되는 효과가 있다”며 "운용역들이 제대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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